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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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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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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BY 그린미 2004-09-24

 여우는 중학교 졸업장마저도 손에 쥘수 없었던게 다 못난 오빠 때문이라는 원망과 피해의식에 사사건건 졸업장 얘기에 칼을 품고 있었다.

마지막 학기에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졸업을 못했다나....

 지 오래비가 막 제대하고 취업 공부 한답시고 학원 들락 거리다 보니 - 그때 남편은 대구서 학원 다녔다. 자취 하면서 - 엄마 주머닛 돈까지 다 빼다가 공부 한 덕에 지금 밥술이라도 먹을수 있게 되었다고....

내가 최대 피해자라고 .......

(그때 얘기 주섬주섬 주워 들어보니 정말 입에 풀칠 하기도 어려웠다)

 지금이라도 돈만 내면 졸업장 찾아 올수 있지만 柳서방의 길지 않은 가방끈 덕에 별로 아쉬워 하지도 않으면서도 오래비 얘기엔 꼭 탓을 하는 그 고약한 성깔을 맞출수가 없었다

 어떻게 들어보면 아들 취직 시킬려고 한학기 남은 딸의 등록금까지 내어 주지 못한 어머니의 그 가슴아픈 무지를 탓해야 옳은지 때로는 눈물겹지 않은게 아니었다.

 못 배운게 맏이 탓이라는 무기를 들이댈때면 남편은 꼼짝없이 칼질을 당해야 했다.

 '엄마 혼자서 뼈빠지게 벌어놓은 돈 맏이가 다 써버렸다....'는 누명은 남매들로부터 벗어날수 없는 '칼'이었다

 이렇게 맥 못추는 위인인줄 알았으면 차라리 딸년을 공부 더 시킬걸....

 그랬으면 내 팔자는 삼복(三伏)에 늘어진 개 혓바닥 보다도 더 늘어 졌을텐데....

 지놈 공부 시키느라고 내 팔자 오그라든거 언제나 펴일라나......

 옆집에 사는 동철이는 중학교만 졸업 시켜 주었는데도 지 어미한테 매달 용돈 듬뿍 쥐어주고 철철이 옷 사주고 고기 사주고 한다는데....

 웃동네 사는 칠성이네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금반지 금목걸이 사준다는데.....

 나이 마흔이 넘도록 에미 가슴에 못질만 해 대는 니가 인간이냐......

 시집올때 혼수하나 변변이 해오지 않고 좋은 신랑 만나서 좋은집에 사니까 눈에 뵈는게 없냐.....

 

시어머니의 단골메뉴 푸닥거리는 이미 어린 내아이들 마저도 다 꿰고 있을 정도로 자식들만 한 자리에 모이면 입고 있는 치마 훌러덩 뒤집어서 눈물 콧물 훔치며 수도 없이 뱉아 놓는다.

이럴때면 여우는 같이 훌쩍 거리며 '불쌍한 우리엄마'를 연발하며 구색을 맞춘다

 견디다 못해서 생활비 절반을 뚝 잘라 손에 쥐어주면 단번에 안색이 달라진다.

 딸년들 줄려고 감추어 둔 텃밭의 소출을 은근슬쩍 생색내며 찻속에 밀어 넣는다.

'그래도 맏이 밖에 없다.......'

'柳실이나 鄭실이에게는 비밀로해라'는 소리 꼭 안 빠뜨린다.

 제법 목청까지 바닥에 착 깔고 주위를 살피는 완벽한 연기에 난 그저 나만 아는척, 나만 챙겨 줘서 감지덕지하는 제스쳐로 시어머니의 연기에 조미료를 뿌렸다.

 나중에 알고보면 맏아들보다도 더 챙겨 주었다는 거 다 알지만 ...........

 

솔직히 정말로 궁색하게 살고 있다면 내가 쪼들려도 시어머니에게 용돈 듬뿍 쥐어 줄 수 있지만 그 동안 억척 부리며 모아놓은 돈이 적지 않다는 시고모의 귀뜸에 난 시어머니에게 건네주는 용돈에 소홀하고 인색한건 사실이었다.

시동생이 전답 팔고 시어머니돈 마저 야금야금 빼 가기 전까지는......

시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돈이 바닥을 보였다는 것을 눈치 챈건 부조금 때문이었다.

왠만한 동네 부조는 시어머니 선에서 지금까지 해결 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동네 길흉사만 생기면 은근히 꼭 나에게 알려왔다.

 시누이 시동생 결혼 시키면서 받아먹은 부조는 시어머니 손에 고스란히 떨어 졌는데 이제 는 우리가 토해내야 하는 '재주넘는 곰'이 되어야했다.

 

'에미야, 너거 시외갓집에 부조는 적으면 안된다. 애비 장가갈때 솔찬히 부조했다.'

'웃동네 너거 당숙네는 나한테 하느라고 한다..부조 서운케 하면 안된다'

'柳실이 시동생 장가가는데 적게하면 柳실이 기 죽으니까 좀 낫게 해라.....'

'뒷집 할마이는 나하고 제일 친했다..영감 죽고 얼마나 맘 아플꼬...좀 낫잡아 해라'

 매주 터져 나오는 길흉사에 난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그것도 일반 부조가 아닌 집안이나 사돈집 부조에 그야말로 내 등은 새우등 굽듯이 펴 질 날이 없었다.

 목구멍에 풀칠 할 돈만 받고 있는 대한민국 머슴이 두집 살림에 이자까지 덤태기 쓸려니까

나도 그냥 앉아서 머슴돈 축내기가 미안하고 감당이 안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월부책 세일즈 맨이었지만 내 계산대로 주머니에 돈이 들어 오는게 아니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말하자면 남 좋은일 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아랫층에 사는 명숙이 엄마가 책장사 잘만하면 한달에 200만원 벌기는 누워서 팥떡먹기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얼떨결에 도서 팜프렛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지만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슬슬 피하는게 눈에 보였고 난데없이 궁상 떠는것도 거절의 의미라는거 눈치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고 미안해요......어저께 책 들여 놔서요'

 '우리 애들 책 보지도 않아요.....'

 '너무 비싸서....그냥 한 두권씩 사서 보는게 훨씬 싸게 맥혀요'

 '지금 너무 복잡해서....내년에 하나 팔아줄께.'

 온 몸뚱아리가 가닥가닥 떨어져 나가는 무기력증이 엄습했고 남에게 코아픈 소리 안하고 살았던 마흔세살의 자존심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막막함도 보았다.

 그동안 실적 올리려고 무리하게 들여놓은 내 아이들 책값에다가 다음달에 준다고 못 이기는  척 팔아준 친척들의 책값까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게 되었을 때 난 내정신이 아니었다.

아무리 계산기 두들겨 봐도 기대했던 팥떡은 커녕 남을 위해 긁어 댄 할부금만 해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 옛말에도 떡도 먹어본 놈이 먹고 괴기도 씹어 본 놈이 씹는다고 했다.

계속 다니면서 갚아나가리라는 옹골찬 다짐은  괜히 밖으로 다니면서 설치지 마라는 남편의 핀잔으로 인하여 석달만에 두손 들고 말았다.

책 세일즈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경험도 얻었고 어지간한 베짱이나 적극성 없이는 함부로 달려들 일이 아니라는것도 매달 빚 갚아 나가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남편 몰래 남의 빚 갚아주는 고추장 같은 심사는 피를 토하고도 남았다.

 

 어느날 날라든 카드대금을 보고 남편이 불 같이 화를 내며 주제를 알고 돈벌이 나서라고 했다.

아직도 적지않은 대금이 남아있는 청구서를 들고 나도 발악 하듯 남편에게 대 들었다.

"돈만 많이 갖다 줘봐라..내가 발바닥에 불 붙히고 다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