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벌써 1학년 마지막 시험인 기말고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항상 해맑게 웃고
장난치던 아이들의 모습은 지쳐가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직, 1학년인데도 이러니.......
지쳐가는 아이들을 볼때마다 지원또한 안타까워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고보면, 자신은 행운아였다고 말해야 하나, 남들은 입시지옥이라고 말들 하지만,
자신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한 것 뿐이였으니 말이다.
종례를 하러, 자신의 반에 들어간 지원은 마지막 전달사항까지 말하고 교실을 나오려다,
책상에 엎드려있는 세찬을 발견했다.
" 강세찬, 어디아프니?"
세찬이 얼굴을 들어 지원을 쳐다보았다.
매우 슬픈 눈으로.
헉!
세찬의 얼굴은 자신이 처음 경찰서를 갔을때 그 모습이었다.
" 강세찬! 너 대체 얼굴이.....?"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세찬과 지원에게로 향했다.
" 상담실로 와!"
지원은 상담실로 먼저가서 아직도 놀라서 뛰고 있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문이 열리고, 기가 죽은 세찬이 들어왔다.
" 세찬아, 대체 왜그래? 무슨일로 그런거야?"
" 선생님! 저 절대 가수 할 수 없데요."
" 휴~~~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잖아. 너도 노력한다고 했잖니.
선생님도 설득해본다고 말야."
" 선생님!
집안이 대체 뭐예요?
저 더러 집안 망신 시키지 말래요."
" 뭐? 누가 그러디?"
" 형이요."
순간, 비웃는 세현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지원은 어디서 불쑥 튀어나왔는지 모를 용기가
솟았다.
" 가자."
지원은 세찬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 어, 어딜요?"
" 네 형 있는데."
어떻게 여기 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지원은 세현이 근무하는 강일그룹본사까지 왔다.
세찬을 알아본 경비가 지원을 막아서지 않아, 실장실까지 곧바로 올라온 지원은
실장실문을 벌컥 열었다.
혜경은 노크도 없이 열려진 문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지원을 보곤
어이없는 표정이 되버렸다.
" 아이고, 깜짝이야. 이봐요 아가씨!"
지원은 혜경을 지나쳐 앞에 있는 문을 열 기색이였다.
" 어, 어 이봐요. 이봐요~"
지원은 머리끝까지 화가났기에, 말리는 혜경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강세현이란 교만하고, 잘난척만하고, 자기생각만하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그작자를
당장만나 따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벌컥 문이 열리자 화난 세현의 모습이 보였다.
" 대체 무슨일이야?"
혜경은 얼음장같은 세현의 말에 더듬거렸다.
" 저기, 저기 이 아가씨가..... 안된다고 했는데....."
세현과 함께 쇼파에 앉아 회의를 하던 몇몇의 사람들 또한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지원을 어이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 도대체, 당신 집안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아이를 이지경으로 만들어욧?"
지원은 자신의 뒤에 뻘쭘하게 서있는 세찬을 앞으로 내밀었다.
" 헉!"
" 어머나."
세찬의 멍든 얼굴을 본사람들은 하나같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세현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별명이 얼음덩어리라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저렇게 만들다니.....
사람들은 새삼 세현을 두려운듯 쳐다보았다.
세현또한 어이없는 표정으로 세찬을 쳐다보곤, 자신이 보고있던 서류를 덮었다.
" 오늘은 이만 하지, 다들 나가보세요."
세현은 저 사람들이 나가서 자신에 대한 또 어떤 소문을 만들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 혜경씬 차좀 만들어 오고, 거기 두사람은 여기 앉지."
세현의 시선에서 벗어나고픈 혜경은 빠른걸음으로 나갔다.
" 휴~~ 도대체..... 강세찬! 너 대체 어디서 맞고온거야?"
" 흥, 이젠 발뺌까지?"
정녕, 저여자는 자신을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저지경으로 까지 때리는 파렴치한으로
생각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강.세.찬! 어디서 맞고 온거냐고 물었다."
세현의 하나씩 끊어 말하는 어투에 세찬은 잔뜩 기가죽었다.
" 저기, 저기, 그러니까 말이야....."
" 잠깐, 그럼 세찬일 당신이 이렇게 한게 아니란 말이네요?"
세현의 무섭게 쏘아보는 눈빛에 지원은 자신이 너무 흥분해서 세찬이 말을 끝까지 안듣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났다.
" 당연하지. 아무리 내가 화가 났기로서니.....
동생을 저지경이 되도록 때리는 그런 놈으로 생각했나? 서지원 선.생.?"
차를 들고 세사람의 앞에 놓으려던 혜경은 선생님이란 말에 깜짝놀라 지원을 쳐다보았다.
첨엔 세찬을 발견못해서, 어디 영업사원인가 생각을 했다가, 지원의 뒤에 서있는 세찬을
보곤 여자친구이려니 생각을 했었는데, 선생님이라고?
그나저나 아무리 봐도 선생님으론 안보이는데 .....
아무리 많게 봐도 스무살이상으로는 안보이는데 말이다.
호기심어린 혜경의 눈빛에 세현은 찻잔이 다 놓일때까지 입을 다물었다.
" 혜경씨 수고했어요, 나갈땐 꼭 문좀 닫고."
더이상의 호기심은 사절이란 뜻이렷다.
혜경이 문을 닫고 나가자, 지원은 안절부절했다.
" 저기, 저는 그냥........"
" 휴~~~ "
세현은 자신앞에 놓인 차 한모금을 마셨다.
" 아무튼, 그래도 말이죠. 당신집안이 얼마나 잘났기...., 에, 흠, 흠 조금 잘난것 같네요.
그렇지만, 어떻게 가수 되는게 집안망신이란 망발을 함부로 할 수 있는 거죠?
내가 볼땐 말이죠......"
세현의 다음행동으로 지원은 끝까지 말을 내뱉지 못했다.
풋!
세현이 마시던 차를 입으로 뿜어냈다.
탁.
거칠게 테이블에 찻잔을 놓은 세현은 티슈를 몇장 꺼내 입가와 젖은 양복을 닦았다.
정말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아가씨다.
흥분해서 자신의 사무실을 벌컥 열더니, 다른 사람이야 있건 없건 자신의 말만 내뱉다간
자신의 실수를 알곤 곧바로 꽁지를 내리다가, 어느새 또 말도 안되는 말로 자신을
몰아세우려 하다니 말이다.
지원을 볼때 마다 항상 저조했던 기분이 좋아진다.
" 뭐, 뭐예요. 사람이 말을 하는데...."
한껏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세현을 쳐다보는 지원이었다.
'꼬르륵'
" 푸하하하핫."
" 큭큭큭."
지원의 배꼽시계는 세현만 보면 울리는 가보다.
이런,이런.
세현이 탁자위에 놓인 인터폰을 울린다.
" 혜경씨, 이후에 스케줄이 어떻게 됩니까?"
" 잠시만요.... 서일건설 사장님 따님과 저녁약속 있으신데요."
" 그것 취소 시키고,또 다른일은 없나?"
" 네."
" 그럼, 우리 퇴근합니다."
" 네엣? 퇴근하신다고요?"
" 네, 혜경씨도 시간되면 퇴근하도록."
얼음덩어리가 퇴근 시간도 안됬는데 퇴근을 한다고? 자신이 비서생활 2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 자, 나갑시다."
" 어, 어딜."
" 가서, 저녁이나 먹읍시다."
지원은 붉게 달아오른 볼을 손으로 가리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세사람이 함께 나가는 걸 본 혜경은 참으로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광경을 본 은채의 인상이 험하게 구겨졌다.
자신과의 저녁식사를 취소한다는 세현의 비서전화를 받고 안그래도 구겨진 자존심이었다.
세현이 본인이 전화를 할 수 있는데도, 비서를 통해 연락을 받은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세현이 바이어들과 보다 중요한 약속이 생겼거니 싶어, 잠시 얼굴만이라도 보고 갈 요량으로 온 것이었는데,
기분좋은 미소를짓고 내려오는 세현을 보자니 뭔가가 한껏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고작, 저런 어린애들땜에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다니 말이다.
자신과 있을땐 결코 저런 미소를 짖지 않는 세현이었다.
별명이 얼음덩어리인것처럼, 자신에게도 굳은얼굴로만 대하는 세현이어서,
항상 표정이 그런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런데 저 어린애를 향한 환한미소라니.....
은채는 순간 지원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 모습이다.
어디였었더라......
아~ 레스토랑.
그 레스토랑에서도 세현이 저 아이를 향해 웃었지, 아마.
누굴까?
세현의 뒤로 따라오는 세찬을 알아본 은채는 세찬의 여자친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이좋기로 소문난 세현이 자기동생의 여자친구한테 그런 미소를 지을까 하는
의아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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