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의 늦은 점심.. 짐에서 가까운 어느 옥외 레스토랑.
연이는 식어가는 커피를 옆에 둔채 경제서적에빠져들어 있는 남편을 보고 있다.
남편의 몰두는 거의 40분가량이 지나고 있다.
그가 들고있는 책의 빨간 겉표지에는 그 책을 쓴 경제학자가
자신감있게 웃고 있다.
꼭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듯 하여 계속 그 눈길을 피하다가
노려보기도 하다가 . 그러면서 자신의 시간도 보내고 있는 연이였다.
'다른이들의 휴일은 어떤모습일까.
우리처럼 적막할까.
우리의 적막함은 결혼을 유지하는동안은 계속 이렇게 이어질것이다.
본능처럼... 부정할수 없는 본능을 갖고 있는 이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무척 원하고 있고
나는 아이를 가질수 없다.
이 남자는 자존심때문에 날 버릴수 없고
난 버려지고 싶다.
그나 나의 시간이 점점 무의미해지는것을 참을수가없으니까.'
"여기 음식 맛있다. 파스타 제대로하네..자주오자."
그리고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는 인수이다.
잔을 들고 있는 인수의 단정한 손가락,
그는 늘 단정하다. 머리도, 손톱도, 옷차림새도..
덜렁대고 물건을 잘 찾지못하고 허둥지둥거리며 기분파인 자신과는 한참이 다른사람이다.
" 라 페스타"
침묵만하던 연이가 중얼거렸다.
"뭐??"
인수가 연이를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 라 페스타...
이곳이름인가봐..
이름이 맘에 든다...
이렇게 높은곳에 있다는것도 맘에 들어.
바람이 시원하다.어딜가나 답답한거 싫었는데. ."
"정말 맘에 드나보네."
인수가 피식 웃는다.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말이
없어진 연이였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무척 경쾌하다.
'라 페스타'의 내부는 고급스러웠지만 무겁지 않았고 밝았다.
옥외와 실내로 나누어져 있는 구조였고 초록의 화초들이 많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흰색의 회벽에는 이탈리아의 거리, 건축물, 노인, 아이들, 하늘. 파스타
등 그곳의 모습을 느낄수 있는 원색의 사진들이 갤러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남편의 독서가 길어지는 탓에 연이는 일어나서 실내로 들어와 벽에 걸린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사진들이 참 따스했다.
피사체를 보고 셔터를 누르는 그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참 아름다운마음을 가진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느대로 느낄수 있었다.
'누굴까 이런사진을 찍을줄 아는 사람은....'
아이들이 천진하게 웃고 뛰는 모습이 담긴 사진앞에 멍하니 서 있을때였다.
" 사진 맘에 들어?"
연이가 뒤돌아보았을땐 깜짝놀라 소리라도 지를뻔했다.
아니면 그자리에서 또 얼어버리기라도 한것처럼 꼼짝을 할수가 없었다.
치노바지에 연녹색의 티를 입고 약간은 긴듯한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며칠전 길에서 마주쳤던 자신이 처음 사랑했던 그남자가 자신을 보고있다.
" 우연히 마주치면 모른척 피해준다고 했었던가?
근데 그 우연이 내 공간에서 일어날줄은 몰랐어.
네가 보고 있는 사진들은 내가 찍은 사진들이고
네가 먹은 파스타는 내가 만든것이고
네가 지금 서있는 이 공간은 ...음 그러니까 '라 페스타' 란 이름도 내가 지었고
그러니깐 여긴 내가 먹고사는 내 밥줄이거든.
모른척 피할수만은 없는거 맞지.?"
그가 빠르고 조용히 하지만 다정하게 연이에게 속삭여주었다.
그리고 눈길을 옥외에있는 인수에게 주며 물었다.
"..그러니까 ..애인??"
"....."
뭐가 부끄러운건지 아님 당황해서 였는지 얼굴이 많이 붉어져 있는 연이였다.
" 미안해. 아까부터 보고있었어..같이 있는 모습이 여유롭고 자연스럽던데..."
"남편이야..."
"아~~. 남편..결혼했구나?
나 왜 너가 결혼같은거 했을꺼라는걸 생각못한거지?..."
".....사진 좋다. 여.전.히 ."
연이가 사진을 가르키며 곤란한듯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의 웃음은 씁쓸했다.
'여.전.히.라니...그래.. 그는 사진 찍는것을 좋아했었다.
그는 그녀를 찍는것을 좋아했었다.
어느 한 밤 그녀는 그의 작업실로 찾아가 그의 사진기 앞에서 옷을 벗었었다.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고 그의 눈을 노려보았었다.
"....빨리 찍어."
긴장하여 숨조차 제대로 쉬지못하는 그...윤호를 보며 쾌재를 불렀었다.
그가 누르는 셔터의 찰칵거림은 그의 심장처럼 엄청나게 불규칙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