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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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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대 아줌니


BY 정자 2006-08-03

 

 

장마철이 끝나도 또 축축한 습기를 동반한 우중충한 계절이 막 시작 될 무렵이 되고

비도 올지 말지 지 맘대로 흩뿌리던 날에 우리 동네에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에

파란색 일 톤 트럭이 섰다.

 

자세히 보니 포장이사도 아니고 얼기설기 꺼먼 끈으로 질끈 묶은 짐을 보니

살림보아 짐작하기는 어디서 대충 살다가 야반도주 했나 했다. 변변한 살림도구가 별로 없어 보였다. 이사 오다가 장롱은 옆구리가 움푹 패어서 니스 칠한 검은 색이 벗겨져  속살로 된 얇은 베니어판이 그대로 드러나고 반으로 쭉 금간 반달경은 앞에 싸인 이불보따리가 피카소 그림처럼 나눠져 두 개로 보였다.

 

우리 동네는 아주 친절하다.

사실 친절하고 상냥한 여자들만 산다고 소문이 난 동네의 그 반대다. 사실 친절하다는 말은 어떤 가게에서 단골고객 유치에 쓰는 말이고 우리들은 상대에게 아는 척을 해서 서로 눈빛 마주치기가 가장 적당한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대충 이렇게 알고 산 사람들이 모두 이 골목에서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게 껍데기 딱지처럼 낮은 지붕을 맞대고 사는데. 새로 온 이웃은 새 식구 맞아 들이기나 다름없다.

냉장고는 제법 크다. 그래서 여기저기 네 명이 달려들어 집안으로 들어가니

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습기 먹는 곰팡이가 이미  한 쪽 방벽에서 잘 살고 있었다.

눅눅한 계절에 이사 온 부부는 더욱 얼굴이 지쳐 보였다.

 

남자인데도 머리를 길러 여자들 머리끈으로 질끈 묶여진 머리를 보더니

멀대 아줌마가 대뜸 묻는다.

“어디서 오신 도사 예유?”

 

그러나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그 머리를 묶은 남자 옆에 키 작은 여자가 부인이었는데

낯 설은 동네에서 낯선 아줌마들의 눈빛에 기죽은 표정이다. 우린 처음부터 살갑게 상냥한 것도 별로 싫어한다.  너무 나댄다고 하는 것들은 딱 질색이라고 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지만

매끄럽고 야리야리하고 말쑥한 것들의 세련 된 것들은 우리가 괜히 매차 없이 기죽을 대상이었다.

그렇게 안 되면 좀 모자라 보이니 그들도 모자라 보이는 것이 훨씬 이물 없었을 것이다.

그 부부는 이사를 오고 난 후에  떡도 국물도 돌리지 않았으니

우리 상냥한 아줌마들 시선이 곱지 않았다.

뭐여? 괜히 냉장고 들어 줬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우리도 놀라 뛰어 나가보니

그 도사네 집에서 담 넘어 양은냄비가 날아서 길바닥에 요란하게 떨어져 모퉁이가 찌그러져 구르고 접시가 쨍그랑 깨지는 소리에 아구구!!! 사람 살려요? 나 죽겄네!!! 이러는 여자의 비명에 난 저절로 그 집 대문을 밀쳤다. 당연히 대문은 잠겨 있고 이거 우리가 담 넘어 가? 말아?  하는 동안 남자의 육두문자가 동네 이장 마이크 시험 중보다 더 크게 틀어지고 있었다.

 

그 때 떠벌이 아줌마가 지나가는데. 자기도 한다면 하는  내노라하는 욕쟁인데, 어쩌다가 그렇게 드리는 육두문자에 움찔거리며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야야..이것이 뭔 소리 다냐?”

 

“니 년이 지랄을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거니께 어디 너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이니께”

남자의 굵은 목소리와 함께 느닷없이 창문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에 난 할 수없이 멀대 아줌마네 사다리를 들고 와 담을 넘어섰다. 매 맞는 여자는 도저히 두고 볼 수없는 저절로 정의의 기사가 된 것이다. 안에서 대문을 따주니 동네 여자들이 몽땅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자의 울음소리는 끝나지 않고 남자는 깨진 유리창으로 밖에서 보니 홀딱 벗은 누드였다. 기 찬 것은 여자도 홀딱 벗은 몸이니 나오라고 해도 걱정이다. 순간 떠벌이 아줌마가  대문을 쾅쾅 발로 찼다. 남자가 우리 쪽으로 몸을 틀었는데 창문에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아랫도리는 가려졌다.

 

“ 뭐여? 뭔 여자들이 우리 집에 이렇게 몰려 왔어? ”

“ 쪼금 씨끄럽네요. 그래서?“ 내 말을 뚝 자르더니

“ 아! 이 여자하고 나하고 일이니께?  뭔 구경하러 왔어... 빨리 안 나가요?”

 그런데 여자가 현관문을 열고 부리나케 우리들 쪽으로 달려 나온다.

“ 너 어디가? 너 일루 안와? 이 씨발 년 너 땜에 손해 본 게 얼마나 되는 줄 알어? 이 개같은 년아? 아 빨리 비켜유?” 너 안 들어 와? 엉?“

 

맞은 여자는 하필이면 떠벌이 아줌마 뒤에서 치마를 잡고 안 놔준다. 몸 번체가 시뻘겋다. 순간 정육점에 갈고리에 걸린 돼지가 생각이 났다. 이 남자가 짐승을 잡아도 이렇게 매를 들고 죽을 때까지 팬다는 제주도 돼지잡기 애길 알고 있나 했다.

여섯 명의 여자가 모두 그 도사 같은 남자를 쬐려 보고 있으니. 머리 길게 풀어 헤친 남자는 당장 여자의 머리채라도 잡고 싶은데 홀딱 벗었으니 금방 튀어 나오지 못했다.

 

난 그제야 웃옷을  벗어 맞은 여자의 어깨에 걸쳐주고 얼른 뒤로 나가라고 했다.

떠벌이 아줌마가 떠밀어 골목을 벗어 난 상황을 보고 전화로 112를 눌렀다.

이 분만에 삐웅삐웅하며 요란하게 백차가 도착했다.

순경이 대문 바깥이며, 안에 굴러다니는 그릇에 깨진 창문에 몰려 있는 아줌마들 때문에도

이거 예삿일이 아닌가 싶었나 보다.

누가 신고했어오?

내가 했어요.!

맞은 부인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피신했어요. 때린 아저씨가 옷을 홀딱 벗기고 때리는 걸 여기 아줌마들이 다 봤어요”.

 

집안에 있는 남자가 조용하다. 순경이 옷 입고 나오라고 한다. 그래도 대답이 없다.

한 참후에 반바지에 티를 입고 머리를 묶지 못 했나 긴 머리를 산발하고 나온다.

남자얼굴은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순경은 조사를 해야 하니 파출소에 같이 가자고 하며, 피해자 부인도 같이 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서서 말 없이 지켜보던 멀대 아줌마가 그런다.

“그럴 것 없이 그냥 도사만 데려 가유? 원 시상에 저렇게 지 마누라 죽일 듯이 팼으니 께

어디 그 만큼 혼자 맞아야징?  징 하네, 그 도사님 성질말여?“

 

그제야 도사님 혼자 백차에 탄다.

부웅웅 떠나는 백차를 보고 멀대아줌니 그런다.

“아이구..도사님 오늘은 못 들어오시겄네~~ ”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늘 그렇게 시끄럽게 하루를 별 달듯이 장식 했었다. 떠벌이 아줌마 집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여자를 보니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묻는 것도 기운이 벅차다.


 

도사님 아내는 없었다. 아내의 자리가 없이 어디로 내몰리지 모르는 늘 불안하고

공포에 질려서 숨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떠벌이 아줌마도 할 말이 없나 두 여자가  내가 들어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방문을 여니 그제야 여자의 눈빛이 반짝 거린다.

얼굴을 보니 혁대로 얼굴을 스쳤나 자국이 선명하게 붓고 있었다.

말을 하려고 해도 맞은 데가 더 아픈지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

 

그제야 파스니 약이니 발라야 한다고 떠벌이 아줌마가 약상자를 찾고 있었다.

꼭 나만한 키에 나와 비슷한 나이 같은데, 어쩌다가 그렇게 맞을 짓을 했냐고 묻고 싶어도 차마 입 열기가 싫었다. 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진술을 잘해야 하는데. 그 마저도 못해서 처벌 하지도 못하고 또 나와 신고했다고 또 맞는 여자들도 수두룩하다. 힘없다고 여자라고 못 배긴다고 마음대로 생각하는 쪽으로 조사하는 파출소에서 당할 일을 미리 말한다고 한들 알아들을 여유도 그 여자에겐 없는 것 같았다.

 

 옷이 없으니 우선 집에 가서 대충 뭐라도 입고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집에는 안 들어간단다.

할 수없이 떠벌이 아줌마의 티에 반바지를 빌려주었는데. 덩치가 작아 따로 국밥처럼 헐렁해서 자루처럼 보였다..

약을 들고 온 떠벌이 아줌마가 맞은 데가 어디냐고 안티푸라민 뚜껑을 비틀었다.

 

 처음엔 팔뚝을 내밀고 거길 바르니 등을 내민다. 어디에 스쳤나 핏방울이 굳어 뭉쳤다. 거기엔 약도 못 바를 만큼 상처부위가 무지 넓었다. 손 끝에 약을 문댈 때마다 떠벌이 아줌마가 쑴벅쑴벅 눈물을 흘렸다. 떠벌이 아줌마 대신 맞아 준  여자를 위로 하는 것처럼 서럽다.

“내 팔자도 기가 막힌디! 시상천지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어흑! 니 그 도사가 남편 맞나? 어디서 사람 패 죽이고 왔어도 이렇게 맞지는 않는 거여? 어째 오늘은 이렇게 운수가 드럽게 사납냐고? 영은아? 니가 약 좀 발라주거라?“

 

 나도 한 참을 그 여자 등 뒤에 앉아 울었다. 약이고 나발이고 뭐고  카메라를 들고 다시 그 여자보고 옷을 벗으라고 했다. 난 허벅지며, 등짝이며, 시퍼렇게 부은 얼굴이며 전부 자세히 사진작가처럼 찍어 대었다. 도사 마누라는 아무 말이 없다. 무표정한 얼굴로 누드모델처럼 포즈를 취해주고 또 욱씬거리면 질끈 숨도 몰아서 쉬었다.

 

 그리고 난후 여자의 이름을 물었다. 나이도 자식도 있냐고 다 물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난 장문의 진술서를 썼다. 그리고 증거로 사진필름을 첨부하였다.

이래저래 그 여자를 조사를 해도 불리하게 조사되는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 난  동행을 했다. 여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말도 못했다. 그러니 형사가 그런다. 진술서와 진단서를 가져오면 남편은 바로 폭행죄로 구속이 된다고 한다. 그 진술서는 간단하지 않다.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맞았는지 육하원칙으로 진술이 되어야 한다. 마치 수학공식처럼 답이 뚝하고 떨어져야 한다.

 

 난 미리 준비한 사진과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진단서는 병원에서 발급받아야 하는데 진단비용이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런 건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한다. 난 단호하게 말했다. 진단서 없다고 맞은 사실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여긴 사진을 찍어 둔 증거자료를 같이 제출하니 우선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나보고 가족이냐고 한다. 아뇨~~ 맞은 여자들 모임에서 대표로 나왔다고 했다. 형사가 얼굴이 굳는다. 

 

 진술서를 보더니 이정도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와 번갈아 보면서 우선 병원에 입원을 먼저 하란다. 난 나라에서 입원 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치료비도 없어 여태 병원에도 못 갔다고 했다. 단호히 철저하게 조사를 해서 처벌을 원 한다고 말했다. 말도 못하고 숨도 잘 못 쉬던 도사 마누라는 그제야 한 마디 했다.

“ 제발 처벌 해 줘 유?”짧지만 아주 무거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