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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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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딸이었다.


BY 그린미 2004-10-15

 

큰시누이에게서 돈이 왔다.

그리고 적금도 찾았다...........400만원....그리고 약간의 이자...

이 돈이면 시어머니에게 당분간은 주걱질 당하지 않을것이고 여우에게 사사건건 테클 걸리지 않을 것 같다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애꿎은 담배만 죽이고 있었다.

엄마의 뜻 선뜻 받아 줄려니까 그동안 변변찮은 월급으로 살림 꾸려 나가느라고 허리 휜 마누라에게 면목도 없고, 더 중요한 건 400만원이라는 거금을 묶어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쩐다??

무촌끼리 살 맞대고 산게 15년인데 이럴 땐 아직도 '남남'으로 각자의 잇속 따지고 있었다.

이 거금을 나혼자 주무르기엔 손바닥이 작았다.

그렇다고 털어놓고 상의 하기엔 뭔가 여운이 남아서 혼자 끙끙 앓기만 하고 있던 차에 올케의 전화를 받았다.

"고모...아유...오랜만이네...왜 그렇게 소식이 없어?"

전화기 들자마자 호들갑 떠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오빠에게 옆구리를 찔린것 같았다.

"으.........응..그러네.......별일 없지?"

입속에 사탕 문 어투로 떨떠름하게 대꾸하자 뭔가 짚히는 게 있는지 금방 목소리가 달라졌다.

"낼 모레 어머님 생신인데.....올거지?"

"가야지."

"그럼, 올해는 우리집에서 할테니까 고모부 모시고 애들 데리고 꼭 와~~"

왠일이야?.....집 더럽히고 귀찮다고 항상 엄마의 집에서 기름냄새 풍기더니...

새삼스럽게 몇번이고 오뉴월 수양버들 허리같이 야들야들하게 당부를 하고 다짐을 받더니 전화를 끊는다.

나이를 먹더니 - 45살 -이젠 인간구실을 할려나.......

 

의료기 상사에서 12만원을 주고  좌변기를 하나 샀을때 남편은 유쾌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속으로는 괘씸했을거다

지네 엄마 화장실 얘기엔 입 다물고 있더니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우리 엄마에게 줄 좌변기를 떡 하니 샀으니...

좌변기로 해결 할 문제 같았으면 열개도 더 샀을거다.

 

처가 갈때면 꼭 한번쯤 티를 내는게 있다.

'작년에도 가고, 명절날에도 가는데........'

말하자면 처가에 자주 들락 거릴 필요가 머 있냐 하는식이다.

'柳서방은 사흘이 멀다하고 처가 오는데.........이제부턴 오지 마라고 그래요 , 그럼.....'

여자는 친정 얘기에 조금이라도 흠집 낼 얘기 들으면 누구나 입에 칼을 물고 덤비게 되어 있다.

내 얘기에 틀린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입을 다문다.

 

내 입은 가죽이 모자라서 찢어 놓은 줄 아나.....

우리 엄마 한테  해 준게 머 있다고 일년에 두어 번 가는걸 가지고 생색이야.....

난 지들 엄마한테 문턱이 닳도록 바리바리 사가지고 가는데........

 

쇠고기 두어근 사고 엄마의 속옷 한벌 사서 친정갈 준비를 다하고 나니까 아침일찍 시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사돈 생신이 오늘이제?"

세상에.... 이 날짜를 어떻게 귀신같이 꿰고 있는지 가슴이 덜컥 소리를 내면서 내려 앉았다.

무슨 큰죄를 지은것 같이.

"예...그래서 지금 갈려고요.........."

반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마지못해서 대답을 했다.

"그래 가거든 잘해 드려라.....노인들은 젊은기 암만 잘해줘도 섭섭한게 많은기다"

같이 늙어가면서 어떤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지 평소의 시어머니와는 사뭇 달랐다.

나 들어라고 하는 말 같아서 듣기가 저으기 민망했지만 이때 만큼은 고분고분하게 머리 조아리며 하해와 같은 은총으로 받아 들였다.

알고 보니 뒷집 영감 기일하고 같은 날이라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주섬주섬 친정 보따리를 챙겨가지고 막 현관문을 나서는데 여우가 썩 들어섰다.

나는 또 한번 심장이  번개 맞은 듯이 오그라 들었다.

여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보따리에 꽂혔고 그 시선따라 난 변명을 해야 했다.

"으~~~응...엄마가 다리 아프다고 하셔서....."

이렇게까지 내가 여우에게 왜 비겁을 떨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차 빵구 나겠네......작작 가지고 가지......"

씨름판의 호미걸이로 한번씩은 꼭 걸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여우의 못된 성깔에 일일이 혈압 높히기도 지쳤지만 번번이 피뢰침 들이댈 수도 없었다.

"이거........."

여우는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게........뭔데?......"

이렇게 묻는 내입은 자신감을 잃었다

"엄마가 전화했어....새언니 친정 가는데 쇠고기 사 주라고......."

난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다.

아뭇소리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는 내 눈속에 여우의 모습이 잡혀왔다.

여우는 그냥 웃고 있는것 같았는데 전에 없이 비웃음은 아닌것 같았다.

갑자기 하늘과 땅이 곤두박질 치는것 같았다.

사람이 안 하던짓 하면 오래 못 산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생뚱맞은 대접인지 헷갈리고 혼란스러웠다. 

내가 던진 미끼를  아직도 물고 있는건지 아니면 母女가 한꺼번에 철이 들었는지

따져서 깊이를 잴 필요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가늠을 할려고 머리를 굴렸다.

왠지 콧등이 시큰거렸다. 

여우는 우리차가 떠나는 걸 보고 제법 손까지 흔들어 주는 아량을 보였다.

순간적인 생각이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가시같이 군게 괜히 맘에 걸렸다.

두얼굴 같은 여우지만  보이는대로 봐 주는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나의 변덕이 제법 성인군자 티를  내고 있었다.  

 

밍기적 거리는 남편 앞세워서 한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오빠집에 갔을때 아직 엄마는 오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오실려니까 좀 늦으시는것 같다는 올케의 말에 왈칵 홧증이 솟았다.

작년에 새로 뽑은 중형차는 주차장에 그대로 엎어놓고 노인네가 버스 타고 오시길 기다렸다?

현관문 밀고 들어서면서 잡치기 시작한 기분은 엄마가 도착 할 때까지 누그러지지 않았다.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서 30분 걸릴 거리를 한시간 이상 길바닥에 깔고 들어선 엄마를 보니 왈칵 눈물 부터 쏟아졌다.

"엄마,.. 왜 버스를 타고와?"

멀쩍이 서 있는 오빠내외 들으라고 난 일부러 톤을 높혔다.

"에구..그럼 우야노?......택시는 늙은이라고 바가지를 씌워서 무서버 못타는데.......무슨 눔의 버스가 시간도 안지키고...아이고 다리야...."

들고 온 보따리를 슬그머니 주방에 들이밀고 나온 엄마는 곧바로 거실 바닥에 무너지듯 엉덩이를 패대기 쳤다.

"아들차는 놔 뒀다 머하는데?.....삶아 먹을거야?"

난 본격적으로 직격탄을 던졌다.

 

그러나,

나의 가시돋힌 말을 귓등으로나마 들은둥 마는둥 절룩거리면서 아침 한끼 얻어 먹겠다고 아들네 집에 온 엄마를 오빠내외는 무덤덤하게 대하는게 눈에 보였다.

"어매...좀 일찍 나서지....."

타박인지 나무람인지 앉아서 다리 주물고 있는  엄마에게 던지는 오빠의 말에 기어이 난 한마디 뱉았다.

"그런말 하지 말고 아침에 좀 모셔오지.....버스가 많이 다니는 곳도 아닌데....."

심상찮은 내 송곳 같은 핀잔에 엄마는 손 사레를 치며 기겁을 했다.

"야야.. 차는 무신...차는 머 물로 다니냐?...기름을 아껴야제......."

엄마는 아직도 아들편에 서서 당신 때문에 힐난 당하는 아들을 싸고 돌았다.

땡감먹은 표정으로 힐끗 쳐다보는 오빠의 시선 묵살하고 내 더듬이는 이때부터 집안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집 여우가 우리 집 훑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