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라는 커다란 광고 문구가 내 눈에 들어온다. 다이야 몬드 광고 인 듯 하다. 난 문뜩 생각했다. 저 반지를 사서 끼면 혹시 정말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정말 엉뚱하다. 가끔은 내가 딴 세상에서 사는 사람처럼 느껴 질 때가 있다. 약간은 모자란 듯한 표정으로 거울 속을 빤히 들여다 보며 웃다가 상상의 나래에 빠져 들기도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핏기 없는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난 그럴 때면 답답한 맘에 무작정 걷고 또 걷는다. 오늘도 또 걷고 싶어 진다..
삶에 있어 단 1%만 미쳐도 잠시나마 삶이 풍요로워 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했던가..이럴 때면 정말이지 조금은 정신 나간 듯 미쳐 버리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법원 앞에선 그 사람과 나.. 내가 왜 이런 곳에 서 있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모든게 현실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노부부..아직은 내 또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젊은 부부,,어쩜 저런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한다..저 사람 또한 날 바라보며 똑 같은 생각을 하겠지..
이혼 절차는 정말이지 아주 간단했다. 뭐 대기 번호를 기다리는 듯 한 수많은 인파..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면 붉은 커텐 안쪽으로 모두를 순서대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들어가기만 하면 한 5분 안에 모든 게 다 끝나 버리는 것 같다.
난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있다. 무슨 맘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 처럼 깊은 상처만은 안은 채 이곳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 거의 다 일거라 생각한다. 나란히 앉아는 있지만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그저 판사의 호명만을 기다리며 앞서 불러나간 사람의 뒷모습과 볼일 이 끝나 나오는 사람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 얼굴에서 미소는 찾아 볼 수조차 없다..이런 상황에서 누가 웃겠냐 만은 정말 무섭게 느껴 질 정도로 냉정하고 굳어버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무섭게 느껴진다.
나 또한 그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에 모든 일이 끝났다.
합의이혼..그렇게 내 나이 27살에 난 이혼녀가 됐다. 긴 시간을 함께 해 보지도 둘만의 소중한 아기도 낳아 보지도 못한 채..이렇게 끝을 냈다. 아주 간단하게..신속하게...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 사람의 표정 또한 무게가 느껴진다.
누군가가 그랬다. 사람의 표정에서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고..또 평상시에 무슨 생각을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다 표정에서 묻어 난다고..정말 그랬다..그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만의 흑적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인상을 쓰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에서 얼마나 헛된 삶을 살아 왔는가 또 지금도 살고 있다고 난 느낄 수 있었다...
“그만 갈게..”
“지선아..”
“난 이제 아무 말 하고 싶지 않아..”
“미안하다..”
“그런 말도 됐어..잘 지내..행복해..나라는 여자랑..아니다..행복해라..”
“지선아..미안하고..내가 못되게 군거 잊어 주길 바란다..미안하다..”
난 대답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못되게 군거 잊어 달라고..치..잊지 말라고 해도 잊을 것이다. 당신이라는 사람과의 인연은 다 잊을 것이다..
차갑게 돌아선 난 뒤돌아 볼 용기조차 나질 않았다. 사실 마지막까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어젯밤 내내 낼 헤어지는 순간에 뭐라고 말할까 연습아닌 연습도 했었다.
“결국엔 이렇게 헤어지게 됐지만 함께 지내온 시간들과 함께 살아온 시간들 만큼은 그 어느때 보다 행복했었다고.. 결론은 당신이 잘 못해 도저히 나랑 살수 없다 하여 헤어지게 됐지만 어느 정도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그래서 나 또한 미안했다고..부디 나란 여자 잊고 잘 살라고..행복하라고..”
난 그렇게 말하고 싶었었는데.. 하지만 난 한마디도 못한 채 그저 매몰차고 차갑게 그를 마지막으로 대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섰다.
또 한편 으로는 세차게 따귀라도 한 대 때려며 “평생 이러고 살아라..두번 다시는 우연히 라도 마주치지 말자” 며 멋지게 돌아서 가리라 하며 내 나름대로 잠시 생각 했었던 것 같다.조금이나마 내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나 보다. 이젠 아무 소용없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이제 정말 혼자구나..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켠이 저려 옴을 느낀다..가슴이 쓰리고 아픈 통증이 밀려오는 것 같다. 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기에 큰 창가가 있는 어느 한 커피숍에 잠시 머물렀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지금 이 눈물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굳이 얘기 하자면 슬퍼서 라기 보다는 허무한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그 사람과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진 후 한 2시간쯤 지났을까 전화가 걸려 왔다. 정말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었다. 난 또다시 그런 말 필요 없다 하며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라 생각했었기에..
집에선 어른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얼마나 조바심 느끼며 기다리고 계시겠는가. 아직은 어린 딸이 그 낮선 법원이라는 곳에 가서 험한 꼴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싶고 상처라도 받고 오지 않을까 싶어 따라 가시겠다던 부모님..나의 그 초라한 모습만큼은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봐도 내 모습이 그렇게 초라하게 보일 수가 없었는데..
밝은 모습만을 보여드리고 싶다..앞으로는.. 내 상처 또한 깊지만 부모님의 상처 또한 깊을 것이다. 그 깊고 깊은 상처를 내가 치료해 드리는 길은 보다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른들은 늘 말씀하셨다.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한다고.. 또 한번 갔다 오는 한이 있더라도 결혼이라는 건 꼭 해봐야 한다고.. 난 그 말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안가고 후회 하는건 상처가 되진 않는다. 가고 나서 후회하거나 또 갔다 다시 돌아온다면 그 또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되는 것을 왜 그렇게 얘길 하는지 정말이지 이해 할 수 없다. 난 이 세상에 미혼여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차라리 후회 할 일이 생긴다면 상처 깊은 후회보다 그래도 가 볼껄 하는 미련이 담긴 후회가 백배 아니 천배 나을 것이다”라고..
그래 누구나 나처럼 상처 만을 안고 돌아오는 경우만 있는 것 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 경우엔 내가 이렇게 당했기에 내 상처가 너무나도 깊기에 난 이기적인 생각만 부정적인 생각 밖에 할 수 없다.
아..이제 긴 한숨도 버려야 하는데..
세월이 약이라 말한다...그래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아득히 먼 옛 생각을 하며 잠시 쓰디쓴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는 그 날이 올테지..그때가 되면 그 사람의 이름을 들어도 그 사람의 얘기만 들어도 지금처럼 가슴이 내려 앉는 느낌은 들지 않겠지..
하루빨리 시간이 흘러 버렸으면 좋겠다.
두 번다시 마주치는 일 없길 진심으로 바라며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내 시련과 고뇌의 무게에 짖 눌려 한 발짝 한 발짝 띠는 것 조차 너무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