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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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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BY 유 진 2006-09-06

저녁의 푸른 어스름도 여름이라 그런지  잘 삶은 가지처럼 검보라 빛으로 흐느적 거렸다.

밤에도 여름낮의 열기는  막 삶아 건진  당면처럼 잘 식지도 않고 뜨거운 덩어리로 뭉쳤다. 

두동의 봉다리 맨션엔 나무가 넉넉히 심어져 있었는데,  한결 같이 버드나무 흉내를 냈다.

축축 늘어져  송충이도 잡을 힘이 없는지 뚝뚝 떨구고 있었다. 

두동의 맨션 중앙에  심어진 느티나무는 이십년이 넘었으리라.   가장 탄탄히 서 있다.

등나무는 십년전에 광순씨가 건의 하여 심었단다.    친구가 입주한 새 아파트에 다녀와서...

들마루는 광순씨의 남편이 뚝딱 만들어 놓았단다.    벤치를 대신하여 놓았단다.

봉다리 맨션은 이 동네에서 그래도 산다하는 사람들이 살았었단다.

지금은 물론 아니다.    소문에는 지금도 연탄을 쓴다느니,  쥐가 많다느니...서민의 집 이다.

각동의 뒤에는 텃밭이 있다.   중앙 화단에도 화분마다 고추를 심어 놓아 매운내가 싱싱 하다.      때로 누군가 풋고추를 따간다는 새벽의 고성도 싱싱 하다.

봉다리 맨션에 오늘밤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 울려 퍼진다.

맨션 우측으로 크게 다져진 신작로 까지 울려 퍼지는 밤을 알리는 소리.

"양현숙!  양현숙! 내가 왔다.    나와!  당신은 땡벌...땡뻐어얼... 우해해해"  그가 오늘도

취했다.    흥건히...취해서 넘어지고 일어나고 노래 한다.

1동의 302호 창문과 2동의 302호 창문이 동시에 열린다.

"아저씨 미쳤어요?  시끄럽거든요?  못살아!"   찌이익...콱,  라면의 앙칼진 목소리에

현숙의 남편은 달려 올라 갈 기세로 씩씩 대며 손가락질에 발길질에 난리다.

"야 이년아!  봉다리가 다 네 꺼냐?  저 씨앙...야!  나와!  너 내가 간다?"

2동 302호 창문에서는 현숙의 얼굴이 보였다 말았다 한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생각하면, 살짝 비치다 사라지고 다시 비치는 표정은 어제 흙을 덮은 무덤 모양으로  붉게, 축축하게 슬프다.     고통의 끝처럼  아무말 없는 슬픈무덤.

현숙의 남편은 한밤을 사오십분 뒤흔든 후에야 집으로 들어 갔다.

그런데,  이어서 무엇인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와  현숙의 울부짖는 소리가 다시 여름밤을 흔들었다.     듣기에도 소름이 돋는 살 치는 소리...   비명소리...  남자의 괴성과 아이의 울음소리는  징그럽기 까지 했다.    몇집에 불이 켜졌지만 곧 꺼 졌다.

마치 '2동 302호 잖아.   시끄럽군.  또야?'  하는 말을 불빛이 하는 것 같았다.

현숙이 뛰쳐 나오고 나서야  조용하다.   동찬을 업은 현숙은  누가 볼까? 싶은 부끄러움도 없이 맨발로 들마루에 앉는다.    "아씨...나쁜새끼...흑흑흑 동찬아 자......자장자장..."  그녀의 어깨는 부끄러워 했다.   더운여름 밤에 입은 허름한 면원피스가 흘러 내리게 흐느끼고 있었다.    "아씨...나쁜새끼...아씨...흑흑흑..."   그런 그녀에게 우경이 조용히 다가 온다.

"왜?  또... 어디보자.   괜찮니?"  우경이 현숙의 얼굴을 보려하자 현숙은 고개를 돌린다.

"언니,  나  이불 좀 빌려 주라?  내일 빨아서 줄께.  응? "   우경의 한숨이 깊다.

광순과 춘선도 나왔다.    그녀들은 말 없이 보기만 하다 동찬을 현숙의 등에서 내린다.

춘선은 동찬이를 대리고 집으로 투벅투벅 걸어 간다.     광순도 현숙의 어깨를 토닥 일뿐 아무말도 없이 잠시 서 있다 들어 갔다.     우경이 이불을 가지고 왔다.

"아니?  꼭 여기서 자야 해?  춘선 언니한테 가면 안되니?  가라..."   우경이 아이 달래듯 달랜다.    "아냐...  저 새끼 다 보고 있어.   그럼 또 다음에 춘선 언니집에 가서  횡포 부리라구?  잠도 안자고 나를  보고 있더라구.   벽에 붙어서...영화 찍고 지랄이야.   여기서 자다 들어 가면 되니까,  들어 가 언니.    참!   아저씨는?  들어 왔어?"   우경은 현숙을 보며 고개를 젖는다.    "아니,  그게 궁금해?  이 상황에?  못 말린다.  갈께.   잘 쉬고 내일 커피 마시러 와."

현숙은 알았노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들마루에 누워 얼룩거리는 하늘을 보았다.

"나쁜새끼...그 새끼 때문에 이 고생야...나쁜새끼..."  현숙은 잠이 들었다.

새벽 세네시쯤 현숙을 누군가 툭툭 친다.     "들어 가자.    야,   일어나."  하면서 깨운다.

현숙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 난다.    "깜빡 잠들었어...들어 가려고 했는데,  내가 잠이 들었네.   미안해. "  현숙은 주섬주섬 이불을 챙긴다.

현숙의 남편은 먼저 집으로 향하고 그뒤를 현숙이 쇠똥구리의 쇠똥처럼  구른다.

쇠똥구리에 끌려서 간신히 간신히 끌려 간다.   계단을 오르며 남자가 말 한다.

"다시는 안 그런다.    동찬이 놀랐겠지?"  현숙이 그 말에 흐느껴 울며 "괜찮아..."

참으로 이상한 이해 안가는 모습이다.     그녀가  괜찮은가?

그녀는 팔뚝에 꽉 쥐어 틀어 버린 벌건 손자욱이 남았고,  얼굴도 퉁퉁 부어 있다.

등도 아픈지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따라가면서,  괜찮다니...  어쩌면 미친 것인지  살짝 웃기까지 한다.    현숙이 그녀가  웃었다.    무덤에 새로 싹을 티우고 피어난 제비꽃처럼 멍든 미소로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은 얼굴은  지면에서 봉긋 솟은 무덤처럼 부어 있었다.    그녀가  현숙이다.    동찬엄마, 현숙 이다.     봉다리 맨션 2동 302호 양현숙.

현숙은 결혼전 지금의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동거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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