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 째깍..
소민의 손목시계가 쉬는시간이 거의다 끝나감을 경고라도하듯 쉬지않고 내달린다.
읽고있던 'TV가이드' 잡지를 접고 하늘을 한번 보려고 하는순간...
"교무실이 어디지?"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민은 당황하고 놀란다.
햇빛받아 반짝이는 남자의 머리카락이 소민의 정신까지 혼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길로 쭉..가다..음 수돗가에서 왼쪽으로 가시면 건물이 하나 보일텐데..
그 건물 2층이요.."
'고맙다' 남자는 짧은 인사를 하고 잰걸음으로 걸어간다.
'딩동댕..~' 수업종이 울리고 소민은 교실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너무나 푸른 10월의 가을오후였다.
교무실은 한산했다. 막 오후수업이 시작한 터라, 수업이 없는 선생님 몇분이 자리를 지킬뿐..조용하고 따사로운 교무실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저기 정태훈 선생님..맞지요?" 까만 뿔테안경에 새치가 듬성등성한 웬 남자가 태훈에게 말을 걸어온다.
"네 제가 정태훈입니다. 안녕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던 참인데.. 교무주임 송영걸 올시다.."
이거 뭐, 원체 시골학교라 선생님 구하기가 워낙 어려워요. 뭐, 서울보다야 시설이고
교육환경이고 많이 떨어질진 몰라도, 이곳 애들이나 학부형들 마음좋은거 하나는 알아줘야
해요. 사람들이 참 좋아요.공기도 좋고~한번 잘 해봅시다, 정선생"
까탈스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소탈해보이는 성격에서 태훈은 잠시 긴장을 푼다.
"저 출근은 내일부터 하시고, 정식으로 인사도 내일 시켜드릴께..
2학년 국어니까.뭐, 참 그리고, 애들이 지금 국어수업이 많이 처져있어요. 1학년 선생님이
보강은 해주었는데..아무튼 몇일은 좀 바쁘게 돌아가 봅시다.."
몇가지 당부를 더 듣고, 정식으로 진보여고의 교사가 되는순간 태훈은 너무 떨리고 기뻤지만, 교무주임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교무실을 나와, 파란하늘이 너무 예쁜 여학교의 교문을 나서면서,태훈은 생각했다
"이곳에서 당신을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햇살이 너무 따가와서 태훈은 손가락을 펴
하늘에 갖다 대 본다.
결혼반지가 빠진 그의 손가락이 한없이 크게만 보이는 오후였다.
소민은 방과후 단짝친구 경숙과 떡뽁이를 먹으면서, 오후에 봤던 태훈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길 하지 않았다.
정말 멋진 남자를 봤는데, 우리 학교 선생님으로 오신거 같다는둥, 아님 지난달 결혼했다
던 서무과 최주임님의 남편이 아닐까 라는둥, 교장선생님 심부름을 온 친척이 아닐까 라는둥..
머릿속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지만, 무척이나 궁금해서 경숙과 머리를 짜내고 싶었지만.
소민은 끝까지 침묵한다. 웬지 태훈을 또 만날것 같은 예감이 그녀를 휘감고 있었으니까.
떡뽁이를 먹다 흘려 교복치마에 얼룩이 졌는데도, 닦아내질 않고 그냥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소소한 일도 할수 없는 설레는 밤이 지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 국어를 맡게된 정태훈입니다."
2학년이래봐야 고작 4개반밖에 없는 조그만 시골여고..그 작은 여고 2학년 3반 교실에서
태훈과 소민이 만나게된다.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태훈의 인사가 끝나자 교실은 술렁이고 서울학생들처럼 당돌함은 없지만 순박한 시골여학생들의 힘찬 함성이 터진다.
그속에서 소민도 환하게 웃고있다. 순간 태훈과 흠칫 눈이 마주치고. 소민은 고개를 살포시 떨궈낸다.
태훈은 하얀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벗꽃내가 바람을 타고 교실로 흘러들어왔다.
이 완벽한 상황에선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앞으로 소민에게 일어날 일들과..
태훈이 감당해야 할 일들에 관해서..
"자 오늘이 15일이니까, 15번이 한번 읽어볼까?"
소민이 흠칫 놀라고 주섬주섬 책을 집어 일어난다.
쌍꺼풀이 짖고 까만 생머리에 쫑쫑 땋아 양갈래로 묶은 모습이 마치 풋사과 같다.
소민이 살짝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 그 순간..
태훈은 쓰러질듯 놀라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