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설친 잠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해도 손에 쥔 게 없으니 한걸음도 내 디딜 기운조차도 사치 같았다.
그러나, 될 대로 되라는 나 몰라로 팽게 칠 수도 없는 독안에 든 새앙쥐다.
대충 아침을 먹고 힐끗 달력을 보니 친정엄마의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하나뿐인 딸이지만 지금까지 남편 몰래 용돈 한번 넉넉하게 손에 쥐어 드린 적 없는 한심한 딸이다
25년 전에 남편여의고 하나뿐인 딸년 끝까지 공부 시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항상 가슴에 돌덩이 달고 사는 친정 엄마지만 그래도 나에게 거는 기대는 결혼 했다고 해서 달라질게 없는, 말하자면 은근한 도움 마다하지도 않은 어쩔 수 없는 힘없는 노인에 불과 했다.
이래저래 바쁜 핑계 대고 연락 못 한지 열흘이 넘었다.
진짜 이유는 엄마의 신세타령 듣는데 이골이 났기 때문에 될수 있으면 귀막고 살고 싶었고, 다리 아파서 경로당 출입도 힘들다고 넋두리 쏟아 놓았지만 내 코가 석자라는 나름대로의 또다른 이유를 달고 모든 걸 하나뿐인 오빠에게로 밀어 놓았다.
긴 신호음이 떨어지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아?"
엄마의 가래 섞인 숨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종로서 뺨 맞은 분풀이를 엄마에게 좌르르 쏟아 놓았다.
"에구.......다리가 아파서 질질 끌고 다니는 기 무슨 기운이 남아 돌아서 전화를 냉큼 받누?“
밉지 않은 내 타박에 늘어놓는 엄마의 푸념이 또 한번 가슴에 기름을 붓는다.
"병원에 가봤어?"
"가면 멀 하노?..노환이라고 진찰도 올키 안해주는디.......“
이제 겨우 일흔을 넘어선 엄마가 생각하는 노인이란 여든을 넘어야 된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노인 운운 하는 게 영 마뜩찮은 모양이다.
"엄마가 그럼 젊은 사람이야?..노인은 노인이제........."
잠시 역정 낸 게 미안해서 이렇게라도 너스레를 떨어야 맘이 편할 것 같았고 혼자 살고 있는 엄마에게 응석도 부리고 싶어서 짐짓 엄마의 아픈 데를 긁었다.
엄마는 노인이라고 하면 제일 싫어했다.
"엄마,..돈은 있어?"
넉넉지 않은 오빠의 사정을 알면서도 딸 노릇 변변하게 하지 못하는 염치도 메꿀겸 그리고 엄마의 사정은 혹시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묻지 말아야 할 걸 묻고 말았다.
"돈 겉은 소리 하네....뻐이 알면서...."
다른 집 딸처럼 친정엄마 용돈 일일이 챙겨 주지 못하는 데 대한 서움함이 슬며시 배어 나오는 엄마의 힐난에 난 아뭇소리도 할 수 없었다.
친정 화장실 짓는데 돈 보태는 큰 시누이가 하늘같이 높아 보였고 쨤쨤이 장모님 주머니 채워주는 柳서방이 재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장모 손에 돈 한번 변변이 쥐어 준 적 없는 무능한 남편이 한없이 원망스러웠고 결혼생활 15년에 뒷주머니 하나 꿰차지 못한 내 융통성 없는 생활에 화가 났다.
아니 하나 있다.
남편 몰래 2년 짜리 적금 든 게 이틀 후면 만기다.........200만원이라는 거금...
어디에 쓸 것인가를 생각하기엔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커서 아직 지출 명세서 조차 작성도 못하고 있다
"오빠는 자주 와?"
"모리겠다. 얼굴 본지도 하도 오래 되어서...."
끝말을 토막 내는 여운이 섭섭함과 원망으로 꼬리를 대신하자 슬며시 성깔이 돋는다.
"새언니는?"
"가가 바쁜데 왠 걸 오나?...시에미 머가 이쁘다꼬...."
은근히 시어머니 특유의 심뽀가 슬슬 냄새를 풍기자 난 입을 다물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오빠는 전문대학에 입학 했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이 우리 세 식구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알게 모르게 지어놓은 빚이 결국은 나를 반동가리 학력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래도 아들은 공부 시켜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로 겨우 전문대학을 졸업한 오빠는 특별한 기술이 없이 여기저기 전전 하다가 친척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말단으로 들어갔다.
많지 않은 월급으로 가정을 꾸리기에도 급한데 엄마의 용돈까지 걱정할 여가가 없단다
궁여지책으로 올케가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며느리 돈 부스러기도 구경 못했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이유는 그럴 듯 했다.
언젠가 엄마 생일을 저녁 짜장면으로 행사를 떼 운 올케에게 ‘지독하다’ 소리로 서서운함을 그렇게 털어 놓았다.
생일이 평일일 때는 일요일로 당겨서 하거나 늦추어서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제 날짜에 해 드린답시고 그렇게 생신을 떼운 이유를 알것 같았다.
여럿이 모이는 게 갈수록 귀찮고 번거러웠던거다..올케는....
항상 반들거리는 집안 살림살이에 모여서 혹시 흠이라도 낼까 싶어서 미리 땜질을 한 그 속을 알고도 남는다.
그러기에 오빠 집엔 선뜻 발걸음 하기가 어렵고 또 가기가 싫었다
왠지 불편했다.
언젠가 아버지 제삿날 다섯 살 난 아들 녀석이 베란다에 놔둔 화분을 깨드린적이 있었는데 내가 안 볼 때 아들 녀석에게 뭐라고 했는지 다시는 외삼촌 집에 안간다고 떼를 썼다
영문도 모르고 아들 녀석을 나무랐더니 '외숙모 무서워...'라고만 했다
화증으로 담배를 피우는 엄마에게 시위라도 하듯 엄마하고 한자리에 앉기만 하면 겨울이거나 말거나 온 집안의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 재낀다.
냄새나고 지저분 하다나....
은근슬쩍 시어머니를 거부하고 있는 올케에게 쓴 소리 하고 싶었지만 출가외인이 할 수 있는 말도 한계가 있었기에 입안에 쓴 침이 돌도록 밖으로 뱉지 못했다.
시집일로도 머리가 아픈데 친정 엄마의 넋두리에 맘속은 온통 끓는 물속 같았다.
그러나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적금타서 엄마에게 단 얼마라도 쥐어 드리고 싶은 맘이 생긴 건 큰 시누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도 간만에 딸 노릇 좀 해 보자.......
까짖거 엄마가 사시면 얼마 산다고.......
살아 계실때 효도를 해야 돌아 가셔도 맘에 안 캥긴다.........
긍정적, 합리적으로 생각이 미치자 난 목청을 높혔다.
"엄마...걱정 하지마..내가 얼마라도 보내 줄 테니까...오빠에겐 비밀로 하고........"
그런데, 일이 꼬일려면
마누라 패는 날 장모 행차하고 간장독 깨뜨리는 날 시어머니 들이 닥친다고 했던가.
언제 들어 왔는지 잠그지 않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여우가 내 전화를 듣고 있었다.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슨 얘기를 듣고 있었는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미리 형틀 메고 매 맞는 시늉을 하기엔 비굴해 보여서 싫었다.
여우가 얄궂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