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아름다웠던 그녀......
그러나 내게 그녀는 치명적인 독(毒)이었다>
1부- 그녀를 만나다 (1)
약간의 두통을 느끼며 잠이 깬 건 새벽 6시 반을 좀 넘어서였다.
어젯밤의 음주량이 상당했던 것에 비해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컨디션이었다.
머리가 아픈 것도 견딜만했고 속도 그런대로 냉수 몇 컵 들이키면 다스려질 것 같았다.
눈을 처음 떴을 때 느끼는 낯설음... 난 이미 그런 낯설음에 익숙해서인지 내가 지금 누워있는, 처음 온 것 같은 이 모텔 방 안 역시 그다지 거북하지 않았다.
결혼 초창기부터 술이 과하면 아무데나 쓰러져 자버리는 버릇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하여간 그렇게 20년 넘게 길들여진 아내는 어젯밤 내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가 나의 혀 꼬부라진 소리를 듣고는 어디서든 잘 자고 있겠지 하고 믿고 있을 것이다.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 억지로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횡설수설하다 집 방향하고는 전혀 엉뚱한 데 가서 내려 생고생을 한 경험도 몇 번씩 되는 지라, 아내는 내게 술이 많이 취하면 차라리 가까운 여관 같은 데 찾아들어가 자는 게 여러 사람 신경 쓰이게 하지 않는 일이라 했고 또 그렇게 믿었다.
사실, 내가 결혼 후 여자문제 같은 거로 아내에게 신경 쓰게 할만한 일도 한번 없었고....아내는 그 부분에서 만큼은 나를 전적으로 믿었다.
또 핸드폰이 생긴 뒤로 얼마나 편한가?... 수시로 전화를 해보면 내 위치와 나는 물론 내 주변의 상황까지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데...
아내는 아마, 내가 출근을 준비해야 되는 시간 쯤 그러니까 8시나 지나야 내게 전화를 다시 할 것이다. 어디쯤에서 잤으며 속은 괜찮고 출근은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뭐, 그렇게 묻고는 늘 그렇게 하듯 쯔쯧, 혀를 두어 번 차고 언제 철들 거냐며 잔소리 한 두 마디 더 보태고는 해장국이든 뭐든 아침 제대로 챙겨 먹고 출근하라고 말이다.
침대 시트를 걷어내고 일어나 냉장고로 갔다.
이 여자도 어젯밤 술을 꽤 마셨을 듯한데, 아니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취했었을 것 같은 데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있다는 게 조금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며 냉장고에서 생수 병을 찾아 뚜껑을 따고 몇 모금 마시는데 욕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돌아봤다.
그녀가 알몸으로 나오다 냉장고 앞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 주춤하더니 황급히 머리칼의 물을 닦아내던 수건을 내려 아랫도리를 가렸다.
목욕수건이 아닌 작은 세수수건인지라 그녀는 그 수건으로 간신히 아랫도리만 가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젖가슴을 가렸다.
그녀는 그러고도 모자란 지 엉덩이까지 뒤로 쭉 뺀 어정쩡한 자세로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아마도 내가 아직 침대에 잠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후다닥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가 침대 시트를 당겨 젖가슴 아래를 덮고 앉는 게 냉장고 옆에 걸린 거울을 통해 보였다.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의 그런 행동이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아서...
술장사를 하는 서른 중반이 넘는 여자가, 남자와 이런 일이 한두 번, 아니 수십 수백 번도 더 되었음직한 여자가 이게 무슨 내외람...하는 생각에 말이다.
내가 생수 병 하나를 다 비우고 돌아서자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비벼 말리던 그녀가 말했다.
'칫솔에 치약 짜 두었어요. 샤워하세요.'
그러니까 지금 자기 옆으로 오지 말고 바로 욕실로 들어가란 뜻인 것 같다.
나는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안이 깨끗했다.
그녀가 자신이 샤워를 한 흔적을 최대한 지운 것이었다.
타일 바닥에만 물이 조금 젖어있을 뿐 그녀는 욕조와 세면대 그리고 거울은 물론 사방 벽의 타일까지 말끔히 물기를 닦아 낸 것 같았다.
어, 이 여자 봐라?
나는 좀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담...?!
그렇게 많은 경험은 아니지만 혹간, 정말 1년에 한 번 쯤이나 될까... 접대 술을 하다보면 룸살롱이나 뭐 그런 여자들이 있는 술집까지 가게 되고 거기서 어찌어찌 하다보면 나 혼자만 빠져 나오는 게 어색해 각자의 파트너였던 아가씨들을 데리고 단체로 모텔까지 가게 되는 수가 있는데...(솔직히 아내는 내가 이런 거 전혀 모른다) 그런 경우, 그 아가씨들한테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매너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여자들보다는 나이가 들어도 한참 더 들어 그런 매너쯤은 이제 무시할 수 있는 연륜 일 텐데 말이다.
솔직히, 집에서 아내조차도 그렇게 깔끔하게 뒤에 들어오는 나를 위해 욕실을 치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대강 자기가 쓰던 수건이나 욕조, 세면대 등의 비누찌꺼기들 정도는 치웠지만...
이 여자, 무슨 결벽증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첫인상에서 느껴졌던 것처럼 이 여자는 어쩜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술장사라는 걸 처음 해보는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두서없이 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깨끗이 치워진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거기다 세면대 선반 위에 정갈하게 접어 둔 수건과 그 위에 얌전히 얹어 둔 치약까지 짜둔 칫솔이라니...!
나는 기분 좋게 양치질과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머리를 비벼 말린 그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묶고 침대 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여전히 침대 시트를 가슴 위까지 끌어 올려 덮고 있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