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에 머물게 된지 벌써 사흘이 지나가고 있다.
기다리다 지쳐 난 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난 문자를 보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가 있어..내가 그러고 나갔는데 어떻게 연락한통 없어? 당신은 사람도 아니야..”
아무런 연락도 없다.
키우던 개가 집을 나가도 이렇게 할 순 없을 것이다. 난 그 개 만도 못한 존재인가보다.
친구에게 그인 그랬다고 한다. “
“지선이 그러고 나가게 한 건 가슴 아프지만 차라리 잘 됐다고..
그러고 나갔으니 이번에 맘을 독하게 먹겠지 하고..
살 맘이 있으면 당장 데리러 갔었을 거라고..
살 맘이 없으니까 데리러 가지 않은 거라고..
지선이도 이번 기회에 나 같은 애 잊고 헤어질 맘 먹게 하고 싶다고..
그렇게 죽을 용기가 있으면 부모 가슴에 못 박지 말고 헤어져서 꿋꿋이 잘 살라고..“
친군 그런 말을 듣고 내가 몹시 자존심 상해하고 속상해 할까봐 말 하지 말까 했다 한다. 하지만 그런 자식이랑은 절대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차라리 내가 맘을 고쳐 먹을 수 있도록 얘기 하는 거라고 한다.
그 순간 만큼은 정말이지 나또한 헤어지고 싶었다.
한숨과 눈물로 지내고 있는 어느날 친정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이지선 너 지금 택시타고 빨리 좀 와..”
“언니..무슨일인데..”
“아무 소리 말고 어서 빨리와..손발이 떨려 수화기 들고 있을 기운도 없어..”
“어디로 오라고..”
“너네 집쪽으로 와..”
“우리집쪽?”
“무슨 일인데..”
“일단 빨리 와..와서 얘기하자고..”
“알았어..금방 갈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집 앞 슈퍼 앞에서 언니를 만났다.
“언니 무슨 일이야..”
“잠깐 조용한데 가서 얘기 좀 하자..”
“어?”
“집에 아무도 없지..”
“글세..”
“아무도 없을 거야..일단 집으로 가서 얘기하자..”
“언니..”
우린 그렇게 일단 집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지선아 놀라지 말고 들어야 돼..”
“무슨 일이야 언니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
“우리 지선이 불쌍해서 어쩌냐..”
언닌 눈물을 보이며 내 앞에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놓는다.
사진이 들어 있다.
그이와 왠 낮선 여자 사진이다.
“언니..이게 뭐야?”
“내가 사람 시켜 알아 봤는데 니 말이 맞아..”
“내말이 맞다니?”
"니 신랑 여자 있었다고..바람피고 있다고.."
사진을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순간 이게 꿈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또 팔짱을 끼고..이렇게 밝게 웃는 모습은 일본가기 전에 보고 처음 인 것 같다.
“지선아 놀라지 말고 얘기 들어..”
“어..언니..”
언니의 얘길 듣는 순간 난 입을 다물 수 가 없었다.
나이는 나와 동갑..
이름은 유영희..
같은 백화점 점원..
같은 동네 살고 있음..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이 빌라 바로 뒷 빌라..
아침에 집에서 나가면 여자 집으로 늘 가서 같이 출근..
저녁에 퇴근하면 여자 집으로 같이 퇴근..
같이 출근하는 사진..
같이 퇴근하는 사진..
같이 장보는 사진..
같이 식사하는 사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오늘 이 시간도 그 여자 집에 함께 있다고 한다..
이 순간에도..
“너 이제 어떻 할거야..지금 당장 그년 집으로 가자..내가 가서 그 년 놈들 다 죽여 버릴 거야..”
언니와 난 부둥켜 안은 채 하염없이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언니는 앞장서 그 여자 집으로 갔다.
불켜진 창가.. 저 안에 내가 그렇게 믿고 또 믿었던 그 사람이 있다.
“언니 나 못들어 가..”
“왜 못 들어가..내가 있는데..넌 그냥 옆에만 있어..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언니..나 못 들어가..그냥 돌아가자..”
“너 왜이래..등신같이 저것들을 그냥 놔 둘꺼야? 억울해서 어쩌라고....”
그랬다..난 그 순간 만큼은 그이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만큼 분하고 서러움에 복받혀 있었지만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여자의 모습도 차마 내 눈으로 처다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언니 말대로 들어가서 어퍼 버리면 속은 시원할 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은..그 다음은..
난 정말 바보인가 보다..
언니를 설득해 일단은 집으로 가기로 했다.
언닌 내게 바보라며 등신 같다며 모진 말을 하며 친정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난 갈 수 없었다. 불꺼진 빈 집에 들어가 불도 켜지 못한 채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나쁜사람..
사진을 꺼내 본다.
참...어이가 없다.. 설마 했었는데 그이가 이 여자랑 바람을 피고 있었구나..
이 여자랑..
유영희..나쁜년..같은 여자 입장에서 어떻게 이런 나쁜 짓을..나쁜년..죽일년..
물증 없이 근거만 갖고 있는 것 하고 근거에 확실한 물증을 갖고 있는 게 이렇게 틀리구나.. 전신이 떨려온다. 온몸에 차디찬 온기가 전해 오는 듯 하다.
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지금 당장 집으로 와..”
“너 어딘데?”
“집이야..당장 들어와..”
그이가 집에 들어 왓다.
“나 자기한테 할 얘기 있어..”
“뭔데?”
“나 다 알고 있어.. 그 여자..”
“무슨 여자?”
“유영희..”
그인 몹시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본다..
“유영희 몰라?”
“너..”
“나 지금 장난 하는거 아니야..이 나쁜 자식..당신 그래서 나한테 생트집 잡으며 이혼하자고 했어? 그랬던 거야?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럴 수 있어?..”
“지선아..”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마..”
“지선아 그게 아니라..”
“당신 지금 어디 있다 온거야? 내가 그렇게 우습고 병신처럼 보이니?”
“지선아 미안해..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뭐...뭐...”
“갠 그냥 친구야..친구라고..”
“넌 친구랑 자고 다니니?”
“그게 아니라니까..”
“나쁜자식..넌 천벌 받을 거야..그렇게 그 여자 때문에 그 여자 때문에 나한테 그렇게 모진소리 하며 그랬어? 그 여자 때문에 난 안중에도 없든? 내 모습을 봐..내 꼴을 봐..바싹바싹 말라가는 내 모습 보고 안쓰럽지도 않든? 내 손목을 봐..보라고..넌 내가 이러고 나갔는데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던 사람이야..나보다 그 여자가 그렇게 소중했어? 그랬어?”
“니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오해야..”
“뭐 오해? 그래서 그집에서 그렇게 쭉 눌러 살았구나.."
“지선아..오해라구..그런게 아니야..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얘길 믿어 줬으면 좋겠다..
"치 웃기셔..믿어 달라는 사람이 이혼하자고 하며 사람 피 마르게 하고 말라 죽인 다음에 그년이랑 그렇고 그렇게 실려고 했어? 뭐 친구? 그럼 차라리 티 내지 말고 놀던가..도대체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감정에 복받혀 도저히 말을 할 수 없다..
손에 잡이는 것들을 모로리 던졌다.
“자긴 천벌 받을 거야..천벌 받을 거라구..그래 당신 소원대로 헤어져 줄게..준다고..
나 다 알고 있었지만 당신한테 기회를 줬었어..내가 그렇게 울며 애원하고 또 애원해도 매몰차게 날 걷어 차고 돌아 섰던 건 당신이야..나도 이젠 됐다고..당신 같은 사람에게 기회라는 걸 주며 기다렸던 내가 바보야. 내가 미친년이라고..“
내가 막상 헤어져 준다고 말하지 몹시 놀래는 듯 하다. 내가 이 모든 걸 알고 있었음에도 모르는 척 하루하루를 보냈었다는 거에 대해 더욱 놀래는 듯 하다.
“지선아 내가 잘 못 했어..”
“뭘 잘 못했는데..”
“사실대로 다 얘기 할 테니까 그만 울고 내 얘기 좀 들어봐..진정하라구..”
“됐어..더이상 들을 얘기 없으니까 그래 당신 말대로 헤어지자..다 끝내 버리자고..당신 같은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다 알면서도 덮어 버리려 했던 내가 미친년이다 내가 미쳤었다고..이제 다 끝났어..정말 깨끗이 끝내자구.."
“지선아 제발 내 얘기 좀 들어봐..”
울며 소리지는 내게 그간의 얘길 한다.
그 여자 유영희..
잠실의 L 백화점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이라 한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남편의 잦은 폭력과 욕설에 그만 이혼한 여자라 한다.
난 일본에 가 있었고 힘들어 하는 그 여자와 이런 저런 얘길 하다 보니 안쓰러운 맘에 처음엔 그냥 친구처럼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힘들어 하는 그 여잘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됐고 잦은 만남에 정이 들었다 한다. 그래서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또 같이 강남의 S 백화점으로 옮겼다고 한다.
같은 동네로 이사를 온 후 둘의 사인 점점 더 가까워 졌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한다.
난 말했다..그렇다면 내게 왜 그랬냐고..내게 왜 헤어지자고 했냐고..차라리 외로워 연민에 끌려 만났었더라면 내가 돌아오기 전에 왜 정리를 하지 못했냐며 난 따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뭐 연민? 그 여자가 그렇게 불쌍해 보였어? 근데 이렇게 힘들어 하는 난 불쌍해 보이지도 않았어?”
“미안해 지선아 내가 순간 돌았었나봐..정말 돌았었나봐..”
“거짓말..당신 얘기 믿고 싶지 않아..”
“지선아..내가 잘못했어..내가 잘못했어..다 정리할게..다 정리 할테니까 그만해..”
“더러운 인간..쓰레기 만도 못한 인간..”
그인 내게 무릎 꿃고 용서를 빌고 있다. 다신 그 여잘 만나지 안겠다며 다 정리 한다며 내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 자기를 한번만 더 믿어 달라며 애걸 하고 있다.
그인 날 설득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말들로..
우린 그렇게 밤새 그인 날 설득하며 난 화를 내며 싸우고 다투고 있다..
아..이 모든 일들이 꿈 이었으면 좋겠다..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