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본생활 2개월째-감동..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가고 나면 언제나 언니 남편과 단 둘이다..
처음엔 말이 잘 안통하는 것 같아 좀 불편했었다. 사실 일본에 오기 전에 일본어 공부를 하고 온 탓이라 그런지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친절한 사람이다 언제나 내가 알아 듣기 쉬운말로 내게 얘기를 해 줬고, 또 내가 말할 때 어순이 틀렸거나 잘 못된 경우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르쳐 주셨다.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얘길 하고 있다.
그분은(시누의남편인 일본인) 내가 시누를 언니라고 부르기에 본인을 오빠라고 불러 달라 했다.. 한국사람들이 생각하기엔 호칭이 뭐 그렇게 개판이야 라고 말할 수 있지만 편한게 좋다고 그냥 자기를 오빠라고 불러 달라 했다.. 그랬다 사실 그분은 오빠라는 호칭 보다는 아빠라는 호칭이 더 어울렸었는지 모른다. 나이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나이로 아마 50대 중반가량 됐다..그래서 오빠라는 호칭이 좀 머쓱하고 그랬지만 난 오빠라고 불렀다(오빠/일본어로 오니이상이라고 부름)
언니가 일본에 오자 마자 사주신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오니이상이다..막 전철에서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어디야? 수업 끝나고 오는 길이야?”
“네..막 내렸어요..”
“오늘 저녁 밖에서 먹고 들어갈까?”
“전 좋죠..”
“뭐 먹고 싶어? 지선이가 먹고 싶은걸로 먹자.”
“음..스시(생선초밥) 먹고 싶다.”
“그럼 전철역 앞 편의점에서 10후에 보자..지금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네 천천히 오세요..”
우린 그렇게 친해졌다. 날 딸처럼 아끼고 예뻐 해 주셨다. 내가 뭐든 먹고 싶다하면 서슴없이 어디든 데려가 주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생리통이 너무 심해 죽을 것 만 같았다.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생리통에 난 개보린을 하루에 3알 정도는 먹어야 지만 괜찮아졌다. 하지만 이런 곳에 개보린이 어디 있을까.. 가방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약이 없다.. 1시간 가량을 배를 잡고 방바닥을 휘젖고 다녔다.. 너무 힘들어 언니한테 전화를 해 봤지만 일하는 중이라 그런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어쩔수 없이 오니이상한테 전화를 했다..
“오니이상 나 배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요..”
“어떻하나? 괜찮아? 미안한데 나 지금 거래처 바이어랑 상담중인데..언니한테 전화 해 봤어?”
“네..전화를 안 받아요..”
식은땀에 숨까지 헐떡 거린다..
“그래 알았어..전화 끊어봐 내가 한번 해 볼게..”
“네..”
매번 있는 생리통이지만 약도 없고 아무도 내 곁에 없다 생각하니 서러움에 복받혀 더더욱 눈물이 난다..
띵동띵동.. 오니이상이다..
“괜찮아?”
식은땀에 온 몸이 다 젖어 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나를 보고 몹시 놀랜다..
“병원 가야 겠다..어서..”
날 업고 오니이상은 병원으로 뛴다..
다행이도 병원에서 진정제 주사를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가 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중요한 바이어 상담이라 했었는데 나를 위해 달려 와준 오니이상이 너무 고마웠다..감사했다..
남들은 나와 오니이상(시누의 남편을 애칭)을 보고 부녀지간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내나이 26살..하지만 나이보다 좀 어려 보이는 탓에 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난 그런 소릴 들었을 때 그다지 싫지 만은 안았었는데 정작 본인은 어땠을련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을꺼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