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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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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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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7/ 그녀가 말하다 (1)


BY 盧哥而 2005-09-01

 

그녀가 말하다 (1)




그날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갔다. 아내가 있을 마트의 베이커리 매장으로 갈까하다가 아무래도 양심에 꺼려져 그냥 아파트로 바로 들어갔다.

아파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딸애 찬희는 매일 밤 열 한 시나 되어야 오는 애이고 찬호 녀석도 대개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야 귀가하는 편이니 내가 퇴근해 바로 집에 들어오는 날엔 대개 아무도 없이 텅 빈 아파트였다.

나는 아내에게 집으로 바로 들어 왔다고 전화를 해준 다음 윗옷만 벗어 던져두고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웠다.

어젯밤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기어코 내가 일을 벌이고 말았다는 생각의 한편에서 두려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나와 민주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아내에 대한 죄책감은 또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만일, 민주와의 일이 탄로가 될 경우 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됐을 경우 아내는 내게 어떻게 대응을 해올까? 그녀의 형제들은 또...

그리고 찬호나 찬희는 이 애비를 어떻게 대해 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으나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자신 있는 방책이 있을 수 없었다.

문득 내 사무실과 복도를 사이로 마주 보고 있는 사무실의 김사장이 떠올랐다.

그는 얼마 전 바람피우다 그의 아내에게 들통이 나 호되게 고역을 치룬 사람이었다.

나보다 둬 서너 살 아래인 김사장은 특별히 여자를 밝히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마음이 좀 여린 게 흠이어서 어쩌다 술집이나 찻집 같은 데서 얽히게 된, 그러니까 하룻밤 잔 여자가 매달리면 차마 냉정하게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몇 번인가 주의를 준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사무실 근처 자주 가던 술집 마담에게 된통 걸려들어 빨리 정리를 하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기어코 집 사람에게 꼬리가 잡혔던 것이었다.

결국은 아내에게 며칠을 두고 싹싹 빌고, 마침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새 직장을 알아보던 막내 처제를 자기 사무실에 근무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용서를 받았던 것이다.

직원이라야 통 털어 예닐곱 명 뿐인데다 사장실이라는 게 사무실 한켠에 칸막이를 쳐 만든  그 사무실에서 처제가 같이 근무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거울에 비춰지듯 명백하게 아내에게 그때그때 보고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으니 김사장으로선 아내에게 완전히 백기를 들고 항복한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처지는 결코 그런 정도의 타협에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만일, 나와 민주 사이의 일을 아내가 알게 된다면 아내는 그 순간 아마 까마득하게 정신을 놓으며 기절부터 할 것이라고 내겐 짐작 됐다. 그동안 내게 보인 아내의 믿음으로 보아 남편인 내게 여자가 생겼다는 것은 하늘이 쪼개진다는 것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일 테니까...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아내는 바로 냉정을 되찾을 것이고 이혼카드를 바로 꺼낼 것에 틀림없다. 그녀의 평소 기질로 보아 일단 그것이 사실이라고 분명히 판단되면 질질 끄는 일 없이, 요즘 말로 ‘쿨’하게 매듭지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최대한 사리분별을 하며 합리적으로 재산을 나누자고 할 것이고 일단 아이들의 양육권도 자신에게 귀속시키려 할 것이다. 이미 딴 여자에게 눈을 팔아 도덕적인 흠결이 생긴 아빠에게 절대 아이들 양육을 맡길 수 없다고 할 것이고 다행히 아이들이 거의 다 컸으니 저희들의 판단에 따라 아빠를 보고 싶을 땐 언제든지 찾아가서 볼 수 있는 정도의 단서도 달아 줄 것이고...

그리곤 끝일 것이다.

아내는 아마 그 이후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처럼 충분히 살아 갈 것이다. 가슴 속으로 나의 배신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평생 동안 삭일지언정...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나는 소름이 끼쳤다.

이쯤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민주를 도저히 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결론은 내 처음 생각대로 끝까지 숨기고 가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경멸했던 그 변호사를 하는 고등학교 동기 놈이나, 아내 몰래 여자를 숨기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아는 사람들처럼 나도 끝까지 숨기고 가면 될 것 같았다. 앞 사무실의 김사장처럼 어설프게 굴다 꼬리를 잡히는 일만 생기지 않으면 된다고 나는 내 마음에 단단히 이르고 또 일렀다.


아들 녀석 찬호가 밖에서 들어 온 것은 내가 그렇게 마음의 다짐을 하고 또 하고 있을 때였다.

찬호는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책가방을 제 방에 던져두고 주방으로가 바로 식탁에 저녁상을 차렸다. 아빠가 시장할 테니 집에 들어가면 바로 저녁을 차려 같이 먹으라고 아마 제 엄마가 핸드폰으로 일렀을 것이다.

찬호와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또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어쩐지 그 녀석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기가 미안했고 애비인 나 자신의 현재 몰골이 추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아들 녀석 찬호는 외모는 엄마 쪽을 많이 닮은 외탁이었는데 성품은 나와 거의 흡사했다. 어릴 때부터 자기 머리만 믿고 공부를 몰아서 하는 버릇이며 뭔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만사를 제쳐두는 성격에다 친구를 사귀는데 상당히 까다롭게 굴어 아주 친한 몇 명 외에는 거의 다른 친구가 없는 것까지...

찬호는 지금 재료분석공학인가 하는, 문과출신인 제 엄마나 나로선 그게 구체적으로 뭘 하는 학문인지 감이 잘 안 오는 그런 공학 계통을 전공하고 있는데 장래의 꿈은 엉뚱하게도 작가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시도 잘 짖고 큰 대회에는 아니지만 교내 백일장에서 상도 여러 번 받을 만큼 문장을 다루는 솜씨가 좀 있기는 했었지만 기껏 그 힘들다는 공과대학에 입학한 후에 그 녀석이 그런 소리를 했을 땐 아내나 나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찬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전공은 전공대로 살리면서 작가의 꿈도 키울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어이없어하면서도 한편 무척 대견스러워 했었다. ‘ 아, 이 녀석은 속이 아주 알차구나!’ 하면서...

나도 그 녀석이 초등학생시절이나 중, 고등학생 시절 숙제 따위로 쓴 글들을 어쩌다 보고는 이 녀석한테 문학적 감성이 제법 있는데 하고 생각했었던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문득, 찬호가 나의 그 비밀을 알면 어떻게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의 이런 일탈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애비가 엄마보다 한참 젊은, 애비 나이보다 열여섯 살이나 적고 엄마보다도 열세 살이나 적은 그런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면, 아니 사랑에 빠졌다면 아들 녀석 찬호는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빠, 더운 국물 좀 더 떠드릴 까요?’

찬호가 내게 그렇게 물어왔을 때야 나는 제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 그래 좀 더 떠다오.’

하고 나는 반 쯤 남은 채 식어버린 국그릇을 찬호에게 내밀었다.

국을 뜨러 싱크대 쪽으로 돌아선 찬호의 훌쩍 커버린 뒷모습이 참으로 듬직해 보였다.

그러나 저 아이도 애비인 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엄마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제 엄마처럼 내게서 영영 돌아설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입 속에서 씹히던 밥알들이 말 그대로 모두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왔다.

아, 나는 이대로 돌아설 수 없는 길을 가고 마는가...?!

아들 녀석 찬호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나는 그대로 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녁 식사를 끝낸 후 나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를 나섰다.

찬호에게 바람 좀 쏘이다가 마트가 끝날 시간 쯤 엄마를 데리고 오겠다고 하고...

아파트 단지 내 손바닥만한 공원을 이리저리 거닐면서도 나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민주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한참만에야 그녀는 전화를 받았고 가게 안은 제법 손님들이 있는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그녀의 음성 뒤에 묻어 왔다.

전화는 했으나 나는 그녀에게 지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손님이 좀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때 어느 손님인지 ‘어이, 마담! 뭘 해?! 빨랑 일루와!’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갑자기 머리 뒤로 피가 솟는 듯 아찔한 느낌이 왔다.

민주는 좀 난처한지 좀 있다 자기가 전화를 다시 걸겠다고 했다.

나는 간신히 아니, 괜찮으니 장사나 잘하라고 하고 내일 낮에 내가 전화를 하마하고 끊었다.

나는 잠시 전에 받은 그 역한, 피가 솟구치는 듯한 느낌을 진정시키는데 한참의 시간을 허비해야했다.

아내까지 배신해가며 내가 그렇게 갖고 싶은 아름다운 그녀가 술꾼들의 입에서 하찮은 여자로 마구 불려지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손바닥만한 공원 안을 수십 번도 더 맴돌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죄 없는 담배만 피워 물었다 버리고 했다를 반복했다.

문득 검푸른 나뭇가지 사이로 창백하게 푸른빛을 띤 반 쯤 넘어 이지러진 달이 보였다.

그 달 만큼이나 내 마음은 창백했고 시리고 쓰리고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