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시계를 맞추지 않았어도 항상 일어나는 시각에 지원은 눈이 떠졌다.
시계소리에 맞춰 일어나고, 바삐 바삐 움직이는 하루일과였다.
오늘은 시계소리에 연연하지 않고, 침대안에서 한껏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겨울방학의
첫날이다.
벌써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됬다.
자신의 반아이들을 떠올리자, 지원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후훗, 지금쯤 애들은 뭘 하고 있을까?
'똑.똑'
지운은 아직도 침대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지원의 침대로 다가와 걸터앉았다.
" 이 늦잠꾸러기 아가씨야, 해가 중천에 떴어."
" 핏, 아직 9시 밖에 안됬다, 뭐."
지원은 이불밖으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혀를 내밀었다.
" 암튼, 좋은 직장이야. 그나저나, 너 오늘 시간좀 있니?"
" 시간은 왜?"
" 오늘, 오빠 초대된데 가야하잖아."
아, 전에 들은적이 있었다.
올해를 빛낸 젊은이에 뽑혀 만찬에 초대됬다고.
" 근데?"
" 그런데 말이지, 그게 파트너 동반이거든."
" 엥? 이구이구 진작에 여자친구 하나 만들지 뭐했냐?"
" 휴~ 그러게나 말이다, 하는일이 바뻐서...."
" 그.래.서.... 요점이 뭔데?"
이미 내용을 짐작한 지원이지만, 지운의 확실한 대답을 듣기 위해 기다렸다.
" 지원아 ~~~ 사랑스런 우리 지원아....."
뭔가, 부탁할게 있을때 짓는 지운의 표정이 나왔다.
" 왜?"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지운은 지원을 바라보았다.
" 그래서 말인데, 오빠랑 오늘 만찬에 같이 가면 안될까?"
" 안되겠다면?"
" 지원아 ~~~~"
" 그럼 내게 돌아오는 이득은 뭘까?"
" 음~~ 뭐가 갖고 싶은데?"
" 글쎄, 당장 생각이 안나네. 암튼, 내가 원할때 한가지 소원들어주기다."
" 오케."
지원의 오케이 싸인이 떨어지자 지운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지원의 옷장문을 열었다.
" 왜그래?"
" 오늘 모임이 디너파티거든, 이브닝드레스가 필요한데....."
" 암만 쳐다봐라, 나한테 그런게 어딨냐?"
" 지원아, 오늘 4시까지 오빠 사무실앞으로 와."
" 왜 ~ 에?"
" 아무래도 한벌 장만해야 될것 같애."
" 우와......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건 내 소원아니다."
" 이그, 알았다. 시간맞춰서 늦지 않게나와."
" 오케바리."
지운은 지원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곤 나갔다.
" 오빠 이건 어때?"
" 와 ....... 딱이다."
지원이 입고 나온 옷은 섹시함을 돋보이는 그런 옷은 아니었다.
오히려, 순백의 드레스는 그녀의 청순미를 더 돋궜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가슴밑에 라인이 들어가있는 옷으로 무릎밑으로 하늘하늘하게 퍼져
지원의 몸매를 한껏 드러냈다.
드러난 어깨를 가리기 위해 회색 밍크를 둘렀다.
" 후훗. 이런옷 입으니까 되게 어색하다. 근데 나이뻐?"
" 풋, 내동생이지만, 정말 이쁘다."
지운은 사랑스런 눈빛으로 지원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어린아이에서 숙녀로 이쁘게 잘자랐다.
세현은 처음엔 지원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자리인지라, 무료함을 느낀 세현은 샴페인잔을 들고,
한쪽 구석으로 가서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을 훓어보는 중이었다.
처음엔 그저 자신처럼 초대되어온 그런 남녀겠지 싶었다.
높은 은색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발걸음이 왠지 불안해 보였고, 조금 걷다가 결국
자신의 염려대로 삐끗거리는 거였다.
무척 아플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주위부터 두리번거렸다.
그제서야 지원임을 알아본 세현이 지원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어느새 지원의 파트너가
다가와 지원을 부축했다.
남자가 뭐라 말하자 지원이 혀를 낼름거렸고, 남자가 지원의 이마에 꿀밤을 놓는게 아닌가.
세현은 순간 속에서 욱 하는 게 올라왔다.
" 세현씨 여깄었어요?"
어느새 은채가 세현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세현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웠다.
" 우리, 저기로 가요."
남들에게 주목받길 좋아하는 은채는 세현을 지원이 속해있는 그룹으로 데려갔다.
여기 있는 여자들이 자신의 섹시미를 한껏 돋구려고 치장하고 나온 반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있는 지원은 마치 순결한 새신부 같았다.
세현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곳을 쳐다보는 것을 안 은채가 세현의 시선을 따라
그곳에 있는 지원을 보았다.
세현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지원을 알아 보지 못한 은채였으나, 곧 지원임을 알아보았다.
은채는 지원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 허은채 라고 해요. 세현씨랑 같이 왔죠."
세현의 옆에있는 여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어디서 본듯한 여자였다.
" 서지원이예요."
" 난, 세찬이 여자친구 인줄 알았는데..... 내가 틀렸네요?"
은채의 미소를 본 지원은 그녀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났다.
자신의 기억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날, 자신을 비웃던 여자였다.
" 세찬인 내 제자일 뿐이예요."
" 네엣?"
은채의 놀랍지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에 세현이 거들었다.
" 세찬이 담임선생님이야."
" 말도 안돼......"
기껏 해야 이제 스무살이나 됬을법한 나이인데....
지운의 무슨일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에 지원은 껄끄런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지운의 팔장을 끼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지원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곳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았다.
지운은 지원을 자신과의 대화속에 넣어주려고 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아까 들어오면서 삐끗한 다리가 조금씩 욱씬거려왔다.
욱씬거리는 다리를 쉬게하기 위해,
지원은 한쪽에 마련되어있는 휴게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은채가 지원의 옆에서 지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말했다.
" 세현씨주변에서 얼쩡거리지 마."
" 뭐라구요?"
" 세현씨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말라고, 이 아가씨야."
지원은 상당히 기분이 안좋았다.
은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지원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흥분된 상태에서, 자신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 지원의 발이 엉키면서
은채가 보고 있는 상태에서 그만 앞으로 넘어졌다.
" 어머낫."
은채의 고의적인 외침소리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지원을 향했다.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지원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지원은 떨어지려는 눈물을 입술을 악물고 참았다.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지운과 세현의 모습이 보였다.
지운은 지원을 일으켜세우며, 자신이 좀더 신경을 쓰지 못한걸 후회 했다.
" 흑, 오빠 나 집에가고 싶어."
" 그래, 집에 가자."
아까 삐끗했던 것까지 더해져 지원은 절뚝 거리며 지운의 부축을 받으며 나갔다.
세현은 지원이 나가버리자,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지원과 함께 온 그남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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