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08

퇴원 후 일지 14


BY 47521 2005-09-14

2005.1.x일. pm10;10 모니터 활동

2003년 우연히 문예진흥원 문학 파트 모니터 활동을 하면서 나는 각 기업체나 정부 산하 기관등에 모니터가 되었다. 결혼 하고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 놓고 나서 신문사,방송국등에 모니터를 한 적이 있었다.그 당시 보다 요즈음은 인터넷의 발달로 주부모니터 홈페이지에 들어 가면 얼마든지  모니터 정보를 얻을 수 있다.대부분 30대 주부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4,50대 주부보다 구매력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세일즈 목적으로 모집하는 모니터는 피해가면서 일을 했다. 서울 중앙법원,행정법원,공정거래위원회,환경청등 정부 산하기관은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모니터를 할 수 있고 활동비도 기업체들 보다 후했다.각 기업체가 모니터를 기마다 열심히 뽑는 것은 물건 구매 연결도 있지만 아줌마들의 입소문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기업체에서 50대도 모니터로 받아 주는 경우가 있어 나는 2003년도 부터 약 15곳 이상의 모니터 일을 지금껏 하고 있다.

물론 막일 아르바이트는 집어 치웠다.아들이 대학 입학을 하자 나는 그 때 까지 해 오던 막일이 벼란간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실상 막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가 있을 정도가 된 탓도 있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말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큰 딸이 영어학원 강사이고 작은 딸이 병원 레지던트라 그 아이들이 주는 생활비로 얼마든지 살림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 막내 아들도 사회체육과 전공이라 군대 가기 전에는 헬스 강사로 학비를 벌어서 다녔다.

캐나다에서 남편이 군에 간 아들 면회하러 잠시 나왔다. 먼저 아들과 하룻밤 외박을 하고 나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한국 보다 캐나다에서 사는 것이 마음이 편했는지 얼굴 표정도 몹시 밝아졌다. 우리는 그가 캐나다 가기 전에 이별주를 했던 생맥주집에서 만났다.

- 당신 애인 만들고 싶으면 만들어도 좋아요. 나는 캐나다에 애인이 있소.

-방귀 낀 놈이 성낸다더니 누구 때문에 우리가 위장 이혼을 했는데 이제 와서 나를 배신 할려고 그래요.

나는 예전 처럼 그의 앞에서 목놓아 울고 말았다. 부부생활에서 여성에게 가장 큰 배신은 남편의 외도다.

-아니 울지 말아요. 당신 마음 떠볼려고 내가  농담으로 한 소리요.

이제 와서 그와 다시 합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나는 이미 독신의 단맛을 한껏 누리고 있기에 어느 남자와도 살고 싶은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다. 내가 갖고 있기에는 버거운 물건이고 남 주기에는 아까운 물건 같은 존재가  바로 남편 이라고 할까.나는 기세가 등등해져서 그에게 말했다.

-당신! 양다리 걸칠 생각 말아요.캐나다에 애인,한국에 부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뒤집어 버릴 테니까요.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한 번 생각해 봐요. 세아이 데리고 이혼녀가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어려운지를. 가뜩이나 양다리 걸치는 사람들이 많은 이 나라에서.

그러나 나도 애인이 갖고 싶다.나는 그의 앞에서 다시 닥터K가 그리워졌다. 그는 언제 내게 오는가?나는 그를 만나더라도 나타낼 수 없는 절제된 가슴속의 애정표현 때문에 괴로워 할 줄 알면서도  닥터K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