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에서 원하는 조촐한 약혼식은 진행되지 못했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기자들에 의하여 약혼식장은 북새통을 이루었고,
언론에 노출이 있었던 세현은 비교적 담담했지만,
이런일이 처음인 지원으로선 당황스런 일이었다.
자신이 아는 세현의 모습이 다는 아닌가보다.
세현은 자신은 그대로 노출시키면서도 끝까지 지원은 보호했다.
끈질긴 기자들이었지만, 세현의 노력으로 결국 지원의 모습은 한장도 담지 못했다.
여느 약혼식때 입는 드레스가 아닌 분홍색 개량 한복으로 입은 지원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 같았다.
어느 드레스 보다 더욱 화려했다.
곱게 차려입은 지원의 옆에는 역시나 한복으로 입은 세현이 서있었다.
둘의 모습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선남선녀가 따로 있을까 싶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은채의 가슴 한곳에서 울컥이는 느낌이 들었다.
세현의 옆에 서있는 지원 대신 더 예쁜 모습의 자신이 있어야 했거늘.
필경 꿈이리라 생각한 은채는 자신의 손등을 꼬집어 보았다.
" 아얏!"
아픈것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꿈은 아니었다.
더이상 늦기전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어떻게 식이 거행됬는지 모르겠다.
겨우 옷가지들을 벗어놓고 간단히 씻은 다음 지원은 그대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 싫어, 싫단 말이야.'
자꾸만 자신과 가위바위보를 하잔다.
한번은 해줬다.
지원이 이겼다.
그러자 또 한번 하잔다.
역시 지원이 이겼다.
지원이 이기자 또 하잔다.
그런 돼지를 피해 지원은 뛰다시피 걸었다.
그러자 돼지도 지원을 따라 움직였다.
겨우 돼지를 따돌렸다 싶은 마음에 집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려는 순간
어느새 따라왔는지 갑작스레 지원의 품에 돼지가 안긴다.
' 에그머니나.'
깜짝 놀래서 깬 지원은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품을 내려다 보았다.
" 휴.......... 꿈이었네. 그나저나 돼지꿈을 꿨으니 내일은 복권이나 사볼까?"
꿈이었음을 확인한 지원은 입가에 미소를 띄우곤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지나가고 있다.
세현과 나란히 종로를 걷고있지만, 쉽지가 않다.
모두 재야의종소리를 들으려 어디서 왔는지 거대한 인파로 인해 겨우 둘이 손만 잡고 걷고
있을 뿐이었다.
가끔 다른사람의 어깨에 치여 지원이 비틀거릴때면 세현은 어느새 지원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이제 일분이 남았다.
세현과 지원은 서둘렀다.
" 셋, 둘, 하나.........."
' 때 ~ 앵..........때 ~ 앵..........때 ~앵.............'
모든 사람들이 흥분된 가운데에서도 숙연해졌다.
이제 새해가 밝은 것이다.
묵은해의 힘들고 어려웠었던 일들은 잊고 밝은 새해를 맞이하고픈 희망찬 그들의 모습.
모두들 종소리가 다 끝날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다가 마지막 종소리가 끝나자
" 와 ~~~~~~~~~~~"
하고 함성을 지른다.
지원도 그들과 함께 가만히 소리를 질러본다.
추위로 인해 볼이 발갛게 물들어 가면서도 즐거워하는 지원을 보는 세현의 눈빛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언제 어디서나 얼굴 가득히 즐거움이 가득한 지원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별게 아닌것 같은데도 지원은 기뻐하고, 흥분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만 해도 그렇다.
매년 TV 에서 방송되는 모습인데도 처음 보는 것인냥 흥분된 모습이라니.....
이런 지원을 누가 사랑하지 않을수 있을까.
그 누가가 자신이란게 너무 다행이다.
그런 생각에 세현의 마음이 벅차오른다.
세현은 지원을 가만히 자신의 옆으로 끌어안았다.
무슨일인가 싶어 지원이 고개를 들자 그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짝 맞췄다.
깜짝 놀란 지원이 항의를 하려하자 지원의 머리를 헝크리며 더욱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 나 괜찮아요?"
" 이뻐, 지원인 어떤걸 입어도 예쁘다니깐."
" 아이참 그러지 말구요, 나 세현씨네 처음 가는거란 말이예요."
" 새삼스럽게 뭘, 우리 부모님도 다 알고, 세찬이도 아는데 부담갖지 마."
" 세현씨도 참. 말이야 쉽죠."
새해가 밝아 세현의 집에 인사를 가는 지원이 긴장상태다.
둘의 모습을 보다못해 지운이 끼어든다.
" 그래, 세현이 말대로 해. 한두번 본 어르신들도 아닌데 뭘그래. 정 부담스러우면
교장선생님댁에 인사 가는거다 생각하면 되잖니."
"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네 뭐."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조금의 긴장된 마음이 남았는지 속이 울렁거린다.
" 어서와 서선생, 아니지 이젠 뭐라 불러야 되지? 호호호"
언제나 봐도 밝은 교장선생님이시다.
아니 이젠 뭐라 불러야지.
지원도 난감해 하자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지원이라고 부를테야. 지원이도 이젠 어머님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 어.....머......님."
" 어머나 듣기 너무 좋다. 그렇죠 여보?"
" 허허허. 그럼 이제 나는 아버님 소리 들으면 되겠네? 어디 한번 아버님 해봐라."
" 아버........님."
" 하하하하."
" 호호호호."
" 아이구 참나 그렇게들 좋아요?"
" 그럼, 맨날 목소리 괄괄한 애들이 엄마 엄마 그러다 우리 지원이 처럼 이쁜 목소리로
어머님 그러니까 얼마나 듣기 좋니? 이왕이면 그냥 엄마라고 불러주면 더 좋으련만."
" 아이구 이사람 욕심도 많네 그려."
" 그런가요? 호호호."
" 어머님도 참."
지원을 맞이하는 세현의 식구들 모두가 지원을 반겼다.
" 자자, 오느라고 많이들 추웠지? 따뜻하게 만두국 끓여 놨으니 가서들 먹자."
어느새 준비했는지 식탁위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만두국이 놓여있었다.
" 지원이 주려고 내가 직접 빚은 거야."
" 선생님 아니 어머님께서 직접요?"
" 그러엄. 나 이래뵈도 음식솜씨가 좀 있거든. 한번 먹어봐."
" 아버님께서 먼저 수저 드셔야죠."
" 그럴까? 자 어서들 먹자."
세현의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자 세현의 어머니, 세현 세찬과 지원이 수저를 들었다.
" 왜? 입맛에 안맞아?"
수저를 들고 입에 넣지 않는 지원을 보고 세현의 어머니가 물어본다.
지원이 조심스레 수저를 놓았다.
" 그런게 아니라........ 사실은 제가 오면서 긴장을 좀 해서 그런지 속이 좀 ........"
" 에고, 미쳐 그런 생각은 하질 못했네. 억지로 먹으려고 하지마."
" 죄송합니다, 어머님."
" 죄송하긴. 그럼 따뜻한 차라도 한잔 줄까?"
" 아니예요."
순간 불쑥 자리에서 일어난 지원이 한손으론 입을 막고 핼쓱해진채 뛰쳐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