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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8/ 그녀를 찾아 나서다(2)


BY 盧哥而 2005-09-20

 

그녀를 찾아 나서다 (2)





일식집의 맨 구석진 방을 차지한 나는 식사를 대강 끝내고 양품점 주인 여자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나는 먼저 그 양품점을 사기로 계약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다음 말은 조금 뜸을 들이면서 그녀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다렸다. 혹시 민주가 먼저 전화를 했었거나 찾아갔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생각대로 며칠 전 민주의 전화를 받았었노라고 하며 그녀는 이내 그 장사꾼 특유의 싹싹한 말투로 계약금 반환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다시 가게를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는 바람에 자신이 입을 손해에 대해 누누이 설명을 했다.

나는 충분히 그쪽의 입장을 알았으니 됐다고, 계약금의 반환을 요구하지 않겠노라고 선선히 대답을 해주고 어쨌든 미안하게 되었노라고 정중히 사과까지 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민주에게 혹시 다른 말은 들은 게 없었느냐고 물었다. 민주가 얼추 한달 가까이 그 가게에 나갔었기 때문에 그 주인 여자와도 어느 정도 친숙해져 있을 거라는 생각에 혹시라도 무슨 단서가 될만한 이야기를 남겨놓은 게 없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내가 기대한 민주의 심중이나 행방에 대한 단서가 될만한 이야기는 없었다.

민주가 양품점 계약을 파기하는 이유로 자신이 급하게 외국으로 나가 있어야 될 일이 생겨 그럴 수밖에 없다고 둘러댔다는 것과 계약금 중 다문 얼마라도 내게 돌려주기를 간절히 부탁했었다는 것 정도가 내가 그녀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을 뿐이었다. 민주가 급히 행방을 감춰야 되는 상황에서도 되도록 내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는 점을 알게 된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랄까...


나는 사무실로 돌아 와 이제는 ‘칸타타’를 민주에게 인수한 여자를 찾아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될까 궁리를 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를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그저 민주의 말로만 들어 아는 여자이니 달리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그 여자와는 내가 생면부지인 처지이니 손님인척 꾸미고 술을 마시면서 상황파악을 먼저 한 다음 이야기를 슬슬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퇴근을 하면서 바로 ‘칸타타’로 갔다.

민주의 집에 올 때 마다 늘 내리던 데서 택시를 내리면 ‘칸타타’는 바로 코앞이었다.

나는 거기서 택시를 내리다 ‘칸타타’를 지나쳐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조그만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우연히 발견했다.

나는 문득, 민주가 갑자기 방을 비웠다면 그 주변에서는 유일한 듯 보이는 그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통해 방을 내놓았을 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뭔가 내가 원하는 민주에 관한 정보가 남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일단 부동산 중개사무소엘 먼저 들려야겠다고 판단하고 ‘칸타타’를 지나쳐 옆 건물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겨우 책상 하나와 짝도 안 맞는 낡은 소파 한 조가 다인 그 부동산 중개소 안에서 60대 노인 하나가 돋보기를 콧등에 걸고 신문을 보고 있다가 눈으로 나를 맞았다.

‘방을 하나 급하게 구하러 왔는데...’

나는 매물이나 임대 물건의 명세가 한문이 섞인 흘린 글씨로 적힌, 한 쪽 벽에 걸어놓은 칠판을 한눈에 훑으며 말을 꺼냈다.

‘누가 쓸 거유?’

노인은 신문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돋보기를 천천히 벗어 접어놓으며 하나도 바쁘지 않은 어투로 물었다.

그때 내 눈에 칠판의 맨 아래 부분에 ‘연립 반 지하, 큰방1 작은 방1 주방 겸 거실, 도시가스 단독 보일러...보 500, 월세 20만, 급’이라고 쓰인 글씨가 들어 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게 민주가 살던 집이라는 걸 알아챘다.

‘지방에 있던 조카 녀석이 와서 혼자 쓸 방인데 보증금 500정도에 월세 좀 끼고...’

나는 민주가 살던 방에 걸맞게 용도와 보증금 예상액수를 둘러댔다.

‘이사는 언제 쯤 할 거유? 젊은 사람이 혼자 쓰기 딱 좋은 방이 하나 나온 게 있는데... 바로 이사도 가능해요. 지금 비어있으니까.’

노인의 말대로라면 민주가 살던 방이라는 게 거의 확실해 보였다.

‘집이 이 근처면 좋겠는데...’

내가 좀 더 확실히 확인하고자 덧붙였다.

‘바로 요 뒤 골목 안, 연립 반지하인데 혼자 자취하기엔 넉넉하지. 보증금도 500에 월세 20이니까 이 동네에선 제일 싼 편이구...’

‘혹시 집이 너무 안 좋아서 지금 비어있는 것 아닙니까?’

나는 민주에 관한 이야기가 대답으로 나올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아녀, 거기 살던 사람이 갑자기 지방으로 이사 가야 할 일이 생겼다면서 며칠 전에 급하게 비운 거야. 한번 가보실려우? 젊은 아줌마가 혼자 살아서 집도 아주 깨끗하게 썼어...’

나는 노인의 입을 통해 민주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 답으로 나올 수 있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방 계약을 하자면 당사자하고 해야 합니까 집주인하고 해야 합니까? 당사자는 지방으로 떠났다면서...’

‘나하고 하면 돼요. 집주인이나 세 들어 살던 사람이나 다 내게 위임한 거니까...전세도 아니고 겨우 500짜리 보증금인데... 방 비운 그 아줌마 처음 이사들일 때도 내가 다 위임받아서 한 거유. 이번에도 통장번호만 적어놓고 그냥 갔어. 언제든 방이 빠지면 그리 돈 넣어 달라고...’

민주의 다급했던 이사 상황이 노인의 입을 통해 또 한번 확인이 되는 셈이었다. 나는 노인에게 의심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민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질문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 잠시 머뭇거렸다.

‘어쪄, 한번 가보실려우?’

노인은, 내가 그 방을 얻을 수 있는 적절한 손님으로 판단됐는지 의자에서 바로 일어서며 그제야 적극성을 띄었다.

‘아니, 됐습니다. 반 지하라서 좀... 반 지하 말고 다른 집으로 한 번 더 알아봐주십쇼.’

‘이 동네에서 보증금 500가지고 반 지하 말고는 어려운데...’

‘보증금을 좀 더 들여도 괜찮으니까 한 번 더 알아봐주세요. 제가 일간 다시 들릴게요.’

하고는 나는 바쁜 듯 돌아서 출입문을 열었다.

노인은 급히 따라 나와 부동산사무소의 전화번호가 크게 적힌 명함을 재빨리 내 손에 쥐어주며

‘내일 한번 전화해 주슈. 내 금방 알아볼 테니...’

나는 어정쩡하게 목례를 해주고 부동산 사무소를 나섰다.

결국 부동산 사무소에서도 나는 딱히 소득이 될만한 단서는 찾지 못한 셈이었다. 민주의 다급했던 상황만 다시 확인이 되어 마음만 짠해졌을 뿐...


나는 그 옆 건물의 ‘칸타타’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로 가게를 인수한 여자는 간판은 그대로 둔 채였지만 출입문과 벽의 창틀에 페인트칠을 새로 했고 출입문 위에 전보다 밝고 근사한 등을 새로 달아 민주가 가게를 할 때보다 훨씬 산뜻한 분위기를 풍기게 해놓고 있었다.

손님이 들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가게 문은 충분히 열고 있을 시간이라 나는 ‘칸타타’의 출입문을 쓱 밀고 들어섰다.

첫눈에 내부의 구조나 장식들이 상당히 손을 본 듯 달라져 있는 게 느껴졌다.

‘어서 오세요!’

간드러진 여자의 음성이 홀 안 쪽 깊숙한 곳에서 나더니 한 여자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민주보다는 서너 살 쯤 아래로 서른 두셋 정도 보이는, 정말 민주와는 전혀 인상이 다른 섹시하고 요염한 자태의 여자였다. 속된 말로 물장사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처음 뵙겠습니다. 저, 박이라고 해요.’

그녀는 나를 한 테이블에 자리하게 하고 막 바로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아 명함을 한 장 건네며 인사했다.

명함엔 어설픈 꽃무늬 그림과 함께 ‘맥주, 양주’...‘칸타타’...그리고 대표란 직함을 조그맣게 앞세운  ‘박미숙’이란 이름이 박혀있었다.

그녀가 있다 나온 홀 안 쪽에는 벌써 중년 남자 둘이 손님으로 와 있었고 젊은 아가씨도 하나 끼어 앉아 있었다. ‘칸타타’의 새로운 주인 박미숙은 민주와 다르게 접대하는 아가씨를 하나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박미숙은 첫인상부터 민주와 달리 술장사에 상당한 이력이 난 여자로 보였다.

박미숙은 내가 시킨 맥주 몇 병과 마른안주를 금방 장만해 들고 와 다시 내 옆에 찰싹 들러붙어 앉았다.

나는 곁눈으로 박미숙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과연 이 여자의 입을 통해 민주의 행방에 관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내게 박미숙은 그만큼 호락호락해 보이는 여자가 아니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맥주를 서너 잔 쯤 비운 후 나는 슬쩍

‘참, 전의 그 주인은 이제 안 오나?’

하고 내 깐에는 최대한 별 의미 없는 물음처럼 느껴지는 말투를 가장해 물었다.

‘아, 그 언니... 사장님도 그 언니 좋아하셨나보죠?’

‘사람 참 좋았던 것 같았는데... 착해 보이고...’

‘사람이야 좋죠, 그 언니. 달래는 사람 다주고...’

‘달래는 사람 다주다니...?’

나는 순간 섬찟한 느낌이 들며 되물었다.

‘사장님한텐 안줬어요? 여기 웬만한 손님들은 다 그 언니랑 몇 번씩 잔 것 같던데...’

나는 순간 뒤통수를 쇠망치로 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득하게 정신이 놓여졌다.

그리고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 뼈마디마다의 관절들이 모두 녹아 흘러내리는 듯, 그래서 마치 뼈가 없는 해면체 동물이 흐물흐물 바닥으로 뭉쳐지며 물러나 앉듯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이 무너지려는 내 육신을, 나는 간신히 테이블 모서리에 기대 지탱했다.

박미숙의 놀란 얼굴이 흐릿한 내 시야에 간신히 잡혀졌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세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내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건 아마도 10여 분도 넘게 박미숙이 손과 팔 그리고 가슴과 목덜미 등을 주물러주고 두드려주는 마사지를 받은 후였다.

나는 그 와중에도 내가 쇼크를 받은 건 민주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점심 때 잘못 먹은 음식 탓이라고 둘러댔다. 내가 음식에 대한 앨러지가 있는 데 아마 뭔가 내 몸에 안 맞는 걸 먹은 게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여전히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어 매면서, 금방이라도 터져 뿜어져 나올 듯 심장에서 소용돌이치는 혈류를 겨우겨우 진정시켜가며 박미숙에게 민주에 대한 말을 더하게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