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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날들의 시작


BY 애니 2005-07-25

-그리운 날들의 시작


그 친구에게 내말 전해주게
나 항상 그를 생각 하므로서
내 맘의 평화 다 잃어 버린 것을
아무리 나는 애쓰나 말할 수 없도다
내 맘에 맺힌 이 말을 전해 주게
내 맘에 숨은 사랑 그에게 알리는 것
큰 애정 속에 내 마음 사로 잡혀
아무리 홀로 애쓰나 내 수고 헛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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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가 거실에 틀어 놓은 CD에서는 잘 다듬어진 목소리의 테너가 부르는 애절한 느낌의 이태리 가곡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R. Falvo 작곡의 ‘그대에게 내 말 전해 주게’ 였다.? 혼자 있는 아침 나절이면 그녀는 늘 습관 처럼 음악을 틀어 놓곤 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때로는 가슴 벅차도록 웅장하고 멋진 음악을 들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그 음악에 전율하고 있었다.?
7학년에 다니는 딸애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이렇게 혼자 맞는 아침 시간을 그녀는 즐겼다.? 작년 겨울 남편 정훈과 딸애 정아와 함께 미국에 오기 전 까지 서울에서는 참으로 갖기 어려운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10년 가까이 근무하던 외국계 항공사에 매일 아침이면 출근해야 했고 한 가정의 주부로서 돌보아야 하는 살림에다 노환으로 자주 입원하시던 시어머니의 병 수발 또한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니었기에.?
정훈은 행정고시를 한 공무원으로 버클리대 부설 연구소에 1년 기한으로 연수 나왔다가 지난 1월에 서울로 먼저 귀국했었다.? 정아가 외국 생활도 좀 더 경험할 겸 당신도 이 기회에 쉬면서 영어를 공부해 보라며 은하와 딸 아이를 남겨 놓고.?

나 항상 그댈 생각 하므로서
나 항상 그댈 생각 하므로서…

은하는 마음 속으로 가사를 천천히 되뇌어 보았다.

어제 저녁 야경이 아름답던 그의 집에서 커피를 타 주며 은하를 향해 “허허허” 웃던 태식의 모습이 떠올랐다.? 둘은 그 날 낮 바다를 낀 골프장 프로 샵에서 우연히 마주치자 서로가 동시에 “혼자 오셨어요?” 했었다.? 일시에 같은 말을 한 것이 쑥스러워 은하와 태식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다 함께 조인해 라운딩 했었고.? 바다에 면한 그 골프장은 샌프란시스코 국제 공항에 이착륙 하는 비행기들이 낮게 떠 비행하는 곳이었다.?
“전 아직 초보 골퍼인데… 민폐나 끼치지 않을지 걱정되네요. 어쩌죠?” 은하의 이 말에 그는 별 말 없이 그냥 작은 미소만 지어 보였었다.? 버클리 언덕에 있는 골프 연습장의 그룹 레슨에서 그를 네 번쯤 본 것이 다였지만 웬지 편안해 보이는 그를 따라 나간 필드에서 시원하고 멋진 샷을 날리던 그...
거실 한 켠의 작은 책상 위에 올려 놓은, 그에게서 빌려온 책이 어제의 일을 말해 주는 듯 은하의 눈에 들어 왔다.? ?
‘골프 길라잡이’?

커피 한 잔을 들고 자신도 모르게 태식을 생각하고 있던 은하는 들고 있던 분홍색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신 뒤 마음 속으로 “곧 성악 레슨 갈 시간이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벽 쪽의 키보드로 갔다.? 겉장에 독일의 유명한 성곽 사진을 내 놓은 세계 명가곡집을 익숙하게 편 그녀는 먼저 키보드 위에 얹어 놓았던 검은색 헤어 타이 고무줄로 어깨 길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는? 마음을 가다듬어 노래 부르기 연습을 시작했다.

라샤 끼오삐안가
라 두라 쏘르떼
에께 소오오 스피리
라리이이 베르타

에께소 스피이리
에께소 스피이리
라리이이 베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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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헨델의 ‘울게 하소서’

너무 이른 시간이라 성대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는지 윤기 없고 매마른 소리를 내고 있었다.? 몇 번의 발성 연습으로 소리가 지나가는 통로를 틔은 후 은하는 노래를 계속했다.? 그녀의 보이스 레슨 개인 교수인 대학 동창이자 고교 동창인 혜리는 은하에게 성량은 풍부하지 않지만 맑고 고운 음색을 가졌다고 말해 주었었다.?

“열심히 연습해봐, 정 은하.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올거야.
그 땐 곱고 아름답게 노래 불러야 해.”

그녀는 이렇게 혼잣말을 한 뒤 긴 드레스를 입고 작은 무대에 선 자신의 모습을 마음 속으로 상상해 보며 노래 부르곤 했다.


라샤 끼오삐안가
라 두라 쏘르떼
? ? ? ? .
? ? ? ? .
? ? ? ? .

“오늘 까지는 가사를 다 외워 오라고 혜리가 말했었는데…”
은하는 노래 하면서 뮤직 스탠드 위에 펴 둔 악보에서 가끔씩 눈을 떼며 가사를 암송해 보려 노력했다.


에께소 스피이리
에께소 스피이리
라리이이 베르타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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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맑은 아침 햇살이 길고 넓은 거실 창으로 따스하게 스며 들어 와 노래하고 있는 은하를 감싸 주고 있었다.? 베이(만)에 면한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를 포함한 베이 지역은 아침 나절이면 뿌옇게 흐려 보이는 날이 많았지만.?
한 동안 노래에 열중하던 그녀는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올 딸 아이 정아를 위해 아이의 방을 깨끗이 정돈해 놓고 주방에는? 정아가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해 놓은 후 곧 레슨 받으러 갈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