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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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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지우개


BY 마지메 2006-05-23

 

얼마나 걷고 걸었을까?..여긴 어디인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아무것도 생각 나질 않는다..

내가 왜 이렇게 하염없이 걷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젠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없는 것 같다. 메말라 버린 눈물..눈이 따갑고 아프다. 잠시 나마 마음의 아픔을 잊은 듯해 기분만은 좋아 지는 것 같다.

아주 잠시나마..


난 이제야 조금 정신이 돌아 오는 듯 하다..

정신이 조금 돌아오고 나니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다.

친정으로..아니 언니네 집으로..아니다..

난 친한 친구 집으로 향했다.


눈물 범벅이 된 내 모습을 바라보는 친구의 눈에선 눈물이 핑 도는 듯 하다..


“얼마나 힘들었니..잘했다..잘 결정했어..”

“..."

“이제 그만 울고.."

"이제 더이상 흘릴 눈물도 없어..”


난 힘없이 먼 창밖만 바라볼 뿐 아무런 얘기조차 아무런 기력 조차 나마 있지 않다.


“나..좀 눕고 싶어..미안해..”

“아냐..그래 좀 눕고 내일 얘기하자..”


벽을 바라본 채 누워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배신감에 난 또 다시 눈물이 난다.

울어도 울어도 이제 아무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자꾸만 나약해 지는지 난 잘 모르겠다.

해가 밝아 오고 있음을 느낀다. 난 꾀 깊은 잠을 잔 듯한 느낌인데 아마도 한숨도 못 잤나보다. 이젠 감각까지 무뎌진 탓일까? 내가 벽을 멀뚱멀뚱 처다 보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날이 셋는 지도 모른 채 아직도 벽만 바라보고 있다.

정신 차리자 유지선..이젠 넌 혼자야..이젠 그 녀석 따윈 잊어야 만 해..난 나 자신에게 최면 아닌 최면을 걸어 본다.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을 생각하지 말자 .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에게 기대 하지 말자.

이제 더 이상 그 사람 때문에 눈물 짓지 말자.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미련두지 말자.

잊자.. 다 깨끗이 잊어 주자. 그 사람을 위해..날 위해..


갑자기 걱정이 생겼다..

부모님한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그동안 친정언니가 얘기 한다는 것도 내가 말렸었던 상태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계신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언니..나야..”

“그래..집이니? 어젠 어떻게 됐어? 그년은 만났어?”

“응..”

“어떻게 됐냐구..”

“언니..나 집 아니야..어젯밤에 나왔어..”

“무슨 소리니?”

“어제 그 여자 만나고 집에 왔는데..그게 영 안되겠더라구..조 서방이..”

“조 서방이 뭐..뭘 어쨌는데? 못 헤어지겠대?”

“응..나랑은 안되겠나 봐.. 나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것 같구..그래서 그냥 내가 그 사람 놔 주기로 했어..”

“무슨 소리야? 너 그럼 헤어지기로 하고 나온 거야? 근데 지금 어디야? 그럼 집으로 와야 할 것 아냐..”

“응..어제 새벽에 친구  집으로 왔어..언니 걱정 하지마..난 괜찮아..정말 괜찮아..”

“지선아..잘 됐어..잘된 일이야..이제 그만 훌훌 털어버리자..”

“언니..근데 엄마 아빠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게 더 걱정이야..이렇게 된 것 아시며 많이 속상해 하실 텐데..”

“어쩌겠니 사는 것 보다 차라리 헤어 지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결정 내린 일 인데..뭐 내가 먼저 말씀 드릴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근데 언제나 올거니?”

“모르겠어..한 일주일정도..그냥 여기서 조금 쉬고 싶어..”

“그래..그동안 맘 고생이 얼마나 많았니..죽일 놈..에이..”

“언니 이제 그 사람 얘기도 하지마..듣기 싫어..”

“그래..지선아..아무 생각 말고 맘 추스리고 집으로 와..엄마 아빠 걱정도 너무 하지 말고 그간에 얘기 들으시면 잘 결정했다 생각하실 거야..뭐 좀 챙겨 먹고 그래..알았지..”

“응..알았어..언니 미안해..”

“나한테 니가 왜 미안해.. 너 힘들 때 이 언니가 도움도 못되고 정말 미안하구나..”

“아니야 언니..언니 이제 나 쉬고 싶어..간밤에 한숨도 못 잤더니 좀 졸립다.. 내가 나중에 또 전화 할게..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래..푹 자고 일어나렴..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조금은 홀가분해 졌으면 좋겠다..

“응..언니..그럼 이만 끊을게..”



그렇게 친정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내 상황을 전했다. 삐걱거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언니..언니의 도움으로 확실한 물증과 근거를 갖게 됐다. 그래..언니 말대로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너무 힘들고 지쳐 있지만 지나고 나면 정말 잘 된 일이라 여기며 웃을 수 있는 그날이 올지도 모른다..그때가 언제가 될련지 모르겠지만..

아..깊은 잠에 빠지고 싶다..정말 자고 일어나면 모든 근심 걱정들이 말끔이 사라질 것 만 같다.

사실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정말 이렇게 내 꿈같았던 결혼생활을 정리 해야 하는지..

정말 그 사람이 내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 줬는지..

친구 집에 와서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친구는 나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는다. 난 그런 친구가 너무 고맙다.

사실 아직까지는 그 사람 얘기를 꺼내면 눈물부터 앞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로는 괜찮다며 하고 있지만 사실 괜찮지 못하다. 어찌 괜찮을까..


“나 어디라도 여행 가고 싶어..”

“어딜 가고 싶은데..”

“응..지금 아직은 추우니까 그래도 서울보다 따뜻한 곳은 제주도 밖에 없겠다..제주도라도 가고 싶다..”

“제주도?..”

“내일쯤엔 집에도 가야 할 것 같고..부모님 뵙고 나서 바람 좀 쐬고 올까봐..”

“지선아..혼자가지 말고 나랑 가자..너 이런 기분 상태로 혼자 가면 더 힘들지도 몰라..”

“아니야..괜찮아..나 정말 아무렇지 않아..”

“바보야..내가 모르는 줄 알아? 너 밤새 소리도 못 내며 울다 잠드는 거..”

“미안해..”

“바보야..그렇게 울고 싶으면 큰 소리 내어 울어..그렇게 청승맞게 울지 말고..”


친구의 눈에서 어느덧 눈물이 흐르고 있다..

우린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이 놈의 눈물은 마른 듯 마른 듯 하며 날 조롱하며 마르지 도 않는다.


“미영아 낼 부모님 뵈면 뭐라고 말씀드리지?..많이 속상해 하실 텐데..”

“그러게..많이 속상해 하실 테지..그런데 어쩌냐..그런 놈이랑 사느니 헤어지는 게 백번 천번 나은 일인걸.. 그간의 일 들으시면 잘 했다 하실 꺼야.. 충격이 좀 심하긴 하실 테지만..”

“그러게..걱정이다..”

“지선아 다 잘 될꺼야.. 너무 걱정하지마..”

“응..”

“낼 부모님 뵙고 모레 제주도 가자..내가 비행기 티켓이랑 잘 곳 다 알아볼게..넌 그냥 짐이나 챙겨오고..”

“고마워..”

“우리 가서 신나게 놀고 나쁜 기억들 모두 훌훌 털어 버리고 오자..”

“그래..”



어느새 날이 셋다..

오류동에서 나오면서 들고 나온 작은 트렁크 하나가 내 짊의 전부다..

가방이 오늘은 너무 무겁게만 느껴진다..


친정집 벨을 누르는 순간..허겁지겁 뛰어 나오시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아마도 엄마이겠지..

역시나..


“에구..불쌍한 것..어서 와라..”

“엄마..미안해..”

“됐어..언니 한테 얘기 다 들었다..뭐가 미안해..엄마는 괜찮으니까 됐다..”


“얼마나 맘 고생이 심했어?.. 그런 일이 있었으면 엄마한테 제일 먼저 말을 해야지..

에구..얼마나 맘 고생이 심했으면 얼굴이 이게 뭐야..왜 이렇게 말랐어..안쓰러워 죽겠네..“


엄마는 그렇게 날 바라보며 내 등을 하염없이 토닥거리시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엄마 정말 미안해요..아빠는..많이 속상해 하시지..”

“말이라고 해.. 언니한테 얘기 듣고 그 놈한테 쫒아 간다고 난리가 났었다..어떻게 감히 지란 놈이 주제에 바람을 피냐고..”

“미안해..다 내 탓이야..내가 일본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게 왜 니 탓이야.. 니가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간거야? 다 지놈이 못나서 잘 살아 보겠다고 객지까지 나가  고생고생하며 공부하다 온 게 무슨 잘 못이라고..그런 놈은 너 일본에 안 갔었어도 언젠가 속 썩일 놈이야..싹수가 노랗다..싹수가 노래..지선아 잘 생각했어..잘 생각했어..그런 놈이랑은 살 가치도 없어..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고 몸이나 추수리자”

“엄마..나 좀 누울래..”

“밥이라도 할 술 뜨고 눕지 그래?”

“아니..지금은 아무 생각 없어..있다가 먹을게..”

“그래..그럼 아무 생각 말고 한 숨 푹 자고 일어 나거라..”

“알았어 엄마..”


엄마는 그렇게 날 위로 하셨다. 천벌을 받을 놈은 그놈이라며 헤어지는 게 천번 백번 잘 하는 일이라 하며 날 위로 하셨다.

누워 있는 날 한참을 쓰다듬고 쓰다듬으시며 연신 불쌍한 것을 외치신다.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엄마에 모습에선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 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런 엄마를 난 차마 똑바로 바라 볼 수 없다..

정말 내가 불쌍한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고 버림 마져 당했다.

눈을 감은 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만약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줬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예전 처럼 회복 될 수 있었을까? 현관 문을 나가는 그 순간 만큼..아니 짊을 꾸리고 있던 그 순간 만큼 날 잡아 주길 그토록 원했었는데 그 사람은 내 손을 놔 버렸다..이렇게..

아...모르겠다..지난 4년간의 연애기간..지난 6개월의 결혼 생활..지난 1년의 일본 생활..지난 3개월의 갈등..

잊고 싶다.. 정말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존재한다면 이 모든 걸 깨끗이 지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