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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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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ism)- 연애를 잘하는 여자


BY 정자 2007-01-23

성큼 성큼 남자의 걷는 속도 만큼 하루들이 그렇게 흘렀다.

어찌보면 하루가 한 달  같고 두 달이 후다닥 징검다리 건너듯이 시간이 스쳤다.

머뭇 거리다가 나는 영숙을 찾는 꿈만 연신 밤마다 꾸었다.

 

한 열흘 지나니 성호 아빠가 우리집에 있던 아이들을 찾으러 왔다.

나보고 고맙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 얘들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을려고 하다가 말았다.

괜히 물어 마음만 심란하게 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심란한 겨울이 지나가고 또 봄이 마르게 찾아왔다.

온통 갈색이었던 물빛 산색이 연두로 움트는 것을 보고 그제야

잊은 색깔처럼 또 기억나는 남자가 나의 생각 주변머리에 또아리를 틀고 앉기 시작했다.

 

봄 오면 봄바람에 춤추는 치맛자락을 흩날리며 바람핀다고 하더니

초록빛 저고리에 연분홍치마에 흰 버섯을 신고 춤추는 여자가 실없이 자꾸 생각나기도 했다.

 

살고 있다는 것이 간단하게 설명 되지 않는다.

특히 무엇 때문에 산다는것은 정 할말 없는 핑계다.

 

전기가 통하듯이 저절로 민석의 전화번호를 뒤졌다.

한 동안 전원을 끄고 지낸 겨울동안 그 남자가 일본을 갖다와서 이혼을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혼을 하는 이유가 뭔지 묻기나 해야 되겠다 싶었다.

만일 나의 존재가 첫 번째 이유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대답도 대충 마련 해놓고.

 

눈치 껏  이리 저리 질러봐서 저절로 그 대답을 들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아내라면 나는 그의 두번째 아내였고, 나에겐 둘째 남편이었다.

 

신호가 두욱 두욱 울렸다. 한 너 댓번 울리면 바로 받는데 한 참을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점심 전이고 회의를 하고 있나 싶어 그냥  재발신을 누르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문자가 딩동하는 소리와 함께 한통왔다.

" 오늘 저녁에 연락할께. 꼭 전화 받기."

 

 저녁에 전화한다고 하니 기다려야 한다. 그 저녁엔 어스름한 골목부터 올 것이고 곧이어 해거름이 길어져 짙게 오는 안개처럼 퍼지는 때다.

 

 유달리 나는 저녁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쉼 없이 태양은 이글거리고 태워서 없어지는 것처럼 사라지는 그 때.

홀연히 나타나는 별들.

성급하게 뜨는 달이 흐릿하게 구름 뒤에 숨겨진 하늘이 있는 곳.

 

금방 금방 올 것 같지만 더디오는 기다림만큼 젖어오는 저녁에 한 차례 목욕하듯이

머리감고 촉촉한 생각을 하는 때다.

 

아이들이 천방지축 어질러 놓은 방을 이 구석 저구석 뒤져가며 치웠다.

마른 선인장에 물 한번 푸욱 적셔주니 푸른 물이 배인 듯 더욱 싱싱하다.

마당에 내려 서니 질질 끄는 슬립퍼보다 뒤축을 구겨 신은 운동화를 찾아 신었다.

 

구겨진 뒤축이 자꾸 뒷굼치에 배긴다. 접어진 운동화는 조금은 불편하지만 바닥이 평평한 곳에선 되레 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바지 주머니에 손전화를 집어 넣고 한 참을 길이 아닌 논두럭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저기서 누가 본다면 천상 철 모르는 여편네다.

 

논두럭 곳 곳에 이제 애기쑥이며 벌금자리가 벌써 터를 잡고 이제부터 넓게 크기만 하면 된다. 보라색꽃을 피우기 전 자운영이 낮게 눈치를 보면서 토끼풀처럼 푸르다.

 

 저걸 뜯어 오늘저녁 시금치 무치듯이 먹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퉁이에 다다른 저수지에서 나의 주머니가 지익 지익 떤다.

 

" 여보세요?"

" 지금 어디야?"

" 집이야..."

 

 늘 이런다. 나에게 전화하면 늘 어디에 있냐고 위치확인한다.

오늘은 못 만나겠다는 뜻이다. 나의 집과 그가 있는 곳은 극과 극인 거리다.

내일 나 올 수 있냐고 한다. 나도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의 남편에게 무슨 이유를 대야 하는데.

그럴려면 내 머릿속도 복잡해진다.

바람 피우는 것도 연애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

 

그래서 할 수없이 말했다.

" 당신이 내려 와. 내가 마중 나갈 께.'

 

출발 할 때  문자를 넣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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