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아. 하아...
가슴이 뜨거운 불덩이에 데인듯 뜨거웠다.
그 뜨거운 열기가 자꾸만 목구멍을 옥 죄어와
수민은 숨을 쉴수가 없었다.
손을 뻗으면 잡힐듯한 거리에
연우.
그가 서 있었다.
" 수민아! 나의 사랑 꼬맹아! "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 왜, 거기에 있어요?
왜, 그런 슬픈 얼굴을 하는거야?
여기로 와요. 어서요! "
수민은 두팔을 한껏 벌렸다.
그의 눈가가 반짝였다.
그가 고개를 저어댔다.
삐질 삐질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려는 듯
그의 입가가 뒤틀려 보였다.
" 수민아... 미안해...
미안하다. 날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아주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 널 잊지 못할꺼야.
널 아주 많이 사랑 하니까... "
그가 가만히 뒤돌아 섰다.
그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여 수민은 왈칵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가지마요! 가지마!
나두고 가지마!! "
두팔을 허공에 내저으며 바둥 거렸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몸은 땅에 박힌듯 조금도 움직일수 없었다.
그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스멀 스멀 멀어져 갔다.
하아 하아...
가지 말란 말야!!
안들려? 이 나쁜 놈아!! 거기서! 거기 거!!!!!
목이 터져라 그를 부르다
수민은 수렁속 같은 잠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재색빛 어둠...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고 얼마나 내 휘저었는지
양 어깨가 뻐근 했다.
" 지 수민! 너, 또 그 사람 꿈 꾼거니?
참, 너란 애도 질기다, 질겨...
이젠 잊을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무슨 미련이 남아.... "
울컥 그리움이란 더러운 놈이 목구멍에 걸려왔다.
연우...
아직도...
이렇게 가슴 아프게 사랑하는데...
나의 첫 사랑.
그와의 가슴 떨리던 첫 키스의 열기가 아직도
내 입술에 남아 있는데...
수민은 무릅을 세우고 그 사이로 얼굴을 뭍었다.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어둠 속에
푸른 섬광을 요란히 내 뿜으며 핸드폰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액정 화면으로 화경의 이름이 보였다.
흘낏 올려다 본 벽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화경이 이것이 미쳤나!!
" 야! 너, 또 나이트 뛰었냐?
이시간에 전화 하게.
하여간 아직 체력 하난 끝내주나 보다, 너. "
" 기집애, 난 뭐 허구 헌날 나이트에서만 죽 때리는줄 아냐? "
"째지는 배경 음악이 말해주는데 뭘 ... "
화경의 목소리 뒤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수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 땡! 락 카페야. 신촌에 있는. "
" 그거나 그거나.
자알 한다. 이 시간까지.
혀 꼬부라진 소리 들어 보니 너, 어지간히 퍼 댔나보다.
오늘 출근 안해? 나 모르는 사이에 짤렸냐? "
" 싸가지 없는 기집애. 짤리라고 고사를 해라. 해!
미안 하지만 우리 회산 너네 만화 공장 같지 않아서
주 5일 근무다. 오늘 토요일인거 너 모르지? "
" 아... 오늘이 토요일이구나.
좋겠다. 난 오늘 나가면 철야해야 될것 같은데. "
"그러게 그놈의 만화공장은 정말 짜증 지데로다!!!
시도 때도 없이 야근에 철야에.
수당도 주지도 않고! "
수민은 화경의 빈정거림에 큭하고 웃음이 나왔다.
" 기집애. 저도 일년이나 만화 공장 공순이 였으면서.
이제 전업했다고 왕 무시 하네.
이 시간에 나 한테 전화할 정도면 거기 물 별론가 보네?
할말 딱히 없음 끊자. 공순이 자게. "
" 자, 잠깐만, 기집애야! "
"아, 왜~~ ? 지금 누구 염장 지를 일 있어?
나 지금 푹 자 둬야 이따 철야 할수 있다구!!! 끊는다! "
" 연우! 백 . 연 .우! "
수민의 가슴 한켠이 쿵! 하고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 지금... 뭐라 했니? "
이름 하나 들었을 뿐인데 수민의 시야가 금새 뿌옇게 흔들렸다.
" 너, 아직도 이름 만으로 떨리니?
아직도 그런거야? 바보 기집애야! "
" 미친! 그런거 아냐.... 지금 그 이름이 왜 나오냐구! "
" 그 사람 . 한달전에 죽었단다. 자살이래.. "
핸드폰이 수민의 손에서 툭 떨어져 나갔다.
소름이 온몸을 덮치며 현기증이 심하게 몰아쳤다.
" 야!! 지 수민! 수민아!!
듣고 있는거니? 야! 기집애야!!! "
수민은 입을 틀어 막았다.
아냐. 그럴리가 없어!!!
이건 꿈이다.
악몽이라고. 지독한 악몽!!!!!!!!
김 화경!!!!
말도 안되는 소리 짓꺼리지 마!!!
수민은 머리 카락을 쥐어 뜯으며 소리 소리 질렀다.
어깨가 두려움에 덜덜 떨렸고 입안의 이들이 닥닥 부딛치며
요동을 쳐 댔다.
더 이상 화경의 부르짖음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밀려 드는 어지러움과 구토에 수민은 정신을 놓았다.
창밖으로 먼 하늘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