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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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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ism)- 노래부르는 여자


BY 정자 2006-11-09

울 엄마가 아직 안들어 왔어요? 아줌마 울 엄마 혹시 오늘 봤어요?

손전화에 전해오는 목소리가 웅웅 거리기도 하고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생생하다.

왜 그러냐고 물을려고 하는데 순간  퍼뜩 떠오르는 부재중 전화가 생각났다.

" 야 성호야? 왜 엄마가 연락이 안되냐?"

" 으엉엉..아줌마 울 엄마 전화가 꺼져 있데요? 연락이 안되요?"

 

 알았다고 얼른 내가 연락을 해  본다고  달래고 내가 금방 집에 간다고  했다.

첫남편은  무슨 일인가 싶어 내 얼굴을 살피고 나는 차키를 찾느라 부산하다.

기집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여 일을 저지른 거여...

 

" 무슨 일인데 그래?"

" 응 성호엄마가 아직 안들어 왔다는데..전화도 꺼져 있고 그렇다고 얘들만 집에서 울고 있어. 내가 얼른 갔다올께..."

 

 첫남편의 대답도 듣는 둥 마는 둥  허둥 지둥 차를 몰았다.

임대아파트 단지 안에는 늦가을부터 피기 시작하는 국화다발이 듬성 듬성 피워대는 향기에 저녁이 오고 있는데. 엄마가 아직 안 들어 왔다는 얘들의 목소리에 아직도 귀가 먹먹하다. 아이들은 내가 오기를 기다렸는 지 아예 경비실 앞에 두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경비 아저씨들은 무슨 일인가 얘들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선은 아이들을 달래고 보채는 여섯살 먹은 계집아이가 엄마아.. 엄마아 하며 훌쩍인다.

밥은 먹었나?

아니요...

배가 고프겄네. 이 아줌마가 밥해줄 께 집에 가자...

 

 아이들을 줄래 줄래 엘리베이터에 먼저 태우고 10층을 누르는데 손전화가 윙하고 주머니에서 떤다.


" 여보세요?"

" 저기.... 저 혹시 기형엄마 아니세요?"

" 예! 맞는데요. 어디세요?"

" 예 여기는 경찰서입니다. 혹시 김 영숙씨를 잘 아는지요?"

" 압니다..근디 왜 그래요?"

" 예..지금 조사 받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노래방도우미를 했는지 안했는지 그걸 조사하고 있어서요. 신원확인 할려고 합니다."

" 뭐라고요?"

 

 그 쪽에선 우선 구속을 하여 지금 조사를 받고 있단다. 그러니까 어제 나에게 온 전화는 성호엄마가 급하게 전화를 한 것이고, 나는 그걸 받지 못한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업주도 허가없이 영업하다가 같이 걸렸을 것이고, 누가 일일히 그런 상황을 아이들한테 알려 주지는 않았을 것이니 일이 이렇게 돌아 간 것이다.

 

 나는 대충 전화를 끊고 집에 현관문도 창문도 방문도 모두 열어 제낀 집에 들어서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얼이 나갔다.

 연두가 더 운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통화하다 목소리가 새어 나간 것을 들었나 성호는 울 엄마 지금 어디있데요? 자꾸 묻는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이 영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라면이라도 있나 싶어 씽크대를 열어보니 바퀴벌레 두마리가 문짝에서 뚝 떨어진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뚜껑을 덮지 않은 채 놓은 반찬들이 말라 비틀어져 있다. 쌀통을 열어보니 다행히 쌀은 있다. 나는 우선 쌀쌀한 찬 공기를 막기 위해서 베란다 문을 닫고, 현관문을 닫고 방방마다 문을 닫았다. 아이들한테 우선은 테레비보라고 해놓고 나는 그릇이 마른 채 설겆이통에 던져진 접시며 그릇에 물을 한 참 틀었다.

 

 냉장고 문을 활 짝 열어 놓고 먹을 만한 것이 있나 뒤적거리고 있으니. 연두가 그런다.

" 아줌마..나 배가 고파요..밥 주세요..."

" 알았어. 우선 반찬좀 챙겨 놓고. 울 연두 뭐 좋아 해?"

" 김하고 햄하고.. 김치도 쬐금 먹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김치는 없다. 그렇다고 밑반찬도 없다. 모두 얘들 준다고 마른 밑반찬을 사온 건 있는데 뚜껑을 제대로 덮어 놓지 않아 말라 비틀어 졌으니 먹을 수도 없다.

 나는 급하게 달려 오느라 지갑도 갖고 오지 못 한것을 그때 알았다.

 

 우선은 밥통에 밥을 올려 놓고 냉동실을 열어보니 갈치가 땡땡 얼어 있는 것도 있고, 자반고등어 인지, 생고등어  몇 마리가 뭉쳐서 꽁꽁 얼어붙었다. 전자랜지에 고등어를  해동 시키고, 양념을 보니 이건 더 열악하다. 숫제 고추가루도 마늘도 아예 없다.

 도대체 뭐 해먹고 살았나 싶다.

 

 성호가 베란다에 양파가 몇개 있단다. 그거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싶어 베란다를 가보니 언제 갖고 왔나 감자 한박스가 그대로 썩어 싹이 나고 줄거리가 푸르게 뻗는 것도 있었다. 대충 먹을 수 있는 감자랑 양파를 골라 고등어지짐을 해야 겠다 싶어 찌게 냄비를 찾으니 변변한 크기의 냄비가 없다. 너무 큰 거는 뚜껑이 안보이고 차 주전자만한 냄비는 고등어 머리 한토막 들어가도 꽉 찬다. 살림을 이렇게 해 놓고 노래를 부르다가 잡혀간 여자의 주방이다.

 

 밥이 다 되어가나 보다. 밥통 흰연기가 뜸 들이는  냄새가 구수하다. 마른 밑반찬 멸치를 조금 물에 불려서 다시 후라이판에 데웠더니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성호와 연두는 처음 먹어보는 밥처럼  뜨듯하게 두 손으로 밥공기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오물 오물 먹는다.

 나는 옆에서 가시를 빼고 발라내고 고등어 옆에 같이 조린 감자를 잘라 연두 숟가락에 올려주고 다 먹으면 살을 얹어주고, 멸치를 먹으면서 연두는 그런다.

 

" 아줌마 멸치가 맛있다아... 또 줘?"

" 고등어는 ?"

 성호가 그런다. 고등어도 맛있구요. 밥도 맛있구요?

그제야 성호가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지금 엄마는 어디있냐고 묻고 싶은 얼굴인데, 아이는 더 이상 나에게 묻지 않았다.

나도 대답할 용기도 없다. 엄마가 어디 독립운동하다 , 아니 민주화운동하다 잡혀간 거라면 말이라도 궁색하지 않을텐데. 하필이면 노래방 도우미하다가 걸려서 지금 조사받느라 집에 못 오고 있다고 상황설명을 하려니 입을 열지 못했다.

 

 집에 김치도 없고 반찬도 없으니까 엄마가 올때까지 우리집에 가자고 했더니 성호가 싫단다. 나도 더 이상 권유하지는 못하고 말았다. 차라리 내가 한 번 더 김치나 다른 반찬을 갖고 오겠다고 나을 지 싶어 성호에게 물었더니.

 

" 우리랑 같이 있으면 안되요? 울 엄마 올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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