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는 나에게 부탁도 아닌 당연한 요구처럼 했다.
나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우선 아이들 방을 들어가 보았다.
침대위고 아래 방바닥에 양말들이 짝없이 구르고 있다.
책상위엔 오래 된 컴퓨터가 한 대 있다.
침대가 작아서 성호가 침대에서 자고 연두는 나랑 거실에서 같이 자자고 한다.
연두는 나의 팔를 베었다.
아줌마가 꼭 울엄마 같다고 한다.
자장가도 불러 달란다.
자장가는 아는 노래가 없다고 했더니 자기가 불러준단다.
봄이 오네요..
땅밑에 씨앗이 숨어 있어요.
조금 있으면 싹이 날 거예요.
봄이 오는 소리예요.
너 그거 누구한테 배웠어?
엄마가 나 재울때 불러준 자장가야... 졸려...
연두는 잠이 들었다.
높은 달이 아파트 꼭대기에 반쯤 걸렸다.
창문을 스르륵 밀었다.
바깥의 찬 공기들이 함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 잠잔다는 것이 낮설은 가 영 잠이 오지 않았다.
달빛에 연두의 숨소리가 포근하게 들린다.
다시 베개를 곧추 잡고 누웠지만 정신만 말똥 말똥하다.
순간 손전화가 윙하고 머리맡에서 울린다.
연두가 소리에 깰까봐 얼른 전화를 집어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여보세요...
나야...
그제야 발신번호를 보니 공중전화번호다.
둘째 남편 민석은 늘 나에겐 공중전화로 연락했다.
무슨일이야 밤늦게 전화를 다하고?
그냥 한 번 해봤어? 어? 전화가 안 꺼져 있네? 웬일이야 전화를 다 받고?
정신놓고 보니 전화 끄는 것도 잊어 버렸다. 밤 늦게 전화받는 것을 나는 싫어한다. 늘 그렇게 밤이 되면 전화기를 꺼놓는 게 버릇이다.
" 지금 밖에 있어?" 민석은 묻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 응,,"
" 거기 어디야?"
당장 올 것 같은 분위기다. 와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데.
내일 아침에 경찰서유치장에 면회를 가야 한다거나. 얘들만 있어서 이러쿵저러쿵 변변한 설명도 안 나온다. 그렇다고 도움을 요청해 봤자 왜 그런데 신경쓰냐고 할 테고.
" 나 지금 자려고 했어. 피곤해. 전화끊어!"
" 잠깐만! 잠깐만! 나 할 애기 있어!"
민석이의 다급한 부탁에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내일 모레 일본에 한달동안 출장 갈일이 생겼단다.. 그리고 일본에서 돌아오면 이혼을 할거란다. 나는 보고를 받는 어떤 사장같은 얼굴을 화장실 거울에 비춰지는 것을 보고 하마터면 웃음이 나 올 뻔했다. 왜 이 남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 듣고 있어? 응?"
' 다 들었어..낼 모레 일본간다는 것도, 그리고 이혼을 할 거라는 것도..."
잠시 전화선에 쉼이 들었다. 나도 민석도 아무 말없이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 우선은 일본부터 다녀 오세요... 그리고 아프지 말고..."
" 고마워... 당신도 건강하고.."
" 나 먼저 전화 끊어요..." 뚜우우....
화장실에서 한 참 앉아 있었다.
거실을 나와보니 달빛이 꽉차게 들어 오고 있다.
잠자는 것을 포기했다. 테레비를 켜보니 외국영화가 보이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아 참 집에 연락해야지.
뜨르륵 , 뜨르륵...
" 여보세요. 어떻게 된 거여? 왜 아직 안 와?"
첫남편 병수는 소리만 웅웅거리게 질러댄다.
전화가 안오면 당장 달려 올 태서다.
" 여기서 얘들하고 잘려고 그래"
" 뭐? 성호네가 어디 갔는데?"
" 구속됐데? 지금 유치장에 있다는데?"
무슨 죄가 있길래 애들엄마를 왜 잡아갔냐고 난리다. 나도 한 참을 듣다보니 내가 감옥에 곧 갈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다. 말하면 뭐하나 말만 무성할텐데. 근처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얘들한테도 상처가 되고 안 좋은 일이니.
아침에 얘들 학교 챙겨주고 면회보고 집에 갈 거라고 했다.
병수는 연신 알았다고 대답을 한다. 나 먼저 전화끊는다고 하고 손전화를 내렸다.
내일 아홉시에 출발할까 아니면 담당형사한테 전화를 먼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