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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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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사랑했을까?


BY 가우디 2005-08-10

 

장례식장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버스타고 지나며 멀리서만 보아왔던 곳.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여기던 죽음이 너무 가까이 느껴져서 잠시 아득해졌다. 누군가 장례식장이라 쓰여진 입간판 앞에서 갑자기 길을 잃은 듯 머뭇거리는 내 어깨를 가만히 잡았다.

"안녕하세요는 하지마라!"

그 였다.

"이런 곳 처음이지?"

"어? 안녕하세요?"

나는 당황했고, 그는 빙긋 웃었다.

"그 말만 안하면 돼. 여기선 아무도 안녕 안하니까. 자, 들어가자"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의 듬직한 등을 따라갔다.

하얀색 국화로 단조롭게 만들어진 화환들과 검은 리본을 보며, 친구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하나 곤혹스러워졌다.

"은아왔네?"

입안에 든 음식을 오물거리며 한 선배가  말했다.

동시에 그 옆테이블이 어수선해짐을 느꼈다. 삼베로 만든 상복의 가슴께를 주섬주섬 수습하며 일어서는 50대 여인이 내눈에 들어왔다. 표정없는 얼굴로 입안에 든 음식물들을 부지런히 씹어삼키며 일어선 그녀는 나를 쳐다봤다.

"진숙이 친구니?....고맙다 와줘서"

"예에...."

표정없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하마터면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뻔 했다.

진숙의 어머니는 빠른 걸음으로 분향소가 차려진 곳으로 갔고,  그가 내 등을 살짝 밀었다.

"가자, 인사드려야지."

그가 앞장섰다.

"진숙아! 진숙이 들어오라 그래."

진숙의 어머니가 딱히 누구에게랄 것 없이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어느새 진숙이 분향소에 들어서고 있었다.

"은아왔네...."

아직도 할 말을 못찾은 나는 말없이 슬픈표정만 지었다.

"난 괜찮아...."

진숙이 다가와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그 때, 진숙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알았다. 치약냄새였다. 장례식과 치약냄새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적어도, 당시의 나는 그랬다. 장례식장에서 사람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도 안되었고, 죽음과 치약냄새는 절대 공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와 나는 나란히 서서 고인에게 절을 했다.

"점심은 먹었어? 우린 다 먹었으니까 학생도 얼른 먹어. 지방에서 왔으면 시장하겠네"

 분향소를 나온 진숙의 어머니가 말했다.

"아뇨. 됐습니다"

난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식탁이 차려진 곳에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그의 시선을 느꼈다.

그를 쳐다봤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와 나란히 서서 고인에게 절을 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내 몸 속의 모든 열선이 얼굴로 집중됨을 느꼈다.

머리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두 귀를 윙하고 울리며 아득해져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일어나"

그가 말했다.

 "일어나서 오시는 손님들 음식 좀 가져다 드려. 여기 식탁도 치우고"

 그는 여전히 내 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러나 문상객이 거의 없는 장례식이었다. 나는 오후내내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밤이 되자 두 세명의 여자들이 문상을 왔다.

분향소에서 짧은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후, 치마를 탁탁털거나 웃옷을 매만지며 분향소를 나온 그녀들 앞에 술과 안주를 놓아주었다.

"그년도 같이 죽었다지? 천벌을 받은게야"

"두 년놈이 그러고 다녔는데 당연하지"

여자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진숙이 엄마한텐 잘 된 일인지도 몰러"

여자들은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

"보험금이 얼만데?.....팔자 풀렸지 머....."

그녀들은 뭔가 재미있는 일을 모의하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

"김은아!"

그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했다.

"한 대 피울래?"

라이터를 켜던 그가 나에게 물었다.

"안피워요"

그는 혼자 담배를 피워 물었다.

"놀랐지? 진숙이 아버님...사고날 때 다른여자분이랑 함께 있었나봐. 그분도 돌아가셨어. 그래서 진숙이가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선배랑 동기 몇만 데리고 온다고 내가 우긴거야 "

"......"

"사고나던 날, 진숙이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 갔었거든. 진숙이가 사고 연락받고 어쩔줄 몰라하길래 내가 병원까지 데려왔어."

"많이 놀랐겠어요..."

"그래...많이 놀라긴 한 것 같은데, 슬퍼 보이진 않았어."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잠시, 진숙에게서 맡았던 치약냄새를 떠올렸다.

그와 나는 어둠속에 말없이 서 있었다.

"죽도록 사랑했을까?....."

그가 담배연기와 함께 내뱉듯 말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 묻고 싶다.

죽도록 사랑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