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뚝뚝하니 역 앞에 혼자 서있다가 한 참 뒤에 다리가 저려 이리저리 왔다갔다 산책하듯이 승차표를 검열하는 기계앞에 서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민석을 본 지가 한 육개월이 지났나? 아니면 한 일년이 안됏나 가물가물한 산수계산으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지가 언제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길래 내가 분명히 그랬다.
기다리지말고 보채지도 말고 전화도 없을 것이며 그런 거 다 갖춘 여자이니 더 이상은 나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그 상황은 충분히 고지했슴에도 끝까지 잊을 만하면 또 다른 계절이 다가오듯이 나에게 오곤 했던 사람이다.
기차가 서는 소리가 들렸다. 오고 가고 들라날락하는 발소리들이 굉음에 묻혀 오히려 조용한 플랫폼이다. 저만치 서서 목을 길게 빼고 여린 한 아가씨가 둘둘말린 잡지책을 상대방에게 잘보이라고 흔든다.
나 여기에 있어! 이런 신호도 나도 할 수 있는데.
쑥스럽다.
2분차이로 그가 탄 기차가 미끄러지듯이 도착했다.
웬지 목넘김이 숨가쁘게 바빠지고 어디 큰 거울이 없나 두리번 거리고 기어이 멀리서 내 얼굴과 발끝에까지 비춰주는 전신거울에 찾았다.
과연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남들이야 속 사정은 모르지만 나에겐 두번째 남자이고 그에겐 숨겨진 여자라고 누가 알까만은. 그래도 그들의 시선이 모두 거울속에 있는 것 같았다.
민석은 성큼 성큼 걸어나오고 있었다.
나도 환하게 웃엇다.
그는 얼른 나의 손목을 잡고 끌어 가다시피 역 앞을 지나고 지하철역을 지났다.
어떻게 지냈어?
뭐하고 살았어?
요즘은 몸이 건강해? 등등 혼잣말로 연습을 해둔 말은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부간에 오래 같이 있다보면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저절로 알아지는 말들이었을까. 오히려 할 말이 없어서 다른 말보다도 더욱 간편하게 이용할 수있는 단어들인데도
나는 이용하지 못했다.
나의 차키를 달라고 한다. 왜그러냐고 하니 가볼데가 있는데 운전을 해주고 싶단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곧장 그가 잡은 핸들은 배젓는 노처럼 미끄러져 교외지역을 나서고 한적한 도로가 연이어 나타나는데..
옆에 있는 나는 어디로 가는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민석은 줄곧 운전을 하면서도 내 손을 잡다가 다시 핸들을 잡으면서도 말이 없었다.
아까 만나기전에 내가 순서 정한 질문을 이 때하고 싶은데
머릿속은 그게 급한 게 아니라고 자꾸 신호를 보내오는 것 같았다.
전에 이남자가 이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달라진 내용이 무엇인가 있긴 있는데.
혼잣말로 궁시렁을 떨면서 혼자 애기하듯이 바깥 창문에 지나가는 산모퉁이에서 이제 막 무리지어 나뭇결 가지마다 훌쩍훌쩍 뛰어넘는 작은 새들을 보았다.
조금 천천히 속도를 내 줘...
저기 좀 봐?
그제야 민석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사월을 겪고 있는 산들은 온통 연두며 진달래분홍이 바닥에 어지러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무슨일이야? 왜 그러는 건데?
나는 다짜고짜 소리쳤다.
몇 십년간 유지해오던 결혼생활을 왜 이혼으로 끝내야 하는지 이유를 대라고 했다.
민석은 놀란 얼굴이다. 하긴 나에게 어떤 이유도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차 안은 갑자기 조용하다. 너무 정적한 곳에 새워둔 것이다. 차도 잘 안다니는 곳에 가끔가다 부시럭거리는 새들의 날음에 부딪치는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도 났다.
' 나 아직 이혼 안했어...
그리고 이혼 할 계획도 없앴어."
간단하다 . 대답이 너무 명료하다.
내가 물어 본 질문이 너무 길다. 그저 예 ! 아니오! 이런 대답만 하는 법정같다.
피식 피식 웃었다. 왜 그랬어?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혹시 몰라서 너도 이혼 하지 않을까하고... 뒷 말을 얼버무렸다. 민석은 그만큼 자신이 없는 애기를 하고 있었다.
나 이젠 당신 안 만날 거야..왜그러냐고 묻지마?
나도 겪을만큼 겪었어. 이런 되지도 않고 말도 안되는 관계는 청산하는거야...
이혼은 나하고 해 줘?
단호한 말이 내게서 튀어나왔다. 금방 민석의 얼굴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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