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xx일.제빵 제과 훈련
2000년도에 약 한 달 은행 구내 식당에서 정규직으로 일한 보람이 있어 노동부에서 실시하는 실직자를 위한 제빵 제과 훈련을 받게 됐다. 실직 하기 전, 고용보험 가입자만 훈련 대상자였고 훈련을 받으면 6개월 동안 고용 보험료를 받을 수가 있었다. 나 처럼 한 달 근무한 사람은 훈련은 받을 수 있어도 고용 보험료를 받을 수는 없었다. 1999년 독서 지도사,2001년 폐백 이바지 훈련은 실직 여성 가장들이 대부분인 반면에 제빵 제과 훈련은 실직자 대상이라 분위기가 밝았다. 훈련도 여성 인력 센터에서 하는 게 아니라 조리 시설이 잘 갖추어진 학원에서 열심히 빵을 구워 냈다. 어느 요리 학원이던지 실습이 끝나면 시식을 하는데 빵과 과자의 경우는 고열량 식품이라 5개월 실습이 끝나면 전원 5kg이상은 살이 쪄서 나간다고 한다. 교통비로 10만원을 매달 통장에 넣어 주고 재료비도 일체 노동부에서 대어 주었다. 그러나 이 훈련도 취업과 직접 연결 되지는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느 곳이나 훈련생으로 또 자격증을 딴 사람으로 넘쳐 난다.
거리의 나무들이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어갈 즈음 남편은 캐나다로 갔다. 지구 상에서 이 곳과 정반대인 곳에 교통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시동생이 신경정신과 의사를 하고 있다. 다행히 수술을 집도 하는 의사가 아니고 환자와 인터뷰만 하는 신경정신과라 불행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남편은 시동생 병원의 사무장으로 취업비자로 떠났다. 그를 위해서는 그 길이 최선책이다. 서울에 있어 봤자 나와 자식들이 받아 주지 않으니까 서울역 노숙자 신세로 전락 하는 길 밖에 없다. 떠나기 전, 생맥주 집에서 이별의 잔을 나누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 했던가.나는 그의 앞에서 통곡하고 말았다.
-당신한테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소. 특히 아들 대학 진학을 위해서 부잣집 딸인 당신이 막일도 마다 하지 않고 뛰어든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오.내가 취업 비자로 가게 되면 2년 있다가 영주권이 나오고 10년 지나서는 연금을 받게 되오. 그 때는 우리 호적을 합쳐서 당신도 연금을 탈 수있도록 노력해 보겠소.
열 효자 보다 악처가 낫고, 늙으면 부부 밖에 없다는 말은 진실이다.
-영아 아빠! 나는 캐나다에 가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이나 몸조심 해요. 그리고 두 딸들이 당신을 많이 원망하는거 너무 섭섭히 생각 하지 말아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래요. 나도 50이 되니까 부모 마음을 정말 이해하겠더라고요.
우리 부부는 그가 캐나다 떠나기 전 날, 마지막 부부관계를 가졌다. 27년 동안의 부부 관계중 처음 부터 마지막 까지 황홀한 완벽한 섹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