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미망인이다. 언제부터는 과부라고 불리웠다. 그것도 아주 가난한 과부라고 했다.
말이 그렇지 이런말은 젊잖은 말이다.
누구는 눈 떠서 확실히 봤다고 했다. 그 과부가 누구와 눈이 맞아서 보리밭에서 나왔느니. 방앗간에 갔더니 그녀는 안보이고 쌀자루만 덜렁 있고, 나중에 돌아보니 치마며 저고리에 지푸라기가 붙어 꼴새가 어디 몸 파는년이라고 했다. 화냥년이라고 하기도 했다. 동네 여자들은 꼴사나운 광경을 본 듯이 그녀를 모두 입에서 씹는 심심풀이 껌보다도 못한 처지를 만들었다.
문제는 그녀의 자식들이었다. 분명히 전 남편의 자식이다. 본인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사이다. 사실 그녀는 두번째 아내였고, 둘째 부인이였으며, 두번째로 얻은 며느리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과부라고 불리웠고. 자식들은 애비없는 후레자식들이라고 불렀다.
기세가 등등하던 시어머니는 이미 머리에 눈이 내릴 데로 내려 염색이 된 흰머리다.
꼭 세월이 흘러서 영낙없이 머릿카락 숫자만큼 밥을 먹어야 익는 나이는 절대 속일 수가 없다. 처음에 얻은 며느리를 얼마나 호되게 시집살이를 시켰는지. 아침에 눈뜨니 두살배기의 앙칼진 우는 소리에 도망을 간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남편은 주태백이 되어가고, 시어머니는 그렇게 바라던 손주를 업고 다니면서 품팔이를 했다. 모두들 뭐라고 했다. 아들 낳아주던 며느리 구박하더니 이젠 벌 받은 거라고 뒷구멍으로 입품을 열심히 씹어대던 동네 인심들이었다. 몰골이 아니었다. 사정이 급하니 얼른 시어머니는 나간 며느리보다 넘 보란듯이 착한 며느리 얻어 보겠다고 있던 논 서마지길 팔고 중매쟁이한네 덤으로 한 뙈기 준다고 약조를 하고 얻은 며느리가 바로 그녀였다. 남편의 건강은 어머니와 며느리에 아랑곳없이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이젠 아들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게 된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사정을 한다. 제발 남편 죽더라도 얘들은 우리 얘들은 봐줘야 한다고 누누히 그녀를 앉혀놓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일년만에 훌렁 가버린 것이다. 정작 그렇게 되니 그녀는 무슨 명령을 받은 것처럼 묵묵히 그 세살배기의 막내 아들을 업고 얕은 야산을 넘어 늘 가는 곳이 생겼다. 근처엔 사시사철 곳곳에 나물이며, 약초며 뭐 그런것이 지천이였는데, 그런 일을 하다보면 늘상 옷 매무새가 단정 할 리가 없다.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고, 치맛자락은 멋도 모른채 나뭇가지에 걸려서 북 찢어지는 게 대개이고 머리는 산발해지는데. 지나가는 이들은 이게 모두 어떤 놈에게 겁탈을 당한거라니, 누굴 꼬셔서 유인했는거라니 수군거렸다, 저녁 나절에 일찍 해가 떨어지는 늦가을 무렵에는 산밤을 한자루 줍고, 고구마이삭을 또 한자루를 이고 오니 사람 몰골이, 아니 여자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또 과부하나 지나간다고 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한 삼사년 지나니 이젠 얘들이 학교를 가니 그녀는 더욱 바빠졌다. 더욱 늙은 시어머니는 이젠 발걸음도 큰 손녀의 손이 지렛대처럼 되어 지팡이 잡고 흔들거려서 옆에 같이 있는사람들도 어지럼을 느낄 정도이다. 시어머니는 오로지 며느리 단도리가 먼저이다. 저녁에 해 떨어지게 무섭게 얼른 대문에 달려 있는 삼십촉짜리 전구를 키라고 한다. 집에 돌아오는 며느리 캄캄해서 길을 잃는다고 했다가도, 그러다가도 전깃세 나간다고 끄라고 했다가 하루 몇 번씩 들락 날락하는 정신이 되셨다. 그래놓고 혼잣말로 그런다. 매친 것..지 새끼 못키우는 년은 팔자가 드러운 거고,,,남 새끼키워주는 울 며느리는 내 죽어서도 복 빌어 줄 거다....두고..두고.
그러게 있을 때 말한마디라도 살갑게 해야지..아 ! 요즘 세상에 옛날 며느리 다루듯이 하면 보채기로 튀어나간다니께! 갈데 많고, 요즘엔 여자가 아무리 많아도 내 새끼 걷어줄 여자가 하늘에 별따는 것보다 더 기막힌 일이랑께. 그니께 암말 말고 수복이 엄마한텐 절대 욕하지 말어... 그래도 아들 장가가서 지새끼 셋씩이나 나준 거 고맙다고 해야지...
한 이십분거리에 사는 영태할멈이 간간히 들러서 마실을 오는 모양인데, 동네 소문이 이렇고 저렇고 말이 많아도 입 콱닫고 살아야 한다고 그녀에게 누누히 당부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분이 사실은 사촌지간인데 고모뻘이고 보니 남일은 아니고, 말이라도 덮어주고 밀어주고 했던게 그녀에겐 여간 힘이 아니었다. 든든한 빽이 된 것이다.
아이들은 커지고 먹새는 그만큼 늘어나고, 학원은 그렇다치고 국민학교는 그냥 공짜교육도 아닐 시대이고, 내 자식이라면 그냥 한 해 두해 사정 봐가면서 보낼 수 있는데. 이게 그게 아닌 것이다. 처음에 시집왔을 땐 큰 애가 막 여덞살 계집애가 이제 초등학교 사학년이고, 둘째가 일곱살이되어 학교에 입학하니까 수복할머니가 그런다. 아이구..이제부터 시작인디.. 이 년이 너무 오래 살어서 너희들 입먹새도 덜어낸다 했다.
착잡한 그녀의 표정이 더욱 수복할머니의 얼굴에 겹쳐졌다.
여자는 더구나 몸이 약했다. 특히 그녀는 오랫동안 막일이라는 것에 후달려서 골골했다.
되레 시어머니보다 먼저 갈 것같은 퀭한 눈에 힘이 들지 않는 목소리는 아이들도 할머니도 심란하게 했다.
이러다 안되겠다 싶어 그 어지러운 걸음으로 수복할머니는 걸어서 약 십오분 거리에 사는 홀아비 인혁이네를 찾아갔다. 그렇게 그녀의 두번째 남편이 될 사람을 시어머니는 어려운 걸음으로 걸어서 말문을 열려니 입은 있는데 말문이 콱닫힌채 인혁이네 마루에서 털썩 주저 앉아 노을에 젖어가는 하늘을 먼산 바래기처럼 눈물만 얼굴에 고이고 흐르게 했다.
암암리에 일종의 계약결혼을 시킨 셈이다. 분명히 시어머니는 그랬을 것이다. 재혼한 며느리대신 아이들을 굶지 않게 하고, 적어도 학교는 고등학교까지는 보내달라고 신신당부하였을 거다. 며느리는 가끔가다 아이들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을 것이고, 그럼 인혁아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조를 했을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상처한 후 여기저기 재혼을 고려해보았지만 전실자식이 네명에 나이도 웬만한 중늙은이니 누가 선뜻 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수복 할매가 직접 찾아와 어려운 말을 하니 인혁아범도 알고 있을 상처를 겪고 있는 그녀가 오히려 편안한 재취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도 모르게 인혁어매가 되었고, 수복어매도 되었다.
그러니까 자식이 모두 일곱이 된다.
이 일곱자식의 어매가 바로 나의 당고모다. 멀다면 먼 친척이다. 그런데도 난 이 당고모를 보면 그렇게 착하게 살아서 혼자 복을 흘리고도 주체못해 여기저기 바르고 다닌다.
일곱자식들은 모두 제대로 성장을 해서 부모라면 눈을 제대로 못뜨고 껌벅 죽는 시늉을 한다. 그렇게 우애를 가르치지 않았건만 그들은 그게 전부인 양 서로의 인정을 퍼 담아 나르는게 일이다.. 나이가 구십이 넘으니 온 동네가 잔치를 해도 시원찮을 태세인데도 당고모는 그랬다.
니들 아버지가 간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디...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미안하다.
너희들을 성가시게 하는것도 싫고. 아이구 왜 이리 내가 오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잉?
니는 아냐?
고모는 ...
내가 그걸 알면 여기서 살어..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제. 참 내...
전남편 아들 수복이가 벌써 오십줄을 바라보는 중년이니 세월이 그렇게 업어가고 바람에 실린 구름보다 더 빨랐다. 이렇게 처음 할머니가 된 여자옆에서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 것인가 한참 고민도 했다. 쭈그려 앉아서 나의 뒷 그림자를 유심히 살폈다.
일어나서 살 살 걸어 보았다. 그림자도 걷는다.물론 나의 그림자이다.
웬지 낯설다. 당고모의 그림자나 나의 그림자색은 똑같다.
단지 등휜 산맥처럼 구부정하고. 아직은 오만하게 꼿꼿한 나의 그림자.
이젠 내가 분명해져야 할 때가 온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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