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늦은 귀가시간..
난 그이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어디야?”
“응..친구들이랑 술 한잔 하고 있어..”
“늦어?”
“음..좀..먼저자라..”
“알았어,,넘 늦지 말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 같다.
친구들이랑 술 한잔 하고 있다고.. 웃겨..술은 무슨 술..
거울에 비친 처량하고 초채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다시 서러운 눈물이 난다.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그 사람, 그렇다고 딱히 나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그 사람. 정말 나쁜 사람이다.
한참을 서럽게 울고 있는데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난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서러움에 북받혀 하염없이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여보세요..지선아..이지선..”
“응,,유진아..”
“너 무슨일이야..”
“아니야..아무 일도..”
“너 무슨 일 있지..민석씬?”
“아직..”
“그럼 너 혼자 있는 거야?”
“응...
유진아..?
더욱 서러운 눈물에 어떻게 할 수 가없다.
“그래..지선아 무슨 일인지 말해봐..말을 해야 알지..”
“민석씨가..”
“민석씨가 뭐..민석씨 한테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야....답답하게 왜 그래..너 집에 있어.내가 지금 집으로 갈게..끊자 지금 바로 갈 테니까..”
난 수화기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서럽게 한 시간 가량을 울고 있자니 친구 전화가 걸려 왔다.
“이지선..지하철역 쪽으로 나와”
“응..알았어.”
친구와 난 역 근처에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친구는 퉁퉁 부어 있는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친군 그렇게 한참을 날 바라보다 술을 시킨다.
난 500cc 맥주 한잔을 단숨에 다 마셔 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내가 먼저 무슨 말이든 하길 바라는 듯 날 바라보고 있다. 난 그런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서러운 눈물을 가눌 수 가 없었다.
“지선아..너 왜 이렇게 말랐어..너 본지 한 이십일 정도 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모습이 왜 이래..”
“유진아..유진아 나 어떻하면 좋으니..”
“그래..천천히 말해봐..무슨 일인데..”
“글세.. 민석씨 한테..”
난 도저히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민석씨 한테 무슨 일이 있는데..왜 말을 못해 어서 말 좀 해봐..답답해서 미치겠다.”
“민석씨 한테 여자가 생긴 것 같아..”
“뭐? 여자?”
“응...”
“무슨 소리..설마 민석씨 한테..너가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거 아냐?”
“아니야..정말이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차근차근히 얘기 좀 해봐..”
난 그동안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을 다 얘기했다.
“미친 놈..어디 그런 새끼가 다 있어,, 마누라 객지 보내 놓고 바람 피고 있느라고 그렇게 연락도 안되고 그랬대?”
친구의 말을 듣자면 내가 없는 동안 그이한테 몇 번이나 연락을 했다 한다. 내가 있었을 때부터 그이와 내 친구는 좀 각별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었기 때문에 종종 전화를 걸기도 했었었는데 그럴 때마다 좀 이상 하리 만큼 피하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래도 친군 설마 설마 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만났대?”
“아직 잘 몰라..아직 아무 것도 묻지 못했어..”
“왜..”
“무서워..두렵고..그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뭐가 무서워..그런 새끼는..아니다..”
“유진아..나 어떻하니..”
“어떻하긴..일단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봐야지..뭐 따지더라도 확실한 물증과 근거가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확실해? 여자가 있는 건?”
“음.. 늦는 날은 어딜 갔다 오는지 발 냄새도 안 나고 또 날 대하는 태도도 예전과는 딴판이야..내 몸에 손 하나 까닥 하지도 않고.. 그리고 밤에 같이 있는데 왠 여자한테 걸려오는 전화랑..또..”
“휴.......정말 짜증난다. 괘씸해서 못살겠다..내 맘이 이런데 당사자인 넌 어떻겠니..”
“저녁은 먹었어?”
“아니..”
“바보야 왜 굶어 그 새낀 그년이란 맛있는거 처 먹고 있을 텐데..
너 혹시 한끼도 안먹은 거 아니지..“
“먹고 싶어도 밥 맛도 없고 자꾸 눈물만 나고 못 먹겠어..”
“아..이 바보야..그래서 그렇게 말랐던 거구나..”
“나 사실 서울 와서 줄 곧 맘이 편치 못했어 공항에서부터 쭉 그랬던 것 같아..”
“니 몰골이 지금 얼마나 상했는지 알아? 얼굴도 푸석푸석하고 말야..”
“몰라..내 몰골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너네 아빠가 보면 팔짝팔짝 뛰겠다..그나저나 이를 어쩌니 지선아..”
“그래서 집에도 못가겠어. 어른들 걱정하실 까봐..”
“그래도 집에만 있으면 자꾸 나쁜 생각만 하고 안 좋단 말이야..차라리 친정에 가 있는게 낫질 않을까?”
“안돼..어른들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안 그래도 나 없는 동안 한번도 집에 안왔다며 그이한테 몹시 서운해 하고 계신데 이런 모습으로 집에 가면 난리 날꺼야..”
“그래도 지선아..혼자 울고만 있으면 너.. 아..나도 모르겠다..”
“맘 같아선 다 때려 치고 싶지만..”
“야..그런 새끼랑은..아니다..내가 왜 이렇게 흥분을 하니..내 맘이 이런데 니 맘은 오죽 하겠냐..”
“유진아 난 사실 예전에 혹시라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당장 이혼할꺼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런 일이 생기고 나니까 어떻게 해야 할 지 통 모르겠어..이게 꿈일 지도 모른다고만 생각하고 싶을 뿐이야..”
“바보야..또 운다..그렇게 울고만 있으면 뭐가 해결 돼?”
“차라리 어른들한테 얘기하고 상의 해 보는 게 어떻겠니?”
“난 말 못해..”
“그럼 언니한테라도,,”
“언니한테? 언니한테 말하면 부모님 귀에도 들어 갈텐데..”
“그럼 언제까지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을 건데?”
“모르겠어..가족들이 알면 당장 헤어지라고 할꺼야..”
“그건 니가 선택 하는 거야..”
“나 사실 자신 없어,,그 이랑 헤어질 자신 없어..”
“바보..이도 저도 못하고 어떻 하면 좋으니..”
그렇다. 서울에 오고 나서 난 집에 딱 두 번 정도 다녀 왔다.. 그것도 혼자서..왜 혼자왔냐며 아빤 내심 그이한테 서운해 하셨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게 된 막내딸을 보며 마냥 흐뭇해 하시며 기뻐 하셨던 아빠다..일본에 가기 전보다 조금 야윈 것 같다며 안쓰러워 하시던 부모님이셨는데 이런 내 모습을 보시면 아마도 너무 속상해 하실 게 틀림없기에 난 도저히 부모님을 뵈러 갈 수가 없었어. 몇일 내내 낮선 동네에 온종일 집에만 있지 말고 놀러 오라 하시는 부모님의 말에 차마 갈 수 없는 내 상황을 설명조차 하지 못한 채 이런 저런 핑계로 하루 하루를 미루고 있는 처지다.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이런 모습으론 부모님을 뵐 수 가 없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될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더욱 어떻게 해야 할 지 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