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 어느것하나도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엉망일것이다. 혜원은 어지러진 집안을 둘러보다 샤워를 하고 평소보다 진한 화장을 했다. 거울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은 왠지 낯설고 어색해보이기까지 했다. 옷장속에 걸려진 붉은 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에 떠밀려 치마보다는 바지를 입는 것이 어느덧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져서 그녀가 언제 원피스를 입었었던지 기억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어질러진 집안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딱히 갈 곳을 정해둔 것도 아니지만 처음 오는 좌석버스를 탔다. 좌석에 앉아서 버스에 걸려있는 행선지를 보았다. 여의도... 처음듣는 이름도 아니지만 생전처음 보는 곳을 간다는 두려움이 스쳐갔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여의도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어디로 가지?'
그녀는 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윤중로를 걸었다. 사람이 없어서 썰렁하기까지 느껴지는 윤중로 거리를 걷다가 여의도공원을 갔다. 혜원은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에 처녀때로 돌아간 설레임마저 느꼈다. 붉게 물든 잎사귀를 늘어뜨린 나무옆 벤치에 멍하니 앞만 응시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 저 남자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실직?'
어느 영화에서 본듯한 얼굴이었다. 어느 영화였는지 떠올리려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남자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방울을 본것이다.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그녀 마음에 다가왔다.
" 잠깐만 같이 있어주실래요?" 그의 첫마디에 혜원은 가슴이 설레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