영숙이가 전 날 밤에 꿈을 꾸었단다.
생전에 당숙어른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데 꿈에서 당숙모를 봤단다. 다른 말은 고사하고 사람 몰골이 아니였단다.
꼭 무덤에 들어 가기 위해서 얼굴에 회칠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단다. 한 번도 보지 않은 당숙모가 꿈에서 처음 만난 영숙의 말을 듣고 내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 이거 혹시 영숙언니가 다른 여자를 데려다 놓고 우릴 속이는 거 아닐까?"
우려되는 상황은 곧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은 찾아가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일부러라도 당숙모가 같이 있는 가족사진이라도 확인 해 볼 필요가 생긴 것이다.
영숙이가 사는 동네는 아직도 그렇게 그대로 있는지 혹시 이미 개발이 되어서 흔적없이 사라질 지 모른다는 추측도 해 보았다. 가난해서 지긋지긋한 곳이라고 처음엔 그렇게만 생각 했는데, 나이들어 다시 생각 해보면 그 넌절머리가 나고 진저리 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공포심이었다. 영숙은 어렸을 때 모진 학대를 받았음이 틀림 없엇다.
옛날 내가 영숙과 같이 살 던 동네에서 딸만 둘로 쌍둥이를 낳은 여자가 바로 앞 집에 살고 혼자 살면서 여기저기 품앗이를 하던 미자 아줌마도 뒷 집에 살았을 때 그 쌍둥이 엄마는 늘 영숙을 두고 시비를 하였다.
" 아니 연두 엄마는 왜 그래요?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되지?'
" 쓰레기를 버릴려면 버릴 데 버려야지 골목길에 이렇게 버리면 어떡해요? 이거 연두엄마가 그런 거 아냐?"
동네 여자들이야 하루 아침이 모두 새로운 시작이 아니다. 어떤 아침은 세수도 못하고 눈꼽이 껴 있는지 모르고 하루저녁을 비운 날도 무지하게 많다. 어제도 그제도 별 다를 거 없는 일상들이 판을 치는 곳인데
그런 말들을 오로지 연두엄마인 영숙에게 향하고 있슴을 눈치가 재빠르지 못한 나는 늦게 알아챗지만. 영숙은 그게 아니었다.
당하는 입장이야 그렇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영숙이가 아님에도 굳이 그 쌍둥이 엄마 앞에서 몸 둘바를 몰랐고, 숙제를 못해서 학교를 갈까 말까하는 노심초사를 쌍둥이 엄마 앞애서만 그러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대차게 굴지 못했지만 쌍둥이 엄마는 주는 것 없이 그냥 미운 여자였다. 시장을 봐도 그 여자는 자신은 뭐든 자기가 먼저였고 공동구매를 해도 그 여자는 자신이 설레발치는 것이 특기였다. 선두자리를 뺏긴다는 것은 전봇대만한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삐져서 지나가다가도 눈 인사는 절대 안한다. 이런 여자에게 절절 매는 영숙을 나는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이 영숙과 쌍둥이엄마가 길바닥에서 한 번 싸우는 소리에 우연이 들은 애기 때문에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힘없이 스르르 풀렸다. 영숙은 달변으로 이 쌍둥이 엄마에게 돈을 꾸고 갚고 그렇게 몇 년을 살은 것이다. 돈을 꿔 준 사람은 채무자에게 돈 이외에도 얼마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한다는 암묵적인 계약이 따로 있듯이 돈거래 만큼은 단순하지가 않앗다. 영숙은 그 꾼돈을 갚을 길 없어 처음엔 식당을 나가더니 식당을 통해서 빈 테이블에 혼자오는 남자들 상대로 여자를 하나 소개해준 댓가로 자리떼기를 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 돈은 자꾸 자꾸 이자가 늘었다. 나도 그 당시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줄 알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어서 어서 이자라도 줄고 좀 돈을 벌면 다시는 돈 꿔 가면서 살지는 말자 이런 다짐을 영숙과 나는 쓴 소주잔을 들이키며 지낸 그 동네 살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그런 일은 정반대로 더 궁핍해지고 초라하게 변해갔었다. 이런 애길 하다보면 또 속이 쓰리다. 이자를 제 때 못 갚으면 사람이 어째 그래요?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영숙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그 쌍둥이 엄마는 당연한 절차를 밟아서 던지는 말이었다.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 같은 말이라고 질이던 양이던 간에
따진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유구무언이라고 할까.
그러나 영숙은 내가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툭하면 우리집에 그것도 안방도 아니고 부엌 구텡이에서 삐질삐질 울기만 했었다.
엄마 엄마 엄마가 일찍 죽어서 나도 일찍 죽고 싶다고 그렇게 하던 말 또하고 또 되풀이하고 우리집 부엌은 늘 우는 여자가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은 왔다가 밤이 깊어 연두가 울 엄마 어디갓어요? 찾아오면 스윽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 나가던 영숙을 수없이 보았다. 그렇게 살았던 영숙에게 생전 안 보던 당숙모가 내가 당숙모여 이렇듯이 꿈에 나타났다는 것은 무슨 신호를 보내고 싶었던 것인가?
" 야야..니 기억 나냐? 그 쌍둥이 엄마?" 당숙모를 꿈궜다고 대답 대신에 왠 뚱딴지 같은 말을 하냐고 하는 눈치더니 금방 얼굴이 틀려진다. 언니는 거기서 쌍둥이 엄마가 튀어 나오냐고 한다.
" 그게 말여 너한테도 그렇게 악착같이 돈 받고 나중에 알고보니 일수쟁이한테도 돈 돌리고 그렇게 돈을 벌어 갔는데 아직 잘 살고 있을까? "
" 언니 소식 모르는 가보네 그 년 남편이 바람이 나서 돈 다 갖고 튀었다는 거?"
" 뭐라구? 언제?"
나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쌍둥이 엄마의 남편은 무슨 개발공사인가 뭔가 직장에 다니고 그래도 그 동네에서 달마다 월급받어 돈놀이 해서 이자 받어 이렇게 떵떵거리고 여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더니, 돈 관리하듯이 남편을 관리하든가 아님 더욱 감시를 하던가 이런 저런 방법도 간구하기 전에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주는 것 없이 미운 여자의 결과인가 보다.
" 어쩌다가 남편이 그렇게 됬냐?"
" 그렇게 된 게 천벌을 받은 거지 뭐? 지가 먼저 바람이 났는디 남편이 맞바람 친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거지 뭐? 근디 왜 갑자기 아무 상관이 없는 쌍둥이 엄마 안부를 물어? "
영숙의 되 묻는 말에 나도 마뜩하다. 여자가 먼저 바람이 났는데 남편이 바람나서 돈 갖고 튀었다는 말에 나도 한 켠에 가슴이 조금 저리다. 그렇다고 영숙에게 나도 바람피는 디? 이렇게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잘난 척을 잘하고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던 재주로 얼마든지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를 것 같더니 어쩌다 내가 이렇게 안부를 물어 확인 해본 결과는 전혀 기대 이상이었다. 바람을 어떻게 피웠길래 남편에게 들켰엇나? 그런 것도 사실은 궁금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 사실은 쌍둥이 엄마를 그 땐 그렇게 싫더니 세월 지나가고 거기도 그렇게 되버리고 나도 이혼하고 그렇게 되다보니께 이젠 그렇고 그렇더라? 언니? 그 때 부침개 사건 알어? 히히" 영숙의 얼굴이 생기가 돈다.
" 부침개사건? 무슨 사건이름이 그래?"
영숙은 눈을 감았다 떳다 하면서 헤죽거린다. 쌍둥이 엄마네가 바로 앞집에 있고 우리집은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고 그런 골목길에 옆집이 뭐를 하던 뭔가를 해 먹던 이 냄새는 어떻게 감 출 도리가 없었다, 쌍둥이 엄마는 그 골목에서 제일 잘 나가는 위치이고 돈줄을 죄고 그 것으로 권력을 부리듯이 그렇게 살았던 때인데, 나만큼이나 그 쌍둥이 엄마를 싫어하고 씹어대던 아줌마가 바로 미자 아줌마였다. 앞 집 뒷 집 사이에 가운데에 끼여사는 영숙이고 보니 무엇을 맛있게 만들어도 먼저 쌍둥이네부터 그 다음 순서가 미자아줌마인데 쌍둥이 엄마는 이상하게 영숙과 좀 친하게 지내는 이웃을 싫어 햇다. 지금도 그 이유을 모르지만 미자 아줌마는 더욱 그런 것에 민감한 덕택에 꼼수를 부려 골탕을 먹이는 것이 재미삼아 저질러서 동네에 두고 두고 우려 먹는 씹어 먹는 오징어 다리처럼 그렇게 쌍둥이 엄마를 골려 먹었다. 부침개 사건도 미자 아줌마가 마당에 일회용 가스렌지를 놓고 온 동네 구수하게 기름냄새를 퍼지게 일부러 부채로 훌훌 담장을 넘어가라고 구어서 먹었지만 쌍둥이네는 부르지도 않고 부침개 한장 갖다 주지 않았단다.뭐든지 자신이 상관하고 나서서 지휘자 스타일이던 쌍둥이 엄마는 자신이 먼저 뭐하냐고 묻지 않을 그 자존심을 이용한 것이리라. 부침개 냄새가 진동하고 다 부쳐서 왁자지껄 끝나가도 절대 쌍둥이 엄마를 부르지 않는 사건이 부침개 사건인데. 그 사건 이후 쌍둥이엄마가 영숙에게 물어 보더란다.
" 니 네 집에서 해 먹었니?"
영숙의 대답은 간단하게 했단다.
" 집은 미자 아줌네! 부침개는 내가 굽고!"
그런데 왜 그렇게 고소한지 모르겠단다. 그 때 그 미자 아줌마는 쌍동이엄마 보고
" 아후! 내가 부르려고 갈려고 했는디 부침개가 탈까 봐 못 불럿어? 아이그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영숙은 그 때 그 이후로 절대 쌍둥이 엄마보고 절절매지 않았다고 한다.
괜히 어디서 빌려오지 않았던 오기가 생기고 질긴 게 이어지고 뭐 그런것이 힘이 될까 싶었는데
미자 아줌마가 부채질 안해도 냄새는 훨훨 바람을 타고 잘도 갈 것인데 그래도 부채질 해가면서 부침개 해먹던 그 맛에 괜히 더 살고 싶어 지더란다.
그 당시엔 부침개나 해 먹으며 히히덕 거리는 것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지금은 별로 원망이 없단다. 지금은 쌍둥이 엄마의 소식도 안부도 물어보나 마나 처지가 같아서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그 때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어느 날 소리 없이 사라질지 모를 일이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종적없이 흔적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다.
이런 슬픔을 아직 겪지 않앗다는 것이 다행이고, 그럼에도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당숙모의 얼굴이 또 겹쳐지나 영숙은
나를 보고 그런다.
" 언니? 우리 김포가자 ? "
굳은 결심을 하듯이 메마르고 낮은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