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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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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조짐


BY 한상군 2006-03-15

                                                           

 

 

 

 


   룸싸롱 <백작> 앞 주차장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던 고급 중형세단들이 일제히 전조등을 켰다. 차에 시동이 걸린 뒤 약 10분쯤 경과하자 룸싸롱 현관 문이 열리며 한 떼의 중년 사내들이 마담과 호스테스들의 부축을 받으며 쏟아져 나왔다.
   거나하게 취한 사내들은 술집 앞에서 전현구 회장과 악수를 하고 마담과 뜨겁게 포옹을 하는 등 한껏 흐트러진 모습으로 휘청거렸다. 그러다가 사내들은 빼어난 미모의 호스테스들을 하나씩 옆에 낀 채 대기 중이던 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이제 주차장에는 검정색 세단 한 대만 남아 있었다. 바로 전회장의 차인 아우디였다. 웨이터 한 명이 세단 상석의 문을 열어주자 전회장은 술집 현관 앞에 도열해 있던 종업원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손에 잡히는 대로 지폐를 꺼내선 종업원들에게 나눠주도록 했다. 그리고 마담과 함께 차에 올랐다.
   술집 주차장을 빠져나온 아우디가 이제 막 보도를 지나 차도에 접어들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고막을 찢는 듯한 금속성의 마찰음이 급박하게 울리더니 낯선 승용차 한대가 돌진해 와 아우디의 옆구리를 육중하게 들이받았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그 충돌로 인해 아우디는 그대로 차도에서 밀려나 커다란 차체의 반 정도가 보도에 올라서고 말았다.

   [대체 어떤 새끼야!]

   아우디의 운전석에서 튀어나온 전회장의 보디가드 윤용재가 소리쳤다. 가해차량은 검정색 구형 그랜저였다.

   [이 새끼가 죽을려고 환장했나! 감히 누구 차를 들이받는 거야?]

   용재가 그랜저의 운전석에 앉아 있던 한 사내의 멱살을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머리에 야구 모자를 쓰고, 츄리닝 상의에 청바지 차림을 한 젊은 청년이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냐? 너, 이 차 안에 누가 타고 있는 지 알아?]
   [이따, 이 손 좀 놓고 야그 합시다.]

   청년은 가소롭다는 듯 히죽 웃었다. 그는 두 손으로 용재의 왼쪽 손목을 쥐고는 옆으로 힘껏 비틀었다. 그러자 용재는 재빨리 청년의 허리 띠를 잡아 번쩍 들어선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그랜저 차체에 거세게 밀어붙였다.

   [이 새끼, 혼 좀 나봐야겠군!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까불어!]

   용재가 왼손으로 청년의 허리띠를 잡고 오른쪽 팔꿈치로 청년의 목줄기를 세게 누르자 그랜저 안에서 또 다른 청년 세 명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그들은 용재의 주위를 뺑그르르 에워싸더니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거, 놓고 얘기하드라고.]
   [우리 차가 당신 차를 받았지 당신을 받았어?]
   [왜 사람을 치고 그래? 당신 깡패여? 깡패냐고?]
   [어, 이 새끼들이...]

   청년 네 명이 저마다 가슴을 들이대고 어깨로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한꺼번에 협공해오자 용재는 주춤했다. 그 순간 청년 네 명 중 누군가가 용재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용재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그 주먹을 절묘하게 피했다. 하지만 청년들의 무자비한 공격은 계속됐다.
   주먹질 솜씨가 만만찮았다. 용재로 말하자면 유도를 십 년 넘게 수련한 고단자로, 전회장파 식구들이 모두 다 알아주는 완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날 밤 정체불명의 낯선 청년들에게 둘러싸이자 그는 정말 어이 없게도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야구모자와 그의 동료들은 길바닥에 쓰러진 용재를 잔인하게 걷어차고 짓밟았다. 술집 앞에 웨이터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그들은 감히 싸움을 뜯어말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수수방관했다.
  
   [야, 이놈들아! 그만 두지 못해!]

   전회장이 차에서 내려 소리쳤다. 그는 대취한 상태였지만 목소리만큼은 흡사 밀림 속 호랑이 울음소리처럼 쩌렁쩌렁했다. 

   [너희들 대체 누구냐! 남의 차를 부쉈으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지 감히 사람을 때려! 네 이놈들!]

   왕년에 노병태의 오른팔로서 한 가락 톡톡히 했었던 전현구였다. 하지만 숱한 무공을 세운 전쟁터의 영웅이 제대 후 자기 고향에서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말처럼 전회장도 이 장면에선 별 수 없었다. 청년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때리고 차고 정신없이 밟아버리자 전회장은 불과 일 분도 안돼 허망하게 주저앉고 말았다.
   전회장과 용재는 무수히 구타 당한 끝에 피투성이가 되어 완전히 뻗어버렸다. 청년들은 기세 등등한 모습으로 아우디로 다가섰다. 그러자 아우디 안에 홀로 남아 있던 마담이 얼른 차문을 잠궈버렸다. 청년들은 보도블럭을 몇 개 빼내어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만든 뒤 아우디의 차체와 유리창에 던져 엉망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요거시 그러코롬 비싼 차라고라.]
  
   쾅, 하고 전면 유리창이 부숴졌다. 청년 하나가 이죽거렸다.

   [아따, 멋지네 그랴. 비싼 차라 그런지 부숴지는 모습도 아릅답구마이.]

   본네트도 여지없이 우그러졌다. 뿐만 아니라 뒷유리와 양쪽 네 군데 도어의 유리창, 그리고 사이드 미러까지 박살 나버렸다.

   [우리 같은 놈은 이런 차를 굴릴 팔자가 못되니께 요로코롬 부수는 게 돈 버는 거랑께.]
   [오메, 좋은 거! 오늘 돈 좀 많이 벌어보드라고!]  
   
   마담은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급히 연락을 취했다. 뻥뻥, 하는 파열음과 함께 차체가 우그러지고 유리창 파편이 여기저기 튀었지만 마담은 끝까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자 청년들은 곧 만행을 멈추더니 서둘러 하나 둘 그랜저에 올랐다.
   하지만 아우디를 심하게 들이받은 그랜저 역시 얼마나 충격이 컸던 지 아예 시동 모터 자체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청년들은 별 수 없이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문득 전회장의 바지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내들었다.
   지갑 속엔 현찰과 수표 등이 가득했다. 청년들은 수표와 현찰 뿐만 아니라 카드까지 쏙쏙 빼낸 뒤 길바닥에 빈 지갑을 던져버렸다. 히죽히죽 웃으며 그리고 청년들은 유유히 술집 앞에서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