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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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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9/ 그녀를 찾아 나서다(3)


BY 盧哥而 2005-09-22

 

그녀를 찾아 나서다 (3)



오래지 않아 술손님들이 한 팀 또 들이닥치는 바람에 길게 이야기를 시킬 수 없었지만 그날 박미숙의 입을 통해 얻어들은 말은 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하여간 그때 내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민주에 관해 박미숙에게 몇 가지 더 시켜 들은 말들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고 또 믿어지지도 않는 말들이었다.

박미숙은 우선, 민주가 상당히 착하고 좋은 여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 때문에 팔자가 더러운 여자가 된 것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먼저 내렸다. 그리고는 민주가 ‘칸타타’를 자기에게 넘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거기서 더 이상 술장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손님들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고(그녀 식으로 표현 하자면, 몇 번 찾아 와 술 좀 팔아 준 손님들에게는 ‘이놈 저놈 가리지 않고 가랑이를 한번 씩 다 벌려줬다’는...) 했다.

결국 그런 소문이 이미 난 술집에서 민주는 도저히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었고, 마침 자기를 만나게 돼 싸게 가게를 넘기게 된 것이었다고 했다.

그때 새로 들이닥친 한 팀의 손님들을 맞느라 일어섰던 박미숙이 그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안주를 장만하는 잠깐의 틈을 내 내게 다시 다가와 슬쩍 던진 마지막 말은.... 자기도 어떤 손님에게 들은 말인데, 민주가 괜찮은 남자를 하나 물었다며 술집이 아닌 다른 가게를 곧 차릴 거라고 자랑했다는 거였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어디까지 내가 박미숙의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나는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박미숙의 이야기를 더 듣는 게 한편 겁이 나기도 해 대강 남은 술들을 서둘러 마셔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미숙은 계산을 마친 나를 문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해줬다. 다시 들리라고 갖은 애교를 다 부리며...


나는 혹을 떼려다 오히려 더 큰 혹을 붙여 온 사람처럼 황당하고 어이없는 그 상황을 정리해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지향도 없는 발걸음을 빨리해 밤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는 그렇게 정신없이 걸으면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민주에 관한 모든 일들을 떠올려 봤다.

마치 편집 전의 영화 필름처럼 순서 없이 이런 저런 단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박미숙의 말을 도저히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민주가 그 가게에서 그렇게 헤프게 굴었다는 말은 내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고 그만큼 내게 충격이었다.

민주가, 자신의 알몸에 닿는 내 손길은커녕 내 눈길에 마저도 그렇게 부끄러워하며 거북해 하고 어색해 했던 그녀가 아무 남자들과, 술 몇 번 팔아 준 이런 저런 손님들과 스스럼없이 잠자리를 가지고 뒹굴던 여자라는 게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 민주와 나만 알고 있어야 할 양품점 가게의 인수 건을 다른 사람도 아닌 거기 술손님들이 알고 있었다니...!

나는 민주의 행방을 찾으려고 나섰다가 전혀 예상 밖의 민주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완전히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든 셈이 되었다.

이젠 민주의 행방을 찾는 게, 왜 민주가 갑자기 행방을 감췄는가를 알아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민주의 정체... 나에 대한 민주의 진실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알아내는 게 더 먼저 밝혀야 될 문제로 떠오른 것이었다.

민주를 처음 만난 날부터의 상황과 처음 섹스를 가졌던 그날 새벽에서의 상황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난 그 남자와 그가 내게 던진 몇 마디의 충격적인 말들... 그리고 민주의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두 달여 동안 민주의 입을 통해서 전해들은 그녀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을 몇 번이고 다시 되돌려 짚어보고 또 짚어보면서 민주에 대해 생각해보았지만 결론은 박미숙이 말한 민주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동안 민주에게 느껴왔던 모습도 또 분명 아니었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를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박미숙의 말대로라면 민주는 내게 결국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접근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그동안 민주가 내게 보인 모든 행동으로 보아 결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양품점을 계약하는 과정에서도 보았듯 민주는 처음부터 자신의 명의로 계약을 원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행방을 감추는 과정에서도 양품점 주인에게 계약금을 내게 다문 얼마라도 반환시켜주기를 간절히 부탁해마지 않았다던가 했던 사실에서 민주가 과연 그렇게 내게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접근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민주의 집에 매일 드나들면서 내가 그녀에게 들인 돈도 거의 없었다.

내가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몇 번인가 많지도 않은 겨우 수십만 원 정도씩의 돈을 내밀었을 때에도 민주는 번번이 사양했다. 아직은 자기에게 돈이 남아 있다고, 생활비가 떨어지면 그때 말하겠다고 하며...

그러나 박미숙이 다른 술손님에게 들었다는, 민주가 새로 가게를 낸다는 이야기를 술손님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설사 민주가 아무런 다른 뜻 없이 술장사를 그만두고 다른 가게를 낸다고 말한 것을 술손님이 자기 나름대로 해석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와 그녀만의 사랑의 징표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소중한 일까지도 뭇 남자들과의 술자리에 올릴 정도로 생각 없고 허술한 여자였다면 박미숙의 말대로 아무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도 있는 그런 여자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기다 내가 민주와 첫 섹스를 갖게 된 그날의 새벽이 새삼 기억되면서, 그날 그녀로서는 처음 만난 나와 부끄러워하고 거북해 하면서도 어떤 저항이나 거절의 의사 없이 섹스를 치룬 상황이 되짚어 졌다.

따지고 보면 내가 누구인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거의 몰랐던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내게 안겨들었던 것 아니던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에 다시 정신을 까무룩 놓고 말았다.

나는 길가의 전봇대를 붙들고 서서 금방이라도 쓰러져버릴 듯한 내 몸을 지탱하느라 한참이나 안간힘을 썼다


나는 이제껏 민주가 너무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데다 너무 선량해, 각박한 세상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고달프게 살아 온 여자라고만 여겨 그녀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한편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라는 또 한 가지의 측면만을 두 축으로 하여 민주를 판단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녀의 전혀 다른 모습과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정말 여자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일까?

갑자기 친구들의 비웃음 띤 얼굴들이 떠올랐다. 술자리에서 내가 여자를 너무 가린다고 하면서, 하룻밤  즐길 여자를 고르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까탈스럽냐고 비아냥거리던 그 얼굴들이...

과연 그랬던 것일까?

민주도 그냥 그저 그런 술집의 여자로 내가 잠시 엔조이할 상대로만 여겼어야 했던 것일까?

나의 혼란은 끝이 없었다.

나는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거기가 어딘 지도 잘 모르는 거리에서 하염없이 헤맸다.

그리고 어느 포장마차에 들어가 깡소주를 세병이나 비우고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겨우 근처의 여관방에 몸을 눕혀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그날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에 시달렸다.

그 악몽은 어느 지하실, 공포영화에나 나옴직한 으스스한 그런 지하실에서 민주가 어떤 알 수 없는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내가 눈을 뜬 것은 벌써 9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싸구려 침대, 언제 빨았는지도 모르는 퀴퀴한 냄새나는 담요 위에 겉옷도 벗지 못한 채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핸드폰이 뚜껑이 열린 채 쥐어져 있었다.

나는 입 안에서 목구멍까지 말라 터져버릴 듯 뻑뻑한 갈증의 고통을 느끼며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찾아내 우선 갈증부터 해결하고 핸드폰을 체크했다.

내가 민주의 핸드폰 번호로 무수히 전화를 했던 흔적이 찍혀 있었다. 물론 통화가 이뤄지지 않은 표시로...

메시지가 하나 남겨져 있었다.

클릭을 해서 보니 아내가 보낸 것이었다.

시간을 보니 8시 반... 내가 잠에서 깨기 방금 전이었다.

어쩔까 하다, 아니 열어보기가 왠지 두려운 마음에 잠깐 망설이다가 메시지를 열었다.

‘오늘은 술 마시지 말고 들어와요. 꼭 해야 될 얘기가 있어요.’하고 간단히 찍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