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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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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배인의 아내


BY 초록색괴물 2006-04-25

시간은 항상 빨리 지나간다.

이 나이트클럽에 출근을 시작한지도 벌써 3년에서 두달이 빠지니까.

밤일을 하면 좋은 점이 딱 한가지가 있다.

돈 쓸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낮에 일을 하게되면

저녁시간엔 친구를 만난다, 술자리를 갖는다, 쇼핑을 한다, 영화를 본다등등

돈 쓸일이 많지만, 밥일은 그렇지 않았다.

새벽에 일이 끝나면곧장 집으로 가야 한다.

그 시간에는 술집근처의 포장마차가 아니면 갈곳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하면 마땅히 배회할 곳이 없기 때문에 .....

나는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잠을 자고

다른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오후일을 시작할 때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처음에는 낮과 밤이 바뀌어서 그런지 몸이 영 이상하더니만 이젠 제법 익숙해져서

오히려 한번씩 쉬는날 밤에 자는 것이 어색하다.

 

나는 항상 4번째로 출근을 한다.

맨 먼저 천지배인이 오고 그다음 사장이 오고 작은 이모가 온다.

그 다음이 나다.

거의 3년동안 깨진적인 없는 출근순서다.

그러다보니 난 작은이모와 천지배인과 마주하는 시간이 다른사람들보다 좀 더 있었다.

당연히 빨리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천지배인은 나이트클럽에서 일할만한 그런 외모와 말솜씨를 가진 사람은 아닌것 같았다.

그냥 보기에는 고집 센 동네 아저씨였다.

천지배인은 나보다 세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5년전 결혼해 4살, 2살 여자아이의 아빠이기도 했다.

근데 집사람과는 나이차이가 무려 아홉살이나 났다.

그러니까 집사람이 19살때 나이트클럽에 놀러온 걸 보고 서로 눈이 맞아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동거에 들어갔다고 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호적정리만하고 사진한장으로 결혼식을 대신 했다고 했다.

천지배인은 정말이지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건 나이트클럽 사장이나 주방이모나 다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하긴 아무리 나이트클럽이지만 한 직장을 7년째 꾸준히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유자껍질같은 피부를 가진 사장이 천지배인만 찾는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어떨때보면 자기 혈육보다 더 천지배인을 끔찍이 아끼는것 같았다.

하긴 회사나 사무실이 아닌 직장 수명이 짧을수 밖에 없는 이런 나이트클럽에서 7년째라니 끈기가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모들은  "천지배인은 진국이다".라고 항상 말했다.

이런데서 일한다고 우습게 볼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데라.....'

나이트클럽은 세상사람들에게 '이런데'라는 애칭도 갖고 있었다.

천지배인은 나이트클럽안에서 모든사람들이 인정하는 애처가이며 공처가이자

가정적인 남편의 본보기였다.

단지 가족을 먹여살리는 일터가 나이트클럽이라는 것과 그런 일터의 특성상 어쩔수없이 부부가 밝은날 얼굴을 맞대고 앉아있기가 어렵다는것 그뿐 이었다.

그 천지배인의 아내도 처음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근데 지금은 많이 삐걱거리는 모양이었다.

내색은 잘 안했지만 가정이 편안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웃고있어도

얼굴에 표시가 다 난다고 했다.

작은 이모는 천지배인이 상처를 크게 입을까봐 무섭다고 했다.

 

천지배인의 아내는 살림을 차리고 2년정도 지나자 짜증을 많이 냈다고 했다.

그러다 둘째가지고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아이를 낳고 나서는 신경질이 극에 달했단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우는 아이들한테 화를내고 고함을 지르기 예사고

새벽에 들어오는 천지배인에게도 못마땅한 불만들을 내밷더니 점점 도가 지나쳐

욕설을 퍼부어 댔다고 했다.

그러니 천지배인의 얼굴이 울상이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아내는 다른남자를 따라 집을 나간지 벌써 두달이 넘어섰다.

천지배인의 어깨가 축 쳐져서 다닌지도 두달이 넘어섰다.

 

컴퓨터는 문명의 눈부신 산물인 반면에 한편으로는 몹쓸 폐인들을 만들어내는

플라스틱 악마였다.

천지배인의 아내는 어린나이에 두아이와 밤일을 하는 남편을 바라보기가

한없이 답답하고 우울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데도 하소연 할 곳도 없고 젊고 예쁜나이를 주체할 수도 없고

따스한 봄 햇살아래 벚꽃이 꽃잎을 열고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어디로든

날아가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

그런것 같았다.

갇혀있는듯하다는 생각...

 

천지배인의 아내는 그 돌파구를 인터넷채팅으로 해결하려했고 급기야는 두아이를

떨쳐버리고 컴퓨터 건너편에 앉아서 달콤한 말을 내밷으며 그녀를 달래주려했던

남자에게로 하나 미련두지 않은채 가버린것이었다.

천지배인의 그늘아래서 보던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을 찾아서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말이다.

두달전 천지배인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화라고는 잘 내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엄마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어린 두아이 때문에 눈물을 자주 글썽거렸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한건 역시 두아이를 버리고 간거였다.

그래도 두아이의 엄마였고 5년이나 두눈 마주치며 살았는데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않고 가버린것에 대해 분해했다.

천지배인의 아내는 과연 그 두아이들이 눈에 밟히지 않았을까?

암튼 지금은 천지배인도 정신을 찾고 두아이들 때문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안타깝기도하고 가엾기도 했다.

작은이모는 천지배인의 아내에게 '천벌을 받을 년'이라는 저주를 매일했다.

천지배인을 아껴서 그러는 것이려니 나는 생각한다.

천지배인은 강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는것 같았다.

예전처럼 새벽에 해장술을 하러 가지도 않는다.

얼른 돈 모아서 나이트클럽 지배인이 아닌 조그만 가게를 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두딸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천지배인의 아내는 다른세상에서 만족하며 행복해 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천지배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생긴다.

'아마 행복하겠지. 모든것 버리고 갔는데...'

천지배인도 그녀의 행복을 원하여 빌어주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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