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긴장감이 흐트러진 일상을 약간은잡아주는듯 했다.
시간의 흐름이란건 오묘하다.
한동안 절실하고 절박했던 물음들이
시간에 묻혀버려 담담해질수 있으므로.
태어나면서 부터 스무살시절의 자신은 오만함과 자만심에 똘똘뭉쳐진 한마디로 밥맛떨어지는 기집애였다.
턱은 항상 치켜들고 눈빛은 도도했으며 말투는 늘 냉정했다.그런까닭에 친구가 없었어도 별로 불편할것도 외로울것도 없었다.사랑받은자가 사랑할수 있다는것은 맞는말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은 좀처럼 잘 사랑이란걸 해낼수가없다.
연이도 남의 마음을 받아내고 자신을 보이는것에 무척서툴렀다.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하고 농락하고 힘들게했다.그럴수록 자신은 저 깊은 벼랑밑으로 떨어지고 있다는것을 알면서도....올라오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그리고 보이는것보다 많이 어렸던 미숙아였으니까. 자신은 자신속에 갖혀 많이 자라있지 못했다.
대학1학년의 봄.
생각이 약간은 유연해지긴 했다.
그토록 바라던 성인이되어 혼자 살수 있었고
자신을 약간 감추어내 편해질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그러고 나니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일수도 있다고 느낄때즈음 이였다.
연이는 봄을 좋아했다.
지금도, 지금보다 더 어렸을때부터도 좋았던것 같다.
기억의 작은 조각에 ..아주 잠깐 행복했던 기억이 하나있다.
빨간구두에 남색의 오버롤을 입고 분홍 모자를 쓴 다섯살의 연이.웃고있는 엄마의 모습..자신을 들어올리는 아빠의 큰손 커다란 웃음.따스란 햇살. 풀향이 섞인 바람 따사로운 햇살......
스무살의 봄
한가진 캠퍼스의 한구석에서
그렇게 풀향섞인 바람을 느끼며
따사로은 햇살밑에 눈을 감고 한가히 오후를 즐기고 있을때였다.
길었던 머리는 바람처럼 저만큼까지 나풀거리고 있고
연두색의 스카프도 목에서 날아갈것처럼 하늘거렸다.
찰칵.찰칵.찰칵.
그 찰칵거림이 계속이어졌고 그소리가 도대체 무언가 궁금해졌을때쯤 연이는 가만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또렷이 바라보고 있는
사진기의 렌즈...
그리고 한 남자.
서로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동안을 아무말없이 아무생각없이 그렇게 보다가
연이가 입을 먼저열었다.
"혹시 날 찍었어요??"
자신의 건방진 말투를 즐기며 도도하게 그를 쏘아보았다.
연이의 앞에 선 남자는 아무말이 없이 그저 아까 그눈으로 자신을 보고만 있었다.길다란 흰 손가락으로 사진기를 쥐고 있는 남자.
긴 듯한 고수머리, 우유같이 뽀얗게 보이는 피부,붉은입술,
큰 키를 가진 남자가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눈빛으로 자신을 넋없이 보고만 있다.
" 안들려요? 나 찍으거 맞아요??
왜 함부로 사람을 찍어요??"
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이 사람 뭐야??'이런 느낌이 충분히 담긴 그런 말투와 함께 그를 노려보았다.
잠시 시간을 두고 그가 미소지었다.
웃으면 눈 꼬리가 밑으로 내려와 가만히 있을때의
까다로워보이는 인상과는 많이 달리 순해보이는 인상이였다.그 웃음을 보자 연이의 날카로움도 약간은 진정이 되었다.
또 그 만큼의 시간을 두고 그가 말했다.
" 그러니까.누가 그렇게,
함부로,
막,
그만큼 이쁘래요??
이뻐서 찍었어요."
봄..자신이 좋아하는 봄의 풀내새가 가득했던 그 봄에 있었던 만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