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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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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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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ism)


BY 정자 2006-10-28

2006년 10월 28일 12:15:19

아마 그 사건이 한 팔년지났나 싶다.

첫 번째남편은 형제만 여섯이다.

그런데 두 동생은 군인일 때 교통사고로 죽고,  한 동생은 여섯살 때 열병으로 사망했다.

 

그러니까 시어머니는 두 아들을 잃은 어미였다.

그래선가 애착이 더욱 강했다.

나는 결혼을 하자마자 시어머니의 딸이 된 것처럼 착각했다.

그럼에도 그런 모녀는 세상에 없을 고부간의 갈등을 심하게 앓아야 했다.

물론 나도 힘들었지만. 시어머니도 힘들었을 것이다.

 

며느리의 뒷꿈치만 봐도 밉다는 말이 있다. 아마 내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네 아들이 모두 결혼을 하니 네 며느리가 생겼다.

문제는 막내 며느리였다. 나에게는 막내동서가 된다.

 

이를테면 고자질이라거나, 이간질은 맡아놓고 하는 여자였다.

무엇이 목적이였는지 모르지만, 부창부수라고 막내아들도 부화뇌동 하였다.

셋째형에게 겁없이 그랬다는 거다. 형이 이혼하면 자기가 다시 재혼을 시켜주고, 조카도 키워준다면서 주먹을 셋째동서에게 휘둘렀다고 했다. 그에게는 셋째형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들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도 막내 시동생의 주먹에 한 방 얼굴을 제대로 맞아 퉁퉁 부은 적이 있다. 하긴 그 날 이후로 모든 관계는 정리를 했다.

서류상 이혼은 안 했지만, 일절 시집이 있는 동네 백미터 근방에 까지 나는 접근을 꺼렸다.  약 팔년전에 이런 일을 겪은 이유가 바로 시어머니 생신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신을 비롯하여 명절이니 제사니 모든 집안행사에 가지 않을 것이며. 설사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도 뭐라고 하거나 욕을 하면, 그 날이후로 내가 당했던 모멸과 폭력을 일일히 적은 서류를 법원에 제출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첫번째 남편은 그러다 말겠지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해가 바뀔때만다 어째 집안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행동과는 전혀 관계는 없었다.

 

 기세가 등등해진 막내동서는 또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세아이가 되었다. 난 그 조카들을 한 번도 보러 가지 않았다. 물론 그 쪽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못하는 줄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기다리지는 않는다. 나와 아무상관없이 아주 잘살고 있을 것이고. 가정을 지켜주며, 나와 맞지 않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꽤 힘이 들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막내시동생은 반은 건달이고, 반은 백수다. 그럼에도 부모는 이걸 어쩌나 하는식으로  보듬고 안아주는 방법을 택했다. 문제는 막내동서의 살림수준이다. 무엇이든 고급이어야 하고, 많아야 하며, 늘 부족함없이 살아야 하는 고정관념에 늘 쩔쩔매는 천상 지금의 이십대 여성이었다. 이런 생각에 늘 남편을 졸라대고 매양 요구하는 것들이 순전히 결국 돈으로 끝내는 일이 거진이었다. 이런 결혼생활이 오래가라고 빌어도  만무했을 것이다. 더구나  첫 아이는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보니 생활비는 고사하고 늘 부족함에 종종대는 것이 일상이 되버렸다. 그러더니 어느 명절에 첫 남편이 풀 죽은 얼굴로 돌아왔다. 그 명절엔 네명의 며느리가 참석하지 않은 명절이었다. 나는 올 것이 드디어 왔구나 싶었다. 달리 할 말도 없다. 그렇다고 거 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그러니 그 여시같은 것이 지 혼자 명절 다 치루고 부모님 재산 탐나서 그렇게 하다가 지풀에 지쳐 나가 떨어진 거 아녀? 왜 명절 지나면 다시 들어온 다는 거여? 이렇게 첫남편에게 묻고 싶었지만 나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애기는 시집식구들이 다 짐작하고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부러 말을 하여 이젠 나 때문에 그렇게 된거라고 얼마든지 덤태기 쒸우는 거 시어머니는 얼마든지 할 수있다.

 

 첫 남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울증이 심하다는 구만.."

"누가?"

" 막내재수씨가..."

 

 우울증이 심하다구? 이거 뭐가 잘못되도 한 참 채널이 맞지 않다.

나에게 이 세상에 없을 도둑년이니, 사기꾼이니. 씨발년이니 이런 소리를 마구 질러대는 목소리 큰 여자가 우울증에 심하게 걸렸다구? 차라리 독감에 걸려 목소리가 안나와서 고생한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수긍을 하겠지만, 뭘 잘못먹었나 휴유증이 심해진 거 아녀? 했더니 첫남편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게 그런데서 병이 오는 거냐?

 

 하긴 그렇기도 하다. 원인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괜히 우울증까지 뒹굴어 버리는 바람에 일이 커진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면 되는 거다. 어쨋거나 웬수는 남이 갚아준다고 하더니. 나는 굳이 적이니 원수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그래도 잘 살지... 시어머니랑은 제일 격의 없이 잘 지낸 막내동서였는 데.

그 덕에 내가 멀쩡히 큰 며느리 자리를 지키고  아직 호적엔 내 이름이 있는데 말이다. 물론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시집은 나의 요구를 묵묵부답으로 처리했었다.

맘에 안들면 지금 당장이라도 큰 며느리 자리를 내 줄테니 빨리 호적정리를 하라고 한 적도 있고.  

 

 전화를 하고 싶은데 수화기만 괜히 들었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으면서.

왕래를 끊고 신기하게 그 집 전화번호도 잊었다. 참 편리한 기억이다.

셋째동서에게 손전화를 했다. 이미 셋째도 들은 소식이라고 했다.

 

 " 아이구 형님..거 봐유..남에게 피눈물 나게 해서 지는 발뻗고 잠이 잘 올 것 같아유?

   시상에 형수들 패고 쫒아내는 그런 아들을 낳은 에미나. 그 여편네나 잘 살 것같어유.?

   내가 먹고사느라 바뻐서 그네들 잘못되게 해 달라고 빈 적은 없지만, 잘 살아달라고 눈꼽만치  맘이 안생기네유? 큰 형님이 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많았어요? 에휴..내 참 기막혀서 어디에다가 애기를 해도 거짓말이라고 하지 이게 어디 사람사는 애기여유?

 

 그동안 쌓이고 쌓은 감정이 기어이 나의 귓가에 터지고 만다. 나도 속으로 그랬다. 그려...

왜 하필 여자로 태어나 조선시대의 소박데기처럼 야반도주를 하지 않나. 첫남편의 우유부단한 성격탓에 어지간히 고생한 것을 옆에서 다 지켜본 셋째동서가 열변을 토할 만하다. 그런데다가 본인도 막내동서때문에 시어머니와 결별을 고하며 이혼을 해버렸으니 이것도 숨길 수없는 아픔이고, 종적없는 둘째 동서는 이젠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을까....

순간 내 손전화에 반짝 거리며 한통의 문자가 왔다.

 

" 오늘 저녁에 전화 요망"

간단하다. 두번째 남편은 나에게 늘 이렇게 신호를 보낸다.

싫다고 그렇게 말해도 못 들은 것처럼 늘 새롭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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