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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4/ 그녀를 감추다 (1)


BY 盧哥而 2005-08-29

**** 모두에게 아름다웠던 그녀,

                    그러나 그녀는 내게 치명적인 독(毒)이었다***** 

 

 

 

 

그녀를 감추다 (1)




거실 소파에서 잠이 깬 건 아침 여덟시가 좀 지나서였다.

찬희는 이미 등교하기 위해 집을 나갔을 시간에서 한 시간도 더 넘었을 때였을 테고 그날따라 첫째 시간부터 수업이 있다면서 서두르며 막 현관을 나가는 찬우의 뒷모습을 보며 잠이 깨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 온 날 거실 소파에서 자는 건 결혼 초부터 아내와 불문율처럼 지켜진 일이었다.

처음엔 술 취하면 옆에 누가 있는 게 싫어서 내가 먼저 그렇게 하기 시작한 것인데 아내 역시 역한 술 냄새 풍기며 코까지 고는 나를 억지로 자기 옆에 안 재우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술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으레 소파에 베개와 담요를 미리 갖다 둬놓고 있었다.

사실 집에 들어와 소파에서라도 자는 날은 그나마 다행인 날이고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내 사무실을 차려 사업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나는 술에 취하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로 되돌아가 사무실 소파에서 자는 새로운 버릇을 들였다.

집이 사무실에서 좀 멀어 택시 안에서 번번이 잠드는 경우가 많다보니 술이 좀 과했다 싶은 날엔 전혀 엉뚱한 데 내려서 헤맸던 경우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고 그러다 택시기사와 다퉈 파출소, 경찰서 신세도 여러 번 졌었다.

그전에 회사생활을 할 때에도 술이 좀 과했다싶은 날은 술자리에서 그대로 꺾어져 잠이 들어 동석했던 사람들이 가까운 여관 같은 데 간신히 끌고 가 재운 경우도 허다했었고 보니 그 뒤부터 아내는 내게 술이 좀 많이 취했다 싶은 날은, 거기가 사무실 근처면 다시 사무실로 찾아들어가 자고 좀 먼데서 술을 먹은 날은 차라리 거기서 가까운 아무 여관이나 모텔을 찾아들어가 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지경까지 됐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아내의 나에 대한 믿음도 단단히 한 몫을 했을 터였다. 결혼 전부터 내가 술에 취하면 양귀비를 옆에 데려다 놔도 그건 내게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찬우가 나가는 걸 보며 잠이 깬 나는 잠시 소파에 그대로 드러누운 채 어제 밤일을 되새겨 보았다.

나는 어제 아파트 앞 포장마차에서 소주 두 병을, 두 시간 가까이 혼자 홀짝홀짝 마시며 아내에 대한 배반의 음모를 꾸몄다. 아니 꾸미고 말았다!

나는 민주, 그녀를 도저히 내 마음 속에서 지워버릴 자신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에 제 2안으로 생각해두었던,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을 도저히 진정시킬 수 없다면 차라리, 남들처럼 나도 그녀를 숨겨놓은 애인쯤으로 만들어 두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어제 밤, 그 심야의 포장마차 안에서 아내에게는 물론 그녀에게까지도 야비하고도 끔찍한... 그리고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결론을 내리고 만 것이었다.

그런 나의 결론은 당사자인 아내나 민주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나 자신은 물론, 나의 아이들, 나의 부모 형제...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 대한 배신행위도 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그 토록이나 경멸했던... 아내를 두고 딴 여자와 놀아나는...정말, 사람 같지 않다고 여겼던, 그 파렴치하다고 생각했던 인간들 틈에 결국 나도 자청해서 끼어들겠다는 결론이었으니까...


아내가 꿀물을 한 대접 가득 만들어 들고 왔다.

‘속 괜찮아요?’

하며 아내는 내 어깨를 흔들었다.

나는 방금 잠이 깬 시늉을 하며 몸을 조금 일으켜 소파 팔걸이에 기대 누웠다.

‘어서 들이켜요. 꿀물이야...’

목이 말랐던 차에 나는 아내가 내민 대접의 꿀물을 받아 두어 모금에 다 들이켰다. 갈증이 풀리면서  머리까지 한결 맑아지는 듯했다.

아내는 내가 다 마신 대접을 받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내 다리를 밀어 젖히고 그 자리에 궁둥이를 들이밀어 앉았다.

아내는 한 손을 담요 위로 내 무릎께에 놓으며 조심스럽게 내 눈을 찾아 응시했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 받기 거북해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찬희 아빠...’

아내가 차분하게 갈아 앉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요즘 당신 좀 이상해. 회사에 뭐 꼬인 일 있어?’

‘아냐. 꼬인 일은 무슨...’

나는 속으로 뜨끔하면서도 그냥 눈을 감은 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아니야. 요즘 당신 많이 달라 보여...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거 같애.’

‘그런 일 없어. 걱정 마... 나 요즘 폭음하는 일도 거의 없잖아.’

나는 눈을 계속 감고 있으면 어딘지 더 수상쩍어 보일 것 같은 생각에 다시 눈을 뜨며 그렇게 말해줬다.

‘그러니까 더 이상하지... 전엔 속상한 일 있으면 술로 풀었는데, 요즘은 술도 잘 안마시구...’

‘차암, 걱정도 팔자다. 남편이 술 적게 마시는 것도 걱정이야?’

‘혹시 어디 아픈 데 있는 건 아니지?’

‘아니, 이 여자가?...내가 무슨 암이라도 걸리길 바라는 여자 같네...’

‘아이, 누가 그런 뜻으로 물은 건가...’

나는 더 이상 이야기가 길어져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순간적으로 내리고

‘사무실에서 새로 구상하는 일이 있어서 그래...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해야 될 일이 좀 많아.’

하고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사실 그즈음 나는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고 있는 것이 있기는 했다. 아직 사무실 직원들한테까지도 밝히고 있지 않은 좀 설익은 아이디어였지만...

‘무슨 일인데?’

‘나중에...가닥을 좀 확실히 잡으면 얘기해 줄께...’

내가 느닷없이 꺼낸 새로운 사업 구상 때문이라는 말에 아내는 요즘 한동안 내가 보인 나답지 않은 여러 행동들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히 풀리는 듯한 눈치였다.

내가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만사 제쳐두고 한동안 그 일에만  몰두한다는 걸 아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일단 곤경은 면했다 싶은 판단이 들어 짐짓 벽시계를 돌아보고

‘아이고,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밥이나 얼른 차려. 일찍 나가봐야 돼.’

하고 담요를 걷어차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알았어요. 찌개만 데우면 돼. 얼른 씻어요.’

아내는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꿀물을 담아 왔던 대접을 가지고 주방 쪽으로 갔다.

나는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몰래 쉬었다. 그리곤 속으로 또

‘내가 죽일 놈이지...!’하고 자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로 출근한 후 업무를 보는 짬짬이 민주에게 어떤 식으로 내 뜻을 전할 것인지 궁리했다.

그리고 과연 그녀가 나의 그런 야비한 계획에 동의해 줄 것인지를 나름대로 가늠도 해봤다.

그날 그 남자가 내게 했던 말들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다.

그때 그는 민주네 가게에서 내게 분명히 이런 말을 했었다.

‘저 여자 불쌍한 여잡니다. 문사장님이 잘 거둬주세요.’ 하고...

그 말은 이를테면 그녀를 돌봐 줄 다른 어떤 사람도 현재는 없다는 뜻이면서 내가 그녀의 후견인이 되어도... 다른 말로 그녀의 애인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 분명하다 싶었다.

그리고 자기는 그녀를 오래도록 좋아했지만 결코 그녀의 짝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제 그만 손을 떼겠다는 말과 함께 그녀에 대해 덧붙인 ‘ .... 아무나 속여먹으려 드는 막된 여자는 아닙니다.’라고 했던 그 말은,  내가 그녀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거기다 처음 본 날부터 내 뇌리에 들어 와 박힐 정도로 강하게 인상 지워진 그녀와, 생각지도 않은 첫 잠자리를  같이 한 후의 그 짧은 기간, 몇 번 되지도 않는 만남의 그 기간 동안에 마치 무슨 드라마 속의 사건처럼 얽혀든 그녀와의 인연이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예사의 것만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나는 그동안 민주가 내게 보인 여러 행동으로 보아 그녀도 나를 어느 정도 좋아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고 단지, 어떻게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내 뜻을 전하는

가가 문제일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애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들어 갈 금전적인 문제까지도 꼼꼼히 챙겨 보았다. 내가 아내 모르게 쓸 수 있는, 그리고 내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의 한도액까지도 말이다...


나는 그날 저녁 퇴근 후 그녀를 만나기로 작정을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