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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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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이었습니다.


BY 녹차향기 2004-09-05

고등하교 졸업하기 전이었습니다.

겨울 방학 전에 은행에 취업이 되었고, 약 1개월에 걸쳐 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았습니다.

모조지폐로 제한시간동안 돈을 세어내는 연습을 수없이 해 보고,

고객응대법을 배우고,  유명한 교수님들이 인생에 소중한 교훈이 되는

얘기들을 많이많이 들려 주셨습니다.

 

은행에 취직 된 것만도 즐거운데, 이렇게 좋은 말씀을 그냥 듣고, 또 월급도 받게 된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연수를 마치고, 기다리던 지점배치 발령.

희망지역을 전부 본점,본점,본점이라고 적어냈는데,

종로 3가 지점을 발령 받았습니다.

 

"야, 너 정말 좋겠다.   그 지점 새로 옮겨서 정말 좋대"

지점에 대해 알고 있는 아이들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응. 그래 고마워.  너희들도 좋은 데 발령받았지?"

"우리, 헤어져도 동기모임 만들어 자주 만나자."

"좋아. 좋아..."

마냥 들뜨고 신나고 유쾌하기만 한 동기들과는

다음을 약속하며 연수원에서 헤어졌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지내면서 종로3가 지점 위치도 확인하고,

거기는 유명한 극장가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도 눈에 띄는 지점이었으므로 집에서 바로 한번에 가는

버스배차 시간까지 체크해 보았습니다.

시내로 출퇴근 한다는 느낌은 단번에 고등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수줍은 학생에서 발랄한 아가씨로 바뀌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거금을 털어 이쁜 단화도 장만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을 서둘렀고,

삐걱 은행 후문을 밀어 보았습니다.

아직 출근한 사람이 별로 없는 듯

지점 안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어? 처음 온 직원이네... 토욜날 공문이 왔었지.

2층에 탈의실 있으니깐 가운 갈아입고 와요."

낯설고 동그란 얼굴을 한 남자직원이 아는 척을 했습니다.

"예.."

 

옷을 갈아입고 1층에 내려와 꿔다놓은 보릿자루 처럼 어색하게,

안 맞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어정쩡하게

잔뜩 호기심에 찬 눈을 하고,

그렇게 은행을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9시가 되서야 직원들이 출근을 많이 했고,

서무주임이라는 분이 이름을 묻고,

다시 뭔가를 쓰라고 하고,

(뭐, 집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 거)

지점장님실로 데리고 들어가 인사를 시키고,

곧 전직원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라고 하였습니다.

함께 온 여행원이 하나 더 있었기에 우리 둘이는

손을 붙들고, 순진한 아이들처럼, 그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새로 온 권은미, 신영미 입니다."

내가 먼저 이름을 말하면, 영미가 뒤를 이어 앵무새처럼 인사했습니다.

다들 귀엽다는 듯, 열심히 하라고, 반갑다고 하며 반겨주었습니다.

 

은행은 창구에서만 일은 보는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뒷줄 너머 수표발행기를 찍고, 수표를 거두고, 직원들의 전표를

일일이 걷어 모두 집계를 하는 계산반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거기 무척 큰 책상에 공공칠 가방을 옆에 놓고,

방금 설악산에서, 아니 저 천상의 세상에서 내려온 때묻지 않은 얼굴을 한,

그 남자가 있었습니다.

순간 은행의 천정이 한 바퀴, 두 바퀴, 핑그르르 돈다는

무척 어지럽고 현기증이 아찔 하다는 ,

누군가 머릿속에 들어가 수만 볼트의 전기로 뇌를 쥐어짠다는

알지 못할 힘을 느꼈습니다.

 

"어?"

쓰러질 것 같은 기운에 옆에 있던 책상에 손을 짚었습니다.

시선은 그 남자에게 꽂힌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