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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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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일지10


BY 47521 2005-08-27

1996.12월x일.하루 종일 진눈깨비 내린 날.

옆방 507호실의 E의 신랑이 갖다 준 소설(뺑키통)을 읽었다. 감방 좌수들의 생활을 그린 책인데 병동과 마찬가지로 좁은 방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다 보니 짜증이 날 때도 많고 갇혀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의해 내면적으로 항시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가운데 단체생활을 하는 까닭에 뻑하면 싸우는 특성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D는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것을 보고 이제부터 나를 (뺑기통 아줌마)라고 불러야겠다며 웃었다. 뺑키통은 감방의 변기통을 일컫는 말이다.

E는 나보다 한 살 아래로 43인데 정신병 환자의 특징인 게으름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이 병원에서 통털어 가장 게으른 환자다. 그녀는 새벽 6시 30분 점호를 마치면 아침도 거르고 잠만 자다가 점심시간인 11시 10분에야 억지로 일어나 식당으로 나왔다. 항상 눈꼽이 끼어 있었고 숱도 없는 머리는 부시시한 채 고무줄에 묶여 있었다. 그녀는전체 목욕날인 화요일에만  미리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간식시간 1시간 전에 공중목욕탕에 들어 가기가 싫어서 오후 1시에 머리를 감아  물기젖은 그녀의 머리를 보고 간호조무사가  미리 목욕한 것으로 속아 넘어 가곤 했다. 78년에 0명이던 콜라 판매가 93년도에 1억병이 됐다는 중국처럼 그녀는 콜라 중독자였다.가뜩이나 게을러서 양치질도 안하니까  앞이빨 4개,아랫이빨 4개만 남아 있어 할머니 같은 모습이었다.

-언니, 카바레 가 봤어. 나는 신랑이 나가면 한 잠 늘어지게 자고 나서 빨간 스카프를 머리에 동여 매고 목동에서 버스를 타고 신촌 카바레로 나가. 그냥 혼자  커피를 시키고 앉아서 음악 듣고 춤을 신청하면 추고 그래. 저녁 시간 되면 시장 봐서 집에 들어와. 제비족 등쌀에 집에 못들어 간적도 두어번 있어. 한번은 대천 해수욕장까지 갔었는데 그 사람 이랑의   섹스는 찰떡궁합이었어. 새벽에 집에 들어 가도 신랑이랑 애들이 암말도 안하던걸.

그러나 그 길로 E는  이 곳 입원실이 만원이라 대전 신생병원에 강제 입원 당했다. 춘천 국립병원에도. 이 병원은 언제나 만원이라 대기해야 하므로 근처 개인 병원에서 두 달 동안 입원 하면서 E는 죽과 빵만 먹었다고 했다. 이빨이 그 모양이니. 온 몸에 기운이 빠진 E는 잠으로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동물 보다 못한 삶이다고 나는 E를 보면 연민의 정에 빠지곤 한다.

A와C는 쇼핑빽 만드는 작업을 하기 위해 거실에 나갔고, B는 주치의가 약을 줄여 달라면 늘려 주고 늘려 달라고 하면 줄여 준다면서도 약기운을 못이기는지 입가에 침을 흘리면서 달게 자고 있기에 병실은 조용해 책읽기에 안성맞춤인 날이다.게다가 밖에는 철창 창문 너머 진눈깨비까지 흩뿌리고 있었다.

벼란간 간호사실 쪽에서  아우성소리가 났다.나랑 D가 뛰쳐 나가보니 D의 엄마와 주치의간에 싸움(?)이었다.

-어제 선생님이 집에 전화해서 퇴원 준비 하라고 하셨는데 만기퇴원 7개월 아니면 절대 안됩니다.제 딸의 병명을 잘 아시면서. 그 아이는 울적하면 병이 도진다고요.

-D어머님,제발 목소리 좀 낮추세요. 환자들 한테는 절대 안정이 필요한데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곤란합니다.

결국 D는 만기 동안 보름은 집에서 보름은 병원에 있는 걸로 낙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