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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ism)- 넌 내가 버린 남자야 2


BY 정자 2006-12-26

종적이 묘연한 영숙이 뒷모습이 어른 거렸다,

남자를 버리고 간 여자다.

그 뒷모습이 좀체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다.

 

병신 같은 놈...

지가 나를 버리고 새로 결혼 한 줄 알지만 사실은 내가 지를 먼저 찬거야....

그래봤자 지는 떵떵거리고 잘 살 것 같어?

만만의 콩떡이라는 거 맛을 모르는 거여....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작정을 하고 어디로 숨었는지 모른다.

영숙의 갑자기 필름을 끊는 듯 잘리워진 거처럼.

 

돌아오니 자정이 넘었다.

성호와 연두는 아이들 방에서 같이 자고 있었다.

남편은 기다린 눈치다.

"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냐구? 도로 말 받아서 물어 볼 뻔 했다. 내가 영숙이를 만나면 물어 볼 말이다.

" 없어졌어...사람이.."

" 뭐? 그러면 얘들은 ?"

 그래 . 얘들이 있다. 그것도 영숙이의 몸이 전달 된 자식들이 둘이나 있다. 성호아빠는 얘들을 찾으러 올 지 모르지만 영숙이는 연두를 부르면서 성호를 안아주려고 돌아올까.

 

 이것도 저것도 모두 의문투성이다.

나도 에이 모르겠다 싶은 심정이다. 내가 뭔데 남의 가정사에 이러고 저러고 끼여들 처지도 아니다. 이렇게 혼자 곱씹은 생각에 느닷없이 퍼뜩 울리는 전화벨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늦은 밤엔 전화 벨소리가 더욱 크다.

남편이 나보고 전화를 받으라고 한다. 누구냐고 했더니 웬 여자라고 한다.

" 여보세요?"

" 저기 한 명희씨세요?"

" 아닌데요?"

" 죄송합니다. 잘 못 걸린 전화인가봅니다....."

 

 황당하다. 밤늦게 잘못 온 전화다.

남편은 너무 늦었다고 자자고 한다. 나도 그 소리에 그냥 한 번에 피로가 몰아왔다.

침대가 있는 방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나를 확 잡아 끌어 안았다.

왜 그러는 거야?

가만히 있어 ...

 

니 오늘 무슨 날인 줄 아나?

오늘?

내일은 결혼식을 치룬 날이고 그 전날이 오늘이다. 십오년전에 말이다.

 

이상하다. 나는 까마득히 잊은 사실이다.

그렇게 소소한 날짜. 즉 결혼 기념일도 아니고 그 전날을 기억하냐는 남자가 내 앞에 있다. 남편은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주방에서 뭘 끄낸다.

나에게 주는 것은 손바닥만한 쇼핑백이다. 그걸 열어 보란다.

봉투 입구를 테이프로 밀봉했는데 영 떨어지지 않는다.

끝내는 남편이 다시 뜯어주고 열어보니 보석함같이 작은 상자가 들어 있다.

파아란 빌로드천으로 감싼 작은 상자였다.

열었다. 반지였다.

 

십 이년전 쯤 내가 결혼반지를 팔아 버렸는데. 그 모양이 비슷하다.

이틀을 고르고 고른 거란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을 텐데  그 옛날 결혼반지는.

 

이젠 목걸이도 찾아 줄 거란다.

" 뭘 이런 걸 찾아 줘?"

 이쁘냐? 마음에 드냐? 자꾸 묻는다. 나의 약지 손가락 굵기를 알기 위해서 가짜 반지를 밤중에 자는데 몰래 끼워서 맞췄다는 거다.언제 그랬냐고 했더니 여편네 한 번 잠들면 도둑이 업어가도 모를 거라고 , 코도 잘 곤단다. 내가? 했더니 그럼 안 고냐?

 

 이젠 반지 빼지 말고 팔아 먹지말라고 한다. 그러니 더 생각난다.둘째아이가 이유식을 하는데 분유도 분유거니와 사글세에 흰기저귀가 너덜 너덜해져 무명목을 더 끊어야 하나, 아니면 종이기저귀를 한 박스 사야 되나 고민 하다가 돈이 수중에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젖을 물려야 하는 에미가 젖이 돌지 않아 축 쳐진 젖가슴만 애간장 녹게 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았을 것이다. 무엇을 못 했을까. 그 상황에서 살아내기 위한 도구라면 무엇이던 다 해도 기운이 넘칠 동기라면 휼륭한 재료였을 것이다.

 

 남편이 뭐라고 또 했는데 십여년 전 기억에 빠져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소근 소근 대는 숨소리에 이젠 잠 든 남편의 옆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얼마나 맺혀 있었으면 두번씩이나 나에게 결혼 반지를 찾아 준 것일까...

 

 손을 만지작 거리니 손바닥 안에 굳은 살이 베었다.

나의 왼손 약지에 끼여진 새 결혼반지가 밤에 스며든 별 빛만큼이나 반짝거렸다.

살며시 돌려 남편의 새끼 손가락에 넣어 봤는데

중간에 낀다.

 

무디어지고 굵어져버린 내 습관만큼이나 남편의 얼굴도 오래 되어

나와 같이 얼키고 묶인 채 견고하게 빛나는 둥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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