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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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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텅 비었슴


BY 정자 2007-05-31

2007년 05월 31일 16:56:26

지옥이 텅 비어있슴 좋겠다.

물론 천국은 만원이고. 아니 만원버스처럼 부벼대며 서로 뒹엉켜 싫어도 좋아도

서로 안아야 편하게 타고 가는것처럼 .

 

난 아직 죽지 않은 여자다.

아니다. 죽지 않은 여자라기보다 아직 덜 살은 사람종족의 일종이다.

아니면 더 사랑하다 더욱 치열하게 살다가 때가 되면 느닷없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들 중의 하나 일 것이다.

 

별로 슬퍼 할 시간도 여유도 없어서 언제 살았었나  건망증 반  잊음으로 뒤섞인 인생을 살다 보니 무슨 지옥이 기다리고 확인 안된 천당이 열려있다고 믿을 수 없는 미확인 같은 사실에

늘 부단히 매여 사는 주제넘은 여자이다.

 

나를 여자라고 불러달라고 한 적 없다. 그 누구에게도.

그럼에도 나는 여성이라는 것에 아니면 그 역활에 충실히 해야만 한다.

특히 민석은 내가 여자이기에 나를 찾아 온것이리라.

그래... 아마 그럴 것이다.

 

아랫입술에 상처가 난 것처럼 약간은 부르텄다.

당신 무슨 뽀뽀 미사일 공격한 거야? 입술이 아프다구?

 

민석이 내 얼굴을 또 빤히 본다.

말이 여전히 없다.

나도 어떤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아침 뭐 먹을까?

밥! 아 그리고 아욱국 먹고 싶다.

당신 아욱국 끓일 줄 알어? 나는 또 뜬금없는 질문을 민석에게 한다.

모를 것이다. 대개 남자들은 먹을 줄 만 알고 할 줄 모르는 종족들이다.

나는 그렇게 단정적으로 결정했으면 변함이 없는 게 고집이다.

 

당신은 ? 민석이 도로 나에게 묻는다.

나?...

그래 나도 아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시큼큼한  집된장에 물컹하게 끓일대로 끓여 무슨 곰국처럼 허여멀건 한 그 아욱국을 끓이는 방법은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것은 열다섯살인가 부터 울 엄마가 가을이 되면 댕겅 댕겅 끊어 온 시퍼런 아욱잎새를 한 바구니에 담아오는 모습이 한차례 기억이 나다가도 그 걸 어떻게 끓여서 나의 밥상까지 온 것인 줄 전혀 모른다.마치 그 과정은 누군가에 의해서 삭제당한 것 같다.

 

모르겠네.. 기억이 안 나?

그래 오늘이 오기까지 이렇게 마주보면서 애기하기까지 몇 칠이 걸릴지. 몇 만일이 지나서 한 모텔 모퉁이에 두 남녀가 이렇게 역사적으로 만나서 기껏해야 아욱국을 어떻게 끓이나 부터 대화를 한다는 것을 어떤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것이라면. 아니 이미 이미 진행이되고 있는 이런 상황을 뭘 어떻게 풀어 나갈까 싶기도 하다.

 

민석이 나의구두를 현관바닥에 가지런하게 모은다.

그는 이미 구두를 신고 있다.

밖은 아직 새벽인데. 그는 새벽기차를 타야 한다.

나는 나의 차를 끌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안에 있는 거울에 우리만이 나란히 비춰주고 있다.

이상하다. 서로 어색한 얼굴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꼭 들켜서 어정쩡한  두 사람 얼굴이다. 민석은 나를보고 빙긋이 웃는다.

 

왜 웃는 건데? 이렇게 묻고 싶은데. 또 심술났어? 이럴까봐 말 안했다.  

꼭 전화 해 줘? 민석은 벌써 세번째로 부탁한다.

나는 대답을 안했다..

하면 뭘 해? 이럴려고 하다가도 또 대답을 미룬다.

 

우리 언제 만날까?

뭐? 뭐하러 또 만나? 만나면 맨날 싸우기만 하고 그렇다고 안 만나면 또 징징거리고 이게 벌써 몇 년째인 줄 알아? 만나면 이 대사를 외우는 어느극단의 연극배우처럼 늘 똑같은 대화였다.

이젠 이 말도 우려 먹을데로 우려서 더이상 신빙성이 없다.

 

이미 아침은 커튼처럼 제쳐지고 있었다. 우리앞에서 엘리베이터문이 열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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