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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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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4/ 그녀가 다가오다 (1)


BY 盧哥而 2005-08-24

 

<모두에게 아름다웠던 그녀.......

  그러나 그녀는 내게 치명적인 독(毒)이었다>

 

 

 

그녀가 다가오다 (1)




그날 하루 종일 나는 멍한 상태로 사무실에서 자리를 뭉갰다.

의자에 파묻힌 채 달리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원래 하지 않던 해장술을, 그것도 소주를 한 병씩이나 마신 탓도 있었겠지만 그녀에 대한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던 때문이었다.


그날따라 아내에게서 전화가 없었다.

내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에는 항시 아침 여덟 시를 전후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대강의 내 상황을 파악하고 해장국 챙겨먹고 정신 차려 출근하라는 잔소리를 하던 아내가 무슨 일인지 오늘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여자들에겐 남편의 신상에 대한 어떤 직감이 있다더니 혹시 내가 다른 여자와 잔 것을 텔레파시 같은, 뭐 그런 비슷한 것을 통해 알았었던 것일까?

나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까지를 하며 이제나 저제나 아내의 전화가 올까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에게서는 퇴근시간이 다 될 때까지 아무런 전화가 없었다.


나는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내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당연히 자신의 매장에 있었다.

전화를 받는 아내에게서 전혀 다른 눈치를 챌 수 없었다.

그냥, 내가 먼저 전화 해주면 어디가 덧이 나냐고 핀잔 섞인 말을 몇 마디하고는 매장 일이 바쁜 지 이따 집에서 보자며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내 느낌으로 아내가 그날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은 매장에 관련된 일이거나 아니면 아이들에게 관련된 어떤 일로 좀 신경 쓰일 일이 아침부터 있지 않았었나 싶었다.

아내의 매장,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아내의 맏언니 그러니까 내겐 큰 처형과 동업으로 하는 베이커리 매장은 사실 내가 전화를 건 그 시간이 제일 바쁜 때였다.

아내와 그의 맏언니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매장은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제법 큰 마트의 안에 있어 대부분의 주부들이 마트에 장을 보러 나오는 오후 4시부터 6시 무렵까지가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솔직히 나는 일부러 그 시간을 택해 전화를 한 것이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할까? 나는 가능하면 통화를 길게 할 수 없는 그 시간대를 노린 것이었다.


아내는 나와 결혼 한 직후부터 근 십년 가까이를 아파트 단지 내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가계를 도왔다.

빠듯한 내 월급에서 시골에 있는 부모님의 생활비까지 일부 부담해야 하는 사정을 아는 아내는 이런저런 군소리 없이, 신접살림을 차린 지 3개월도 안돼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 곳곳에 그녀가 직접 쓴 광고지를 붙여 개인지도를 원하는 초등학생 몇과 중학생 몇을 찾아냈다.

전공은 실제 취업도 힘들고 사회에서 별 쓸모도 없는 문과계통이었으나 아마도 그녀의 출신대학이 그래도 명문 축에 속하는 덕을 단단히 본 셈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아내는 때로는 방문 개인 지도로, 때로는 직접 우리 아파트에서의 과외지도로 학생들을 가르쳐 모자란 생활비를 보충했고 얼마간 씩 저축을 하며 살림을 불려왔다.

그때 우리가 신접살림을 차렸던 13평 전세 아파트에서 조금씩 평수를 늘려가며, 전세에서 다시 내 집으로 바꾸어 지금 사는 40평형 아파트까지 꼭 일곱 번의 이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아내의 저축이 큰 몫을 했다.

아이를 둘이나 낳아서 기르면서도 아내는 참으로 잘도 억척을 부렸다.

두 아이 다 출산 전후 3개월 정도만 쉬고는 다시 학생들을 불러들여 과외지도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살림도 피고 이제 자신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 되어 슬슬 공부를 봐줘야 하는 시점에서 학생들 과외지도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자신의 아이들 공부 지도와 살림에만 매달린 지 또 십년...작년에 첫째인 아들 녀석이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무난히 입학했고 둘째인 지금 고3인 딸아이는 채근을 안 해도 제 공부 알아서 척척하고 성적도 상위권을 줄곧 지키고 있자 다시 부업에 매달린 것이었다.


아내가 베이커리 매장을 부업으로 택한 건 사실 그 맏언니에 대한 형제애의 발로도 한몫했다.

먹고 살만큼의 재산은 있으나 3년 전 교통사고로 갑자기 남편을 잃은 데다 하나있는 아들

녀석이 결혼을 하면서 매정하게 분가를 해버리자 그 허전함을 달래지 못해 무언가 할 일을 찾던 그녀가 덜컥 마트에서 분양하는 매장 자리를 맡아놓자, 평생 집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이 한두 푼의 투자도 아닌 2억 가까운 돈에다 전혀 경험도 없는 베이커리 매장이라는 데 불안을 느낀 아내가 자기가 절반을 투자하고 같이 운영을 하자며 덤벼든 것이었다.

내게는 이제 자기도 뭔가 해야지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아내의 심중엔 맏언니에 대한 걱정이 사실 더 앞섰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내 역시 베이커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 매장을 시작했지만 천성이 원래 무슨 일에나 억척을 부리는 데다 머리 회전이 빠른 그녀는 무리 없이 베이커리 매장을 운영했고 매장을 시작한지 1년여가 지난 지금은, 내게 그 깊은 내용은 말하지 않지만 내 짐작으로 무난히 월 6, 7백만 원 정도의 순이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맏언니와 각기 1억씩 투자하고 각기 월 3백만 원 이상씩의 수익을 나눠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퇴근을 해서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아내의 베이커리 매장이 있는 마트로 갔다.

역시 도둑이 제발 저려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사람 좋은 큰 처형은 언제나 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맞았고 아내 역시 ‘그놈의 술을 언제 쯤 끊을 런지 두고 볼 거다!’라는 상투적인 잔소리 몇 마디 했을 뿐 평상시와 다른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끔 매장에 들르면 언제나 그렇게 하듯 처형이 챙겨주는, 그날 만들어진 제일 맛있는 빵과 몇 가지 이름도 모르는 생과자들로 저녁을 때웠다.

아내가 따라 준 한 컵 가득한 우유와 함께...


그날 밤, 아내와 나는 오래간만에 섹스를 했다.

다른 날도 아닌 바로 그날 새벽에 다른 여자와 섹스를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한편으로 ‘내가 참 죽일 놈이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모처럼 내 품을 파고드는 아내의 뜨거운 몸을 나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내와의 섹스는 그날 새벽에 치뤘던 ‘칸타타’의 그녀와의 형편없었던 섹스 때와는 달리  긴 시간을 지속했고 아내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그런 섹스였다.

섹스가 만족했던지 뒤처리를 하고 돌아 온 아내는 내 품에 꼭 안겨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러나 편안히, 행복한 표정으로 잠든 아내의 어깨를 안은 채 나는 새벽의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지, 이러면 안 되지...내가 지금 뭐 하자는 거야?.......하는 죄의식에 머리를 흔들어 그녀의 생각을 떨쳐내려 했지만 내 뇌리의 어느 한 부분에 찐득하게 눌러 붙어있는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과 발그스럼하게 투명했던 입술... 그리고 묵직한 무게감을 주며 안겨오던 그녀의 알몸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내 모든 감각에서 살아 꿈틀거렸다.

나는 그날 밤 거의 잠들지 못하고 그렇게 그녀의 환영에 시달렸다.



사무실의 일들은 여전히 많았고 나는 계속해서 바빴다.

그 바쁜 틈틈이 그녀에 대한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내가 미쳤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녀에 대한 생각은 내 뇌리에서 틈을 비집고 계속 기어 나왔다.

아니, 차라리 그녀의 생각으로 가득 찬 속에서 틈틈이 일을 하는 게 아닌가싶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