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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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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신화


BY 정자 2007-10-31

나는 남자가 둘이다.

이 애기는 양다리를 걸쳤다거나.  다른 남자를 몰래 숨겨 놓았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다.

순전히 나의 남자는 하나다.

 

나의 남자라는 말은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말이 뒤틀리게  들릴 지 모르지만, 그래도 난 남자를 갖지 못한다.

그와 뒤섞여 살지라도 갖지 못한다.

 

법으로 나의 이름을 새겨 놓아 죽을때 사망신고를 할 때 까지

난 남자를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도 그 남자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다가  땅위에 구멍을 내고 스며들어 키운 곳이라고 해도

서로 분리 되어 있기에 담아 주고 담겨 주고 하는 성질을

 남자를 바다라고 생각하고, 여자는 잠시 물 담아내는 접시같은 역활 뿐

단지 그 뿐이다.

 

왜그렇게 서로 갖지 못 해 안달을 한다면 바다나 땅이나 뒤집어 질 것이다.

화산이 폭팔 하듯이 늘 긴장하는 관계는 한 번이면 족하다.

몇 만년에 한 번씩  터지는 감정의 계곡은 전설처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즉 이젠 남과 녀의 관계는 서로를 알면 그 뿐.

있었다는 존재를 인정한다.

 

나의 남편은 하나다. 왜 하나냐면  남 보기에 구분하기 좋으라고 표시한 거다.일종의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의 아내다. 이것도 영역표시와 비슷하다. 하나로서 서로 하나가 된 둘의 종교적인 법칙으로

존재해주기 위해서 그렇다.

이런 법은 편리하다. 당분간은 효과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서로 늘 확인하지 않아도 감정은 이미 공식으로 계산된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다. 제로가 될 수 있다. 함정이 있는 예외다.

공식은 전혀 성립이 안 된다고 하기도 하지만 증명이 필요없는 이론이다.

그럼에도 전부 일치해야 만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단이라고 난리 법석이다.

비록 극히 일부이지만 숨어서 비아냥 거리며 지금 결혼하는 남녀보고 히히덕 거리며 바보들 바보들 이럴 수 있다.

 

일상은 늘 같아야 하며, 하루는 틀림없이 서로에게 헌납해야 되며 섹스는 늘 같은 장소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해야 한다. 과학적인 몇 번째의 키스로 사랑의 키를 재는 법이나  전화선을 타고 들어 오는  목소리에 나의 인생의 구십프로를 결정하기도한다. 주파수 세기만큼이나 별 거 아닌 것 같은 사실에 거진 발이 허우적대는 일상들이 사실은 전부다.  자연의 섭리에서 비켜나기만 하면 당장 죽음같은 공포가 온다고 늘 을러대는 협박에 세뇌 된다. 우리는 간첨처럼 늘 고발 당할 거 같은 결혼생활은 한 번은 해야되고, 꼭 모든순서에 맨 처음으로 계획되었다.프로그램은 나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앗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난

거꾸로 서는 물구나무 서기처럼 이죽거리며 산다.툴툴대면서 나의 남자는 없다고 한다. 늘....

 

 일탈이라고 치자고 해도 난 일탈을 꿈꾸지 않는다.

일탈이라함은 나의 죽음과 맞먹는 행위다. 꼭 죽기위해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 나다.거청하게 말을 하자면 꼭 죽기 위해서 결혼을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볼일 없고 특별한 것이 없으면서 굳이 모퉁이에 툭 불거져 나온 성질 드러운 티를 낼 필요도 없을 내 인생이다. 이런 인생애서 거진 99.9%의 순도 높은 삶을 애길 하자면 결혼 빼고 별 할 말이 없다.밥맛이 없는 밥을 매일 먹고 살 수 없듯이.  

조금있으면 나에게 소식이 올 것이다. 당신의 심장은 지구의 반바퀴만큼 뛰어다니다가 일탈을 할 것이오, 하며 전보가 날아오는 것을 모르는 멍청한 여자가 아니다. 하긴 누구처럼 모른다고 우긴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탈은 아니다.적어도 하루는 누구에게 사랑을 전부 줄 수는 있고, 아니면 모두 훔 쳐올 수 있는 일 만 년 전의 여신처럼 성질을 불같이 낼 수도 있다. 이런 건  모든 것을 가능하다고 우선 임상실험이 아닌 나의 한쪽 모퉁이에 연탄 아궁이 불구녕처럼 막다가  하루는 확 열어 제껴서 하얗게 다 타버린 연탄재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나의 또  다른 남자는 나를 사랑한다고 한다. 죽 오랫동안  기다려서 드디어 만나고 말 성질을 가진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날 발견했다. 내가 왜 그라고 지칭하냐면, 그도 어떤 여자를 소유하지 못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니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성경엔 왜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을 했는지 도통 이해 할 수가 없다. 사람을 위한 성경이라고 부르짖는 그 선교의도는 나는 의심한다. 아주 가끔. 분명히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 줄 모른다. 오래전 성경이 생기기 전에도 지구엔 푸른 풀들이 살았다. 돌연변이가 없는 유전자를 지닌 신화같은 존재를 우리들은 애써서 모른척 한다. 굳이 지적을 한다면 나의 몸에 이로운 풀들은 모두 약이라고 이름표를 주었지만, 전설따라 삼천리도 아닌 삼만리의 머나먼 전설속에 파묻었다. 그것도  밀봉한 항아리에 밀납을 바른 채 바깥공기를 전혀 마시지 못하게 질식을 시켰다. 이제야 뒤적거려도 늘 내옆에 계절을 끼고 사는 푸른 사실같은 풀에 대한 우리들의 무지는 맹신하는 믿음만 굳건하게 절벽이 되었다. 단 한번의 사랑의 위대함을 우린 돈주고 사야하는 사실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멋지게 이뤄 놓았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그 법칙에 충실하게 살아내야 한다. 법칙으로 공식화 했지만 그럼에도 난 그의 여자가 되지 못한다.  사랑한 다는 것은 소유가 아닌 이제 발견한 댓가의 신대륙이다. 신대륙에 첫발을 디딘 콜룸부스였다면 난 당연히 거절 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첫번째로 신대륙을 발견 한 사람은 아니다. 제대로 애기한다면 신대륙을 처음 겁탈한  것이다. 정복은 순수하지 않다. 단지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늑탈하는 일종의 불법이다 그러니 지금도 별로 존경할 인물도, 기념비가 세워쟜다면 당장 도끼로 찍어 버릴 일이다. 나는 관광객으로 콜롬부스의 야화를 듣지 않고 도로 의혹만 품을 것이다.조금 과격하지만 그레도 할 수없다.

 

 이런 신대륙을 발견한 만큼 사랑은 거대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잔재주를 피우는 것을 배웟다. 그 넓은 숲속에 세콰이어 같은 원시림을 모른다. 그 옆에 깊게 흐르는 거대한 강줄기를 보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물오리를 잡으며 깃털이 햇빛에 빛난다면 모든 여자들 머리위에 장식하기위해 몽땅 살육하는 몰염치같은 사랑을 해댄다.  그래놓고 돈 떨어졌으니 우습게 이별을 고한다.

안그래도 죽어가는 목숨을 갖고 사는 주제에 뭣도 모른채 저질러대는 콜롬부스같은 사랑을 우리끼리 합법적으로 금을 그었다. 즐겁게 또 결혼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래서 내 사랑은 다시 찾던가, 아니면 있던 사랑을 뒤집어 다시 하자고 하니 내 성질은 이미 중독 돠었다. 어딜 남편이 있는 아내가 누굴 넘 봐식이거나, 아니면 채팅에서 맘 맞는 잠자리 봐둔 거 있다고 연락오면 몰래 나간다고 핸드폰에 고자질같은 문자같은 증거를 무수히 남긴다.

 

 그나저나 내 맘에 맞는 소설 한 권 찾기 힘든 것처럼,  오늘 저녁메뉴에 나의 진수성찬을 위해서 나의 몸을 위해서 연구하는 게 훨씬 낫다 싶다.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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