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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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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시누이


BY 그린미 2004-10-02

 

 화장실 문제엔 뾰족한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전전긍긍 하던차에 대전사는 큰 시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언니, 나야....."

나하고 동갑인 마흔 세살의 이 시누이는 적들이 우글거리는 시집식구들 중 유일한 내편이다.

아니 내편이 아니고 언제나 중립을 지키다보니 시어머니에게 번번이 타박을 맞기도 한다.

 "먼 인간이 뜨뜻미지근한기 매가리가 없냐?.......이거도 아이고 저거도 아이고......"

쉽게 말해서 당신 편 안든다는걸 이렇게 비꼬아서 쥐어 박는다.

시누이는 그럴때마다 그냥 씩 웃는다.

속에 든 하소연 이 시누이에게 털어놔 봤자 번번이 퇴짜를 맞는 시어머니다.

"엄마...엄마는 어른이잖우...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너그러워야제...."

마치 아랫사람 다루듯 지 엄마를 다둑일때면 시어머니는 '니가 내속으로 빠진게 맞냐'고 섭섭해 했다.

며느리 흉 아들 흉 맞받아서 같이 입을 맞춰주길 바랐던 시어머니는 시누이의 조용한 나무람이 몹시도 비위에 거슬리고 언잖아서 두눈을 허옇게 치뜨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이 말이 밖으로 새어 나와 내귀에 찔러넣을 지경이면 나한테 엄청 엎어질 일이 있을때이다.

용돈 넉넉히 건너줄때라든지 가까이 사는 시외가에 고깃근이라도 잘라서 갖다 줄때......등등

 큰 딸이 기특해서가 아니고 그 나이 먹도록 줏대가리가 없다고 험담하는 도중에 쏟아낸 말이다.

당신은 험담으로 난 덕담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같은 말을 가지고도 두갈래로 찢어져야 했다

 비록 초등학교 밖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시누이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떨때는 같은 여자지만 존경심마저 갖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결코 못배운데 대한 컴플렉스도 가지지 않았고 어느누구도 원망을 하지 않는다.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현명함을 가진 조용한 성격이다.

 4남매중 남편하고 가장 많이 닮아서 내가 더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누이를 보면 배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많이 배웠다고 인간구실 다 하는 것도 아니고 못 배웠다고 바닥 기는게 아니라는거 뚜렷하게 증명해주는 산 증인이다.

 

 어린 나이에 지금의 남편 만나서 숱한 고생을 했다는걸 안 건 얼마되지 않는다.

  배운거 없이 무역업에 뛰어 들었다가 돈만 날리고 남편이 사기 혐의로 2년간 옥살이 한걸 시누이는 친정에 알리지도 않았다.

외국 출장 갔다는 거짓말을 별 의심없이 받아 들인 친정 식구들에게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면목없어서 두고두고 맘에 걸리는 사건이었다.

그때 시어머니는 그렇잖아도 자기 편 안드는 마뜩찮은 딸에게 '독한년'이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리곤 큰 시누이말만 나오면 꿀됫박에 참깨 달라붙듯 어김없이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그년은 클때부터 배창시에 구렁이가 열마리도 더 들었응께......"

마치 전실자식 대하듯 흠이되고 흉이 될만한 꼬투리라도 잡히면 사정없이 바닥으로 깔아 뭉개었는데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다.

어떨때는 정말로 바깥에서 낳아 온 자식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시어머니는 정나미 떨어지도록 매몰차게 굴었다.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한 분명한 이유를 가지게끔 하는 속깊은 시누이는 목소리를 바닥으로 잔뜩 낮춘다

"오빠는 지금 자?"

 아마 나한테만 찔러줄 말이 있는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응,...오늘은 일찍자네......그런데 무슨일 있어?"

 오는말이 고우니까 가는말도 덩달아 오뉴월 수양버들이다.

 "노인네 때문에 많이 시끄럽지?"

  긍정도 부정도 못하고 대답할 말을 찾고 있는 어정쩡한 사이에 조용히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하는 소린데..........내가 200만원 보내줄께....나머지 돈은 내가 어디 알아볼께..."

순간, 가물가물 눈자위에 잠을 싣고 있던 머릿속에 100촉짜리 백열등이 들어오는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자네가 왜....??"

 말은 이렇게 비단결같이 했지만 내심은 화들짝 반기는 내 이중성격이 순간적으로 한심했다.

 "오빠 형편 아는데 머.......노인네가 앞뒤 안가리고.......내가 미안할려고 그래.."

난 콧등이 시큰거렸다.

사방이 적이라고 온몸의 털 곤두세우고 방어자세만 고집한 게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무리한 요구에 스스로를 악인으로 자처해야 했다

 "그러지마..오빠하고 어떻게 해 볼께"

어떻게 해 볼 재간도 없으면서 대책이 있는양 이 챙피스러운 모양새를 모면하고자 했으나,  이젠  에누리 없이 백기를 들어야 했다...큰시누이의 이런 도움을 받는다면....

  "그런데 정서방도 알어?....자네가 돈 주는거?"

부부가 합의를 안본 상태에서 만들어 내기엔 작은 액수가 아니기 때문에 은근히 맘에 걸렸다.

  "아니.....알아도 관계 없지만...모르는걸로 해.....아마 따로 생각한게 있을거야"

부부가 따로 논다?

난 따로 빚내서 살고 있는데 이집은 따로 돈 관리 하면서 살고 있다.

부러운 맘보다도 나의 무능력에 대한 자괴감이 온몸에 힘을 빼 버린다.

끝내 오빠는 물론 온 가족에게는 비밀로 하자는 다짐을 받고 전화는 끊겼다.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릿속을 휘감고 있는 실타래의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헤집어 풀려고 하니까 오히려 더 감겨드는 느낌 같은거....

나머지 200만원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200만원만 가지고 일을 시작할수는 없고...

그렇다고 못한다고 발빼기엔 큰 시누이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다.

  200만원의 출처를 캐 묻는 남편의 의심은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주는 돈도 받을줄 몰라서 쩔절매는 이렇게 융통성 없이 살아온 마흔세살의 나이가 한심 스럽다.

 

 클때부터 난 돈에 대해서 별로 바둥거리지 않고 살았다

아버지가 여기저기 빚 지어놓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고명딸 대접 받으며 별 어려움없이 살았기 때문에 삶에 대해서 저항력을 키울 여가도 필요도 없이 그렇게 살았다.

 누군가는 나를 도와 줄것 같았고 누군가에 의해서 난 고생 안하고 살것 같은 안일하고도 무모한 믿음이 살아가면서 차츰 내 발등 찍는 날카로운 도끼로 둔갑할줄 몰랐다.

남편마저도 옹골 찬 성격이 아닌지라 우리 부부는 늘 부족하고 모자라서 버둥거려야 했다.

 뿌려놓은 씨앗도 변변 찮았고 설사 뿌려놓은게 있다고 해도 미처 여물 여가도 없이 속빈 추수를 해야  하는  철부지 농사꾼이었다.

 난, 알맹이 없이 살아온 빈 쭉정이에 불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