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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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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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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BY 유 진 2006-09-21

현숙은 병원에 가면서 바지가 무릅까지 젖었다.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다.

현숙을 보자 얼굴을 찌푸리며  "택시 타고 오라니까...  그게 뭐야?"

현숙은 남편이 뭐라뭐라 하는데 들리진 않았다.

그냥,  난처한 표정으로 잘 자는 동찬을 투닥 거렸다.

" 정형외과 더라...  올라가자.    아니다!  다른 병동이라 던가?  건물이 다르다더라.   가자..."

현숙은 "정형외과?  사고났대?"  놀란 말투는 아니였다.

남편은 "당신이 전화를 안 받았다며?   동네여자들이랑 수다나 떨고 다니지 말랬지?"

남편은 그 와중에도 뭔가 기대에 벅찬 목소리 였다.

현숙과 처음 결혼 하자고 할 때도 이런 표정였다.

하지만...하지만 조금 지나면  동찬을 낳았을 때처럼 검은 얼굴로 바뀔것이다.

현숙은 불안 했다.     전화번호를 남겨 준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 했다.

다른 병동을 찾아 분주한 남편에게 현숙이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저...  동찬아빠,  나 혼자 가 볼테니 기다려...  전화는 어떻게 받은거야?  집에 왔었어?"

남편은  표정이 굳어져서  "그래,  엊그제 야근하고 또 출근해서 힘들었는지

머리 아퍼서  도저히 일 못하겠어서 집에 쉬러 갔다.   

너,  내가 늙은 남편이라고 장인어른 보여 주기 싫은거냐?

장인 어른 목소리만 좋더라... 

반가워 하시고,  나 한테 사위사위 하면서 목소리만 좋더라...  너 뭐 또 속인 거 있냐?"

 

현숙은 거짓말을 했다.   

현숙은 남편이 15살 많아도 괜찮았다.    아버지도 안 괜찮을 건 없다.  

그런데, 남편에게 나이도 많고, 고아 라서, 다리까지 불편한 사위를

아버지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다고 거짓말 했다.

"속인거? "  현숙은 말문이 막혔다.   

그저,  몇년전에 동찬이 낳고 남겨둔  전화번호 적힌 메모지를 찟어 버리고 싶었다.

남편이 모처럼 입은 양복의 구김과, 살짝 불편한 왼쪽다리의 미소가 너무 안스러웠다.

"속인거......  동찬아빠..."  현숙은 뭐라고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남편에게 이끌려 병실에 이르렀다.

일인실...병실에서  싼그릇 깨지는 소리같은 여자의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남편은 멈칫 하더니  병실에 적힌 이름을 확인 했다.

"여기다...들어가자."   병실문이 삐걱 열리고 문틈으로  여자의 빨간 립스틱이 반짝였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남편은 작은 목소리로  "저...안녕하십니까?"  머쩍은 인사를 했다.

현숙은 여전히 병실에 들어 가지도 않고 서서 바라만 보았다.

"아!  네...호호호호  오셨구나.   아이구,  오셨네요?  호호호호 오셨어요..."

여자는 계속 싼그릇을 집어 던져 깨버리는 웃음소릴 한다.

"주무시나요?" 남편은 할말이 없는지  아버지만 바라 보았다.

"자기야...일어나!  언능...일어나라니깐."  여자는 참...요란스러웠다.

아버지는 눈을 부비며 짜증스럽게 일어 났다.

"뭐야?"  화를 내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현숙은 아예 고개를 돌렸다.    그런 현숙을 남편이 병실로 끌어 들였다.

"어이!  사우 왔어? 하하하하...  우리 현숙이 왔냐?"

현숙은 '우리현숙이' 라고 불려지자 마자 동찬이 퍼대기를 꼭 쥐며

달리기 준비를 하듯 이도 악 물었다.   눈도 깃발을 바라보듯 아버지를 쏘아 보았다.

그러나, 달리기 출발 깃발을 쏘아 볼때처럼 가슴은 요란하게 쿵쾅 거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현숙의 얼굴이...

아버지는 남편의 얼굴을 가만 보더니  "허허, 자네도 나처럼 능력이 있네 그려?"

남편은  웃을 뿐 였다.  

"우리 현숙이가  조카벌은 되잖여?  저 사람도 나보다 아홉살 애려...히히히..."

남편은  당황 했다.   

빨간여자는 남편에게 찡긋 눈을 감았다 떠 보이며 잊몸을 보이며 웃는다.

현숙은 파르를 떨었다.    징그러웠다.

"우리 현숙이는 잘 지낸거야?"  벌건 아버지의 목소리에 현숙은 아무 대답도 안 했다.

"우리 현숙이...잘 부탁하네? 허허허허... 물 좀 줘!  이 잡것이 무슨정신으로..."

빨간여자가 입을 씰룩 거리며  주전자를 들고 나가려 하자

남편이 자신이 가겠다는 듯 주전자를 받아 들었다.    돌아 서서 걷는데...

"아니?  다리가 병신인가? "  남편은 멈춰 서 버렸다.

현숙은 참을 수가 없었다.   

"뭐요?  병신?   병신은 내가 병신이라고 안 했어?

 동찬이 낳고,  갈 곳 없어  갔을 때 뭐라 했어요?

 병신 같은게,  병신짓하고 돌아 다닌다고 창피 스럽다고...

 집에서 개가 강아지를 낳아도 따뜻한 국 한그릇 주는게 사람인데...

 그때,  아버지 어떻게 했어?  저 여자랑 먹게 사골 좀 사오라고 했잖아.

 그런 사람이 병신야..."

남편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현숙의 손을 끌어 당겼다.   " 너,  왜그래?"

현숙은 얼굴이 시퍼렇게 되어서 다 집어 던질 기세였다.

동찬이 깨어 엉엉 울었다.   현숙은 남편에게 동찬을 안겨주며  "당신 나가있어!"

남편은 얼떨결에 동찬을 달래며 복도로 나갔다.    빨간여자도 나가려 했다.

"아줌마도 여기 있어!"  현숙은  당당했다.

"저 년이 아줌마 아니고 네 새엄마야!! 저 지독한 년...  눈 뜨는 꼴 좀 봐..."

그렇게 벌건 아버지와 시퍼런 딸이 으르렁 거리는 짐승 같았다.

"새엄마가 도대채 몇번째 바뀌는 거야?  능력?  유유상종야!

 아줌마 나 동찬이 낳아 갔을 때 동네사람들 불러서

 우리 동찬이 구경 시켰어? 안시켰어?   깜둥이 라고 웃었어?  안 웃었어?

 미역 좀 사달라고 돈 삼만원 주니까... 어떻게 했어?

 김 한봉지 디밀며  미역국 힘들게 끓여 먹지 말고 편하게 밥 먹으라고...

 찬밥에  김 한접시,  김치도 없다면서 돈 좀 더 달라고 했어? 안했어?

 그래놓고,  아버지랑  닭 사다 먹고, 등심 사다 구워 먹고...

 방이라도 따뜻하게 해 줬어?   물이라도 따뜻하게 끓여 줬어?

 매일 우리 불쌍한 동찬이 구경하라고 사람들 불려 들였잖아!"

현숙은 눈물도 말랐다는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할 말이 있었다.

" 내가...  내가 딸이야?  우리현숙?  어떻게 그렇게 불러?

  아버지가 내게 아버지야?   내가  열여덟에 뛰쳐나가  겨우겨우 옷입고, 먹고 살 때

  내게 찾아 와서  돈 내 놓으라고 한게 아버지야!  우리현숙이?

  내가  아셉이랑 결혼 한다고 하니까... 아버지 어떻게 했어?

  결혼 하려면 돈 내 놓으라고...  작은방 하나도 얻을 돈이 없는 우리한테...

  돈 내놓으라고...불법체류자놈새끼 신고 한다고... 

  스므살 밖에 안 된 딸에게  그렇게 했던 아버지야!  

  딸하고 살려면 돈 내놓으라고 한게 아버지야!

  그런데,  아셉이 돈 벌려고  약한 몸으로 열여덟시간씩 일하다 죽었을 때...

  아버지는 보상금 챙기느라고...  엉엉엉엉엉엉엉엉... 

  그게 아버지야!  그때 받은 돈...  어떻게 하고?  

  살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울던 아셉이 내 손 잡고 돈 못줘서 미안 하다고...

  그러다 죽었단 말야... 

  딸이 살던 남자가 죽고 받은  그 돈을 챙겨 가버렸잖아.    

  나 혼자  스물둘된 나 혼자서  아셉을 보냈어.

  아...엉엉엉엉...   그런데?  그런데?   병신이라고?

   저 사람  동찬이도 받아 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야...

   해골같은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골 사 달라고 하는 사람이 병신야!

  앙앙...  내가  어찌 산지 알어?  알고는 싶어?

  수술비 받으려고?    줄 것도 없지만... 받고 싶으면 그렇게 나를 팔아야 해?

  병신이니까...돈 내놓으라고?  "  

 

현숙은 여전히 시퍼렇다.   아버지는 말이 없이 괜히 천장만 바라 보았다.

"나쁜년... 지 애비도 모르는 나쁜년...

 가!  나쁜년아!  병신, 늙은이 하고 잘 먹고 잘 살아라!"

현숙은 더 이상 토해 내고 싶지도 않았다.

빨간여자는 껌을 꺼내 씹으며 현숙을 쏘아 보았다.

현숙은 나가려다...  빨간여자의  따귀를 세게 쳤다.

"악!   이게 무슨?  야! 이 어린년이..."

현숙은  이를 악 물고 무섭게 바로 서서 말했다.

"내가...내가 잊을 줄 알아?   우리 동찬이 구경거리 만든...

 사람 같지도 않은  당신을 잊을 줄 알아?  

 내가 그때 얼마나 참은지 알아?  미친..."

현숙은 문을 세게 닫고 병원 복도에 즐비하게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헤치며 그냥 걸었다.

그리고,  터진 울음을 꼭꼭 눌렀다.

계단을 밟고 내려 오는데...  앞에서 오던 이들이 모두 슬금슬금 피했다.

현숙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무서운 얼굴로 세상을 향해 있는지 모른다.

그냥...   살고 싶다고, 미안하다고 하던 아셉과,  

동찬을 구경하며 키득였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독하게... 독하게 견디고 있을 뿐이다.

 남편이  동찬을 안고  현숙을 가로 막았다.

" 미안하다...   동찬이 낳았을때  내가 곁에 있어야 했는데...  몰랐어.    장인어른이 잘..."

현숙은  남편을 보지 않고 "장인어른 이라고 하지마... 그때 얘기는 하지도 마..."

남편은 현숙의 손을 꼭 쥐었다.     현숙은 뿌리쳤다.

그때 빨간여자가 쫒아 와서  "야!  그래도,  네 아버지인데... 병원비 천만원인데..."

현숙은 여자를 쓰러뜨릴 듯 가슴을 밀치면서

"천만원?  당신 천만원 아니면? 내가 가만 안 둘거야...  천만원? 병원비가?"

현숙은 비웃듯 웃었다.

여자는 다시 떨면서 말했다.    "입원한 동안 놀았고...한동안 놀아야 하는데..."

현숙은 크게 웃으며 "언제는 일 했어?"  라고 했다.

여자는  "그러니까...못 줘?   그럼 나,  네 아버지 모른다?   나도 살길을 찾아야지..."

남편은 조용히 사라졌다.

"맘대로 해... 아버지를 알던지, 모르던지  당신 마음대로 해.   비켜... "

현숙은 여자를 툭 치고 계단을 내려 와  병원 출입구로 왔다.

남편이  돈을 치르고 있었다.     현숙은 할 말이 없다.

현숙은 더 굵어진 빗속으로 들어 가서 크게 울었다.

눈이 벌겋게 되어서... 

"동찬엄마!   동찬엄마!" 라고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빗속에서 크게 울었다.    

아셉이 마지막 날에 

"나,   너 아빠한테 돈 못 주고 가... 나,  너한테 하는 일 없다.

형쑥...  미안해...  우리집에 같이 가고 싶었어...같이...형쑥,  사랑해..."  그랬다.

 

현숙은  빗속에서  "다... 그 바보같은 아셉놈 탓이야...엉엉엉엉..."

동찬아빠는 동찬을 안고 택시를 타고 현숙을 따라 와 현숙에게 타라고 소리 질렀다.

현숙은  택시를 타고  봉다리맨션으로 실려 갔다.

비가 언제까지 오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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