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여인
“김성숙씨, 전화, 3번” 약간은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로 윤대리가 말했다. “예, 전화바꿨습니” 채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엄마 목소리가 귀를 찔러댄다.
“너, 몇시에 오냐?”
“왜요, 엄마”
“도대체, 아무리 손주라도 그렇지, 오늘은 하루 종일 방바닥만 긁어대는데, 내가 성민이 보다가 속이 터져 미치겠다”
“엄마, 저기”
“너 올 때 맞춰서 데려다 줄 요량이니까 그렇게 알아라”
“엄마, 저기...”
그녀는 벌써 전화를 끊었다. 오후 근무를 하는 동안 성숙은 착잡한 마음에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엄마는 성민을 데려가면 꼬박 1주일을 견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손주 새끼 얼굴이 밟힌다면서 다시 성민을 데려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싶었지만 벌써 1년째 엄마의 행동이 반복되고 있다. 퇴근할 무렵 저녁을 같이 하고 가자는 외과병동 간호사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성숙은 급하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는 벌써 엄마가 와서 성민을 씻기고 있었다.
“왔냐” 퉁명스럽게 엄마가 말한다.
성민은 욕조 안에서 물거품을 튕기면서 ‘와라 와라 와라’하고 흥얼거리고 있다.
“에구, 이 녀석아, 가만 좀 있어야 이 할미가 편하잖아”
“성민아, 엄마 왔다”
성민이는 성숙을 한번 힐긋 보고 까르르 웃더니 다시 ‘와라 와라 와라’하고 흥얼거린다.
성민을 다 씻기고 앉은 저녁 식탁 자리에서 성민은 숟가락 대신 손가락으로 밥풀 뭉개기를 계속 하더니 외할머니의 자장 노래에 이내 쉽게 잠자리에 들었다.
커피를 내려는데 성숙의 엄마는 가방을 챙겨든다.
“엄마, 커피라도 좀 마시고 가”
식탁 위에 커피잔을 놓으면서 성숙이 말했다.
“됐다, 늦었는데 나도 빨리 가야지”
“엄마, 가도 빈집이잖아. 마시고 가”
성숙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됐어, 우리 집에는 뭐 커피가 없냐”
“엄마, 그런데, 내일... 또 올꺼면 아예 가지마”
“뭐야”
엄마는 한번 성숙을 날카롭게 보더니 식탁에 앉는다.
“엄마, 주말에 이러는 것도 아니고, 오늘처럼 평일에 성민이를 데려다놓고 가면, 내일부터 아이를 어떻게 하라고 이러는 거야, 나는 출근해야 하잖아. 토요일에 내가 데리러갈게,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성민이 데리고가”
“싫다”
“엄마, 또 보고싶다면서, 불쌍하다면서 데리러 올꺼잖아, 매번 그러잖아”
“아유, 이번에는 싫다. 요새 젊은 새댁들, 뭐냐, 거 돈벌이 나서면 놀이방에 아이들 맡긴다던데, 놀이방 있잖냐”
“엄마, 말이 좀 되는 소리를 해. 정상도 아니고, 자폐아를 받아줄 놀이방이 어디에 있어, 설사 있다고 해도, 애가 적응은 어떻게 하고, 어떻게 지내겠어? 사람들은 성민이를 보고... 애가 괴물취급이나 받지 않겠어, 잘 알면서 도대체 왜 이래?”
성숙의 목소리가 높아간다.
“싫다”
엄마는 한마디하고, 대뜸 몸을 일으켜 세우고 현관 앞으로 나선다.
“엄마, 이렇게 갈꺼면 다신 오지마”
성숙이 이를 악 물고 말했다.
“모자란 년”
독기 어린 눈빛으로 엄마는 성숙을 한번 픽 보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성숙은 멍하니 식탁에 앉아 있다가 식어버린 커피를 마저 마시고, 이곳 저곳을 정리하고 방안으로 들어가 윤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아파서 하루 쉬어야겠는데, 그렇게 해도 되겠냐고 묻고, 핀잔을 들으면서 어렵사리 월차 휴가를 냈다. 성민이 옆에 누워 곤히 잠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고, 아이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성숙은 뒤척뒤척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성숙은 창민을 흔히 그러는 것처럼 대학 미팅 때 만났다. 반듯한 얼굴에 유난히 까만 눈동자를 가진 창민을 성숙은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눈여겨보았다. 운 좋게 성숙은 창민과 한짝이 되었고, 둘은 그날 서로 어색하고 쑥스러운 기분으로 영화 한편을 보고 저녁을 먹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성숙은 내심 창민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일주일 동안 창민이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성숙의 기대는 점점 옅어졌다. 종강이 다가왔고, 성숙은 과 친구들이랑 농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농활 가기 전날 성숙은 창민의 전화를 받았다. 창민은 성숙에게 그 동안 시험도 보았고, 종강에 맞추어 내야할 과제들이 있어서 연락이 늦어졌다며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조만간 보고싶다고 했다. 성숙은 일주일 정도 농활을 다녀와서 보자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난 뒤 이번에는 성숙이 창민에게 전화를 했고 그 후부터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 이어졌다. 방학 동안 두 사람은 대형 서점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고, 틈틈이 서울 근교 여행을 다녔다. 사귄 지 2년이 다될 무렵 창민은 군대를 갔고, 성숙은 학교 생활만 충실하게 하면서 창민을 기다렸다. 창민이 제대했을 때 성숙은 제법 규모가 있는 병원의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3년이 지난 뒤 창민은 초등학교 선생님 발령을 받았고, 둘은 결혼을 준비해갔다. 결혼을 6개월 앞둔 어느 날, 성숙은 야근 도중 창민의 어머니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창민이 집으로 내려오다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왔는데, 상태가 아주 중하다고 했다. 성숙은 조퇴를 신청하고, 창민이 있다는 병원으로 황망하게 달려갔다. 병원 응급실로 채 들어가기도 전에 성숙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바닥을 두드리며 울고 있는 창민의 어머니를 보아야만 했다. 창민의 장례를 마치고 나서 창민의 어머니는 성숙에게 말했다. “ 네 앞날이 창창한데, 기일일랑 챙길 생각 말고, 마음 다잡고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아주길 바란다. 먼저 간 아들 대신 미안한 마음 전한다”
그리고 얼마 뒤 성숙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 임신 10주...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어떤 날은 없는 사람의 아이 낳아서 무엇하나 싶었고, 어떤 날은 이 아이를 낳아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답답한 마음과 싸워야 했던 성숙은 자신이 간호사라는 사실, 간호사는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기로 했고, 그래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소박한 심리도 그 결정에 한몫을 했다. 성숙은 임신 5개월이 될 때까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신변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 동안 모아놓았던 돈으로 서울 변두리에 열세평 짜리 연립 주택 전셋집을 구했고, 전세를 구하고 남은 돈과 퇴직금으로 출산비용과 1년간의 육아비용을 충당키로 했다. 그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자신도 없었고, 대안도 없었지만 열심히 지내다 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악착같이 입덧을 참았고 악착같이 돈을 아꼈다. 다른 간호사들이 ‘살이 좀 찌는 것 같다’고 말하면 ‘요새 좀 그렇지’ 하고 웃어넘기면서 대꾸했다. 드디어 5개월째가 되었을 때 성숙은 사직서를 냈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던 무렵, 성숙에게 엄마가 찾아왔다. 엄마는 남편이 죽었다고 했다. 2층 짜리 집이 유산으로 남겨졌다고 했다. 남편 전처 자식들은 자기와 연락도 없고, 전처와 계속 만나고 있어 그 집과의 관계는 모두 끝났다고 하면서, 2층 짜리 집을 처분해서 작은 아파트를 두채 사서 한 채는 세를 주고 그 돈으로 생활할 요량이라면서 다른 한 채에서 함께 살자고 했다. 성숙의 엄마는 15년 전에 집을 뛰쳐나갔고, 12년 전에 재혼을 했으며, 그 뒤로는 전화 통화만 하고 어쩌다 한번씩 성숙을 만나왔다. 그런 엄마가 성숙에게 같이 살자고 했다. 게다가 성숙이 남몰래 출산을 준비하는 이 때에 말이다.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성숙에게 엄마는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한달 뒤에 성숙의 생각을 묻겠다며 찾아와 밥을 해주고 방 청소를 같이 해주던 엄마는 성숙의 산모 수첩을 보게 되었다. 엄마는 난리를 쳤다. 죽은 놈의 아이를 왜 낳으려고 하냐면서 길길이 날뛰었다. 엄마는 창민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성숙에게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엄마는 성숙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다. 창민이네 집에서도 성숙에게 엄마가 있지만 재가해서 사실 성숙이 고아나 다름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창민이네 집에서는 가정환경이야 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성숙이 하나 괜찮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했었다. 성숙의 엄마가 길길이 날 뛴 며칠 뒤 성숙은 창민 엄마의 방문을 받았다. 성숙의 엄마가 창민이 졸업한 학교로 찾아가서 통사정을 해서 고향집 주소를 알아냈고, 고향집을 찾아가 한바탕 난리를 쳐댄 모양이었다. 창민 엄마는 성숙에게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어려운 길로 접어들었냐면서 당신 집에 가서 아이를 낳자고 하셨다. 호적은 창민이 형 호적에 올려주는 게 좋지 않냐고도 했다. 성숙은 창민 엄마의 제의를 거절했다. 대신 창민 엄마 몰래 이사를 가지 않고 연락을 주고받기로 약속했다.
흰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성숙은 엄마와 창민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용하다는 철학가들로부터 지어왔다는 엄마와 창민 엄마의 작명을 모두 물리치고, 자신의 이름과 창민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와 성민이라고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아기는 어릴 때 엄마 품에서 걱정없이 자라야 한다면서 엄마와 창민 엄마는 다달이 성숙에게 돈을 부쳐 주고 찾아오면 이것 저것 챙겨주셨다. 성숙은 그 돈으로 아끼고 아껴 생활을 유지했다. 성민은 건강했고,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발육도 정상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점점 한가지 상황과 사물에 지나치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두돌이 지났을 무렵 성숙은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성숙은 성민이 자폐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와 창민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자폐아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두 사람은 그저 황당해하기만 했고, 엄마는 때때로 낳지 말았어야할 아이를 낳아서 이렇게 됐다면서 성숙에게 칼날을 세워댔다. 창민 엄마는 네가 성민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맘 고생이 심해서 이렇게 된 것 같다며 미안해만 하셨다. 창민 엄마는 성민을 대신 돌봐줄 테니 새 인생을 찾아 나서라고 만날 때마다 울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성숙은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이리저리 수소문해 증상이 점차 호전되는 자폐증 아이들의 사례도 듣게 되었고 여러 가지 치료법도 알게 되었다. 성숙은 미술치료와 음악치료를 병행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언제까지 엄마와 창민 엄마의 도움만으로 살수는 없었다. 성숙은 두분의 도움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고 취직을 해서 돈을 모아 그 돈으로 하루라도 빨리 성민의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취직 결심을 밝혔을 때 창민 엄마가 아이를 보아준다고 했지만 성숙은 창민 엄마에게 아이를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위할 마음에 아이를 창민의 형에게 보내거나 아이를 떼어놓은 상태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라고 말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부탁했다. 혼자 사는 엄마는 어렵지만 성민을 보아줄 수 있었을 것 같았고, 엄마도 흔쾌히 그러마 했기 때문이다. 취직 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전공을 살려 간호사를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가 있다고 하면 더더욱 손사래를 쳤다. 한바탕 취업 전쟁을 치루고 난 뒤 성숙은 간호사 대신 병원 원무과 직원 자리에 만족해야했다.
밤새 몸을 뒤척였던 성숙은 아침 일찍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번씩 다시 걸었지만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찍 일어난 성민은 엄마가 곁에 있는 게 좋은 지 빙글빙글 웃어대면서 방안을 뱅뱅 맴돌았다.
경자는 아침 일찍 강화도에 있는 절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평일에 성숙에게 아이를 떠맡긴 것이 미안하지만 마음속이 난도질되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경자에게는 여태 살면서 성숙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삼십오년 전 이웃마을에 살던 성숙 아버지는 동네에서 곱기로 소문난 경자에게 매일처럼 구애를 해왔다. 경자 부모님에게 다달이 용돈도 드리고, 철마다 선물도 드렸다. 삼년을 하루같이 들인 정성에 경자 부모님은 그 집안으로 경자를 시집보냈다. 결혼한 지 일년만에 경자는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뛸 뜻이 기뻐했고,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선우라는 이름을 지어왔다. 하지만 아이는 갈수록 이상했고, 결국 두돌을 조금 넘기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 때부터 남편은 경자를 때리기 시작했다. 경자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하면서... 이년 뒤 경자가 성숙을 낳았지만 경자 아버지의 구타는 멈출 줄 몰랐다. 20년을 맞고 살면서 경자는 집을 나가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성숙에게 미안했지만 평생을 맞고 살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남편은 성숙에겐 어떤 손찌검도 하지 않았고 성숙을 보배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경자는 그것만을 위안 삼으면서 집을 나왔던 것이다. 경자는 손주 성민을 돌보면서 선우도 자폐증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민을 보면서 죽은 아들 생각이 가슴을 후려치면 경자는 마음을 달래지 못해 성민을 안고 성숙의 집으로 향하곤 했다. 오늘은 선우가 저 세상으로 간 날이다. 오늘 경자는 선우의 넋을 달래기 위해 절을 찾아야 했는데 성민을 데리고 올 수는 없었다. ‘언젠가 성숙에게 말해야지’ 경자는 속으로 곱씹으면서 절로 향하는 산길을 밟았다.
성민이 낮잠을 자기 시작했을 때 성숙은 창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만 성민을 보아주셨으면 하는데 절대로 창민의 형에게 맡기거나 자신과 아이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창민 엄마의 다짐을 받고 또 받았다. 성민이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성숙은 간단히 성민의 옷가지를 챙겨서 여주로 가는 고속 버스를 탔다. 성민을 맡기고, 창민 엄마와 좀 이르게 저녁 식사를 같이 한 후 성숙은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마음이 심란해 동네 서점에서 책 한권을 사서 집으로 올라오는데 창문으로 엄마의 모습이 스쳐간다.
“성민이 어디 갔냐”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경자가 물었다. 식탁 위에는 경자가 성민을 주려고 사온 소방차가 보였다.
“왜왔는데?”
신발을 벗으면서 성숙도 차갑게 물었다.
“성민이 데리러 왔다. 애는 어디 갔냐?”
“여주에 데려다 놓았어”
방안으로 들어서며 성숙이 대답했다. 경자는 성숙을 쫓아 방안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미쳤냐? 너? 그 집서 아 못 준다고 하면 어쩔려고?”
“토요일에 데리러 간다고 했어. 그 때까지만 봐주시는 거야”
“너 그 말을 어떻게 믿냐?”
“못믿으면? ... 나는 엄마도 못믿겠어”
성숙이 부들거리면서 대답했다.
“뭐야?”
경자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성숙을 쳐다보았다.
“엄마도 성민이를 무슨 혹처럼, 놓았다 데려갔다 하잖아, 안그래?”
성숙이 경자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야, 나도 사정이란 게 있으니까 그렇지”
“사정, 엄마의 사정, 그래, 엄마는 사정이 있어서, 그래서 나도 버리고 나갔지. 왜 나 버린 것 같고는 모자라서, 성민이도 버렸다 취했다 하려고?”
“뭐야, 너 지금”
경자는 부들부들 떤다.
“뭐야, 너 지금, 그럼 내가 한평생을 느그 아버지한테 맞고 살았어야 옳다는 소리냐?”
“나는 그랬다고 쳐. 엄마 성민이는 다르잖아. 나는 그래도 학교라도 다녔지만 성민이는 너무 어리고 게다가 정상도 아니잖아”
애써 목소리를 낮추면서 성숙이 말했다.
“아니, 너는 내가 평생 맞고 살지 못해서, 그래서 지금 억울하다는 거야? 그래, 나 맞기 싫어 뛰쳐나왔다. 자식도 필요 없고, 나하나 잘살라고 그랬다. 왜?”
경자가 악을 써댄다.
“엄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아니긴, 그래,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그래, 손주도 버려볼라고 그랬다”
성숙은 경자의 이야기가 참을 수 없어진다.
“가, 가란 말이야. 당장 나가”
성숙은 경자에게 소리를 질러댔고, 엄마는 눈물을 주르룩 흘리면서 후다닥 가방을 챙기고 후다닥 현관문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흐느끼는 경자의 울음소리가 성숙의 귀에 메아리친다. 벌써부터 후회가 밀려오지만 경자를 잡고 달래려 내려갈 마음도 생기질 않는다. 옷을 갈아입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박박 얼굴을 문지르면서 세수하는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한 움큼씩 묻어난다. 어렸을 때에는 왜 맞는 지도 모르고 맞고 사는 엄마가 불쌍했다. 아빠가 나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아빠에게 맞을까봐 엄마를 때리지 말아달라는 말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머리맡에 며칠 동안 엄마에게 사달라도 졸랐던 빨간색 원피스가 놓여져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는 엄마가 며칠 동안 놀러갔다고 했다. 하지만 놀러갔다는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 입을 통해서 엄마가 가출했다는 걸 알았다. 그 때부터 매일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에게서 연락이 오고 엄마를 만나게 되면서 만날 때마다 그리움에 원망이 묻어 났다. 엄마를 더 편하게 만날 수 있게된 지금도 그리움과 원망은 늘 동시에 밀려다니고, 가슴으로 묻고 지나가도 될 일들에 대해 소리지르고 후회하고... 지나쳐도 좋은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성숙은 방으로 들어와 사들고 온 책을 늦은 밤까지 애써 읽는 체했다.
“누구세요” 대문을 열기 위해 마당을 가로지르는 옥례 뒤편으로 마루에서 말린 옥수수를 두드리고 있는 성민의 얼굴이 보였다.
“저예요, 성민이 외할머니”
경자의 목소리는 결코 유쾌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다.
“아이쿠, 어쩐 일로”
옥례가 문을 급히 열면서 가볍게 경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뭔 일은, 손주 데리러 왔지”
“앉으세요‘
옥례가 말하지만 경자는 옥례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성민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성민아, 할머니 왔다. 할머니 보고 싶었지?”
성민은 옥수수만 두들기고 있고, 어느 틈엔가 옥례가 경자에게 찐 고구마를 건네고 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손주 데려 가는 일이요, 그게 일이지 그게 아니면 여기 올 일이 뭐가 있겠어요”
경자가 옥례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성민이는 내 손주이기도 한데요, 뭐. 친할미하고도 있어봐야지요“
옥례는 다정하게 경자에게 말을 건넸다.
“성민아 가자” 경자는 성민의 손을 잡아끈다.
“아,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바람도 아니고, 금새 가시려고 하세요?”
경자는 옥례의 말을 아예 들은 척도 안하고 성민의 손을 잡아끌었다.
“옷가방은 가져 가셔야지” 옥례가 급히 방으로 들어가는데 열린 문틈으로 할아버지 한사람이 들어섰다.
“누구슈? 누구 왔어요.”
경자가 방에 있는 옥례를 향해 외쳤다.
“할머니 안계신가요?”
할아버지가 경자에게 물었다.
방에서 나온 옥례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유, 오셨어요?”
“난 또, 어디 가셨나 했네”
“손주 녀석 외할머니가 오셔서요”
“땅 임자가 나설 것 같기도 한데 망설이기는 기미가 있기는 해요. 조만간 직접 땅을 보러 온다고 하니 왠만하면 집 비우지 말고 계시라고요”
"예, 그럴께요, 살펴 가세요“
“땅 팔아요?”
경자가 한번 묻고는 성민의 옷가방을 옥례 손에서 빼앗다시피 들고는 대문으로 나섰다.
“성민아, 어여 가자”
옥례가 대문 밖으로 따라 나섰지만 경자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내빼듯이 성민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옥례는 하루 동안 성민이랑 있으면서 어릴 적 창민을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로 즐겁고 한편으론 가슴이 미어졌다. 누가 애비 아니랠까봐 성민은 어쩜 그리 창민이를 빼닮았는 지 죽은 아들 생각에 수시로 가슴이 뭉클뭉클 했다. 자폐증인가 뭔가만 아니었으면 좋았으련만 혀를 차면서 밤새도록 옥례는 성민이가 혹시 모기에 물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살랑 살랑 부채질을 해주었다. 옥례 남편은 창민이가 죽은 후 술에 찌들어 살더니 간암으로 2년 전 이 세상을 떠났다. 창민이는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잘 자라준 고마운 아들이었다. 큰아들 경민은 차갑고 조용한 반면 창민은 다정다감해서 어미로서도 창민이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었다. 그건 옥례 남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자식을 먼저 세상에 보낸 못난 부모라며 간경화로 어렵게 끊은 술을 남편은 죽도록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옥례를 남겨두고 저 세상으로 갔다. 큰아들 경민은 부산에서 펀드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때가 되어서나 옥례를 찾아왔다. 늘 외로왔던 옥례에게 단 하루 동안이었지만 성민의 방문은 가뭄 끝 내리는 빗물 같았다. 옥례는 성민을 보면서 한가지 걱정도 들었다. 큰아들 경민이 얼마 전 자금 회전이 잘 안된다면서 땅을 좀 팔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옥례는 남편이 죽은 뒤로는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았다. 대신 논을 남에게 빌려주고 그 삯을 받아 생활했다. 그동안 경민도 옥례에게 꽤 많은 돈을 다달이 부쳐주어 왔다. 하지만 몇 달째 경민은 옥례에게 돈을 부쳐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땅을 팔아달라고 하니, 안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임대 삯으로 성숙에게 돈을 부쳐주고 있었던 터라 옥례는 마음 한편이 걱정스러웠다. 땅을 팔고 나면 이 집만 남는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성숙에게 돈은 대어주지 못할 것 같고, 차라리 성민을 맡아서 키우면 공기가 좋은 곳이니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싶었다. 성숙에게 말해보고 싶지만 자기가 던진 몇마디 말 때문에 아이를 빼앗길까 노상 두려워하는 성숙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옥례는 그 말을 해보기 어려웠다.
옥례가 마당에서 방울토마토 몇 개를 따서 마루로 올라오는데 비가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옥례가 문을 여니 경자가 성민을 앞세우고 들어서며 말한다.
“비가 웬간해야지요, 비 좀 피했다 갈께요”
저녁이 되어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서울행 막차 시간은 이미 지났다. 경자는 할 수 없이 옥례에게 신세 좀 지겠다고 했다. 저녁에 옥례가 옥수수를 삶아 내왔다. 경자와 옥례는 옥수수를 먹었고, 성민은 꾸벅 꾸벅 졸면서 처마 끝에서 물 떨어지는 모양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어 시간 지나 성민은 우유를 한 컵 들이키고 외할머니 품속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성민을 자리에 누이고 경자도 옥례가 깔아준 이부자리에 몸을 누였다. 가끔씩 세차게 몰아치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던 경자가 옥례에게 말을 건넸다.
“자우?”
“아직이요, 왜요?”
“아니, 시골서 자본 지가 하도 오래 되어 놓아서, 잠이 잘 안오네요, 나방들도 신경 쓰이고”
“그래도 잘 주무셔야지요”
“땅은 왜 파우”
“... 아들이 사업이 좀 어렵답니다. 부모가 되어서 땅 판 돈 좀 쓰자는 데 안 팔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식이라곤 그 녀석 하나 남았는데...”
“아들이 뭐하는 데요”
“무슨 펀드라나 뭐라나, 난 잘 몰라요”
“우리 죽은 남편 아들이 주식을 하다가 망했는데... 펀든가 뭔가가 아마 주식이랑 관련이 있을텐데...”
경자는 아는 체를 하면서 낮 동안의 퉁명스러움이 미안해서 옥례에게 이것저것 자꾸 말을 건넸다.
“남편은 왜 죽었수?”
“외할머니 남편은 왜 죽었수?”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휴... 창민이 죽은 걸 못 견뎌서 죽었어요. 원래 간경화가 있는 양반이었는데, 창민이 죽고 난 다음에는 죽으라고 술만 퍼먹었어요. 그래서 속으로 이제 저 양반도 그만 가겠구나 싶었어요”
“... 자식이 죽으면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요”
경자가 씁쓸하게 대답한다. 대답하는 경자의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
‘나도 아들이 죽었다오. 나도 매일 아프다오’
속으로 경자가 대답했다.
“외할머니 남편은 왜 죽었수?”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옥례가 경자에게 묻는다.
“몇번째 남편 말이유?”
경자가 부러 농을 건네더니 말한다.
“첫번째 남편은 나를 하도 두들겨 패서...내가 그만 집을 뛰쳐 나왔다우. 남편이 죽었다는 소리는 성민이 엄마에게 들었는데, 그러니까 성민이 엄마 고등학교 2학년 때 성민이 외할아버지가 중풍기가 있었는데 그만 자고 일어나 보니까 죽어 있더라지 뭐예요. 내가 집을 나가 성숙이가 고생 많이 했지요. 그래도 고모가 동네에 같이 살았어서 다행이었지... 큰일은 다 고모네가 도와주었으니까... 장례식에 나는 가보지도 못했어요. 그 뒤로 성숙이는 대학교 졸업하고 취직하고, 성민이 낳기 전까지 고모네 있었지... 맘고생은 좀 했겠지만 아주 힘들지는 않았을꺼야. 사촌들하고 사이가 좋았으니까.... 내가 가출하고 나서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그 때 동네에 빌딩 공사가 있었는데 매일 어떤 아저씨가 와서 밥 먹고, 농 걸고 하더니만 혼자면 자기랑 같이 살자는 거예요. 내가 생각해도 우리 식당에선 내가 제일 예뻤어. 폼 나고... 행색이 뭐 공사판 사람 같고, 나하고 나이차이도 많이 나는 것 같아서 핑계처럼 또 진심이 그랬으니까 나는 가난한 사람 싫고, 여자 때리는 사람도 싫다고 했는데, 자기는 둘 다 아니라나. 알고 보니까 그 짓고 있는 빌딩 주인이더라고... 그래서 좀 만나다가 살림 차렸지... 성민이 태어나기 전에 조용히 저 세상으로 갔어요. 호상이었지...나한텐 참 잘했어”
“아무쪼록 미안하게 됐어요. 우리 창민이 때문에”
경자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옥례가 갑자기 경자에게 말했다.
“내가 성질이 나면 창민이가 신세 망쳤다고 성숙이에게 말하기도 했지요 그치만 뭐 사람이 나 죽을란다 하고 죽나요... 오히려 성숙이가, 성민 엄마가 바보 같은 거지... ”
“성민 엄마는 좋은 사람 다시 만나도 늦지 않을 나이인데...”
옥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유, 그런 소리 말아요. 나도 재가해보아서 아는데, 지 새끼 두고 남한테 가는 일이 그리 쉬운 줄 아우? 매일 매일 가슴 한켠이 아리고 밤마다 눈물이 한바가지우. 지가 그렇게 살겠다는데, 앞으로 성민이도 좋다고 할 희한한 인연이 생기면 모를까...”
경자도 딸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살면서 한번도 딸에게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줘 본 적이 없다. 살면서 단 한순간도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그거 아우? 나는 창민이를 실제로 본 적이 한번도 없다오”
경자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그래요? 내가 보여줄까요?”
옥례는 일어나서 방에 불을 켜고 서랍을 뒤져 앨범을 꺼내왔다. 그리고 창민의 사진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참, 반듯하게 생겼네, 성민이가 지아빌 닮았네...”
경자는 처음으로 옥례의 두 눈을 보았다. 눈물을 살짝 담고 있는 두 눈동자가 아들 녀석 이야기에 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이제 보니, 창민이는 지 에밀 닮은 것 같애... 우리 성숙이 고운 것도 나 닮은 것 같은데..”
경자가 다시 우스개 소리를 한다. 옥례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비는 내리 이틀을 더 세차게 내렸다. 차가 끊길 정도도 아니었고, 서울에 못 올라 갈 이유가 달리 있지 않았지만 성민이 많이 웃으면서 토마토를 따고 오이를 따고, 상추를 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경자는 비를 이유로 옥례의 집에 그대로 머물렀다. 옥례도 경자에게 길을 나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성민이는 동네 논에 나가서 걷다가 집에 오기도 하고, 마당에 조금씩 심겨져 있는 고추를 만져보고 마당이나 방으로 뛰어드는 개구리 잡는 일에도 신바람을 냈다. 할머니 둘이 양쪽으로 서 있으면 옥례에게 달려갔다 경자에게 달려갔다 하면서 즐거워했고, 비가 잠시라도 걷히면 돗자리를 들고 마당에 누워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쳐다보면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하루는 옥례가 구수한 된장찌개에 보리 비빔밥을 해주어서 먹었고, 하루는 경자가 팔을 걷어 부치고 감자부침과 비빔 국수를 해주어서 그걸 먹었다. 출출할 때면 감자를 찌고, 옥수수를 삶아 먹었다. 옥례는 옆집 아줌마한테 오이를 가져다주고 수박과 참외를 들고 와서는 경자와 성민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평온하게 이틀이 지나갔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었다.
토요일 오후, 성숙은 시계바늘이 정확히 1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퇴근을 서둘렀다.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여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교대해주던 원무과 직원이 상을 당하는 바람에 성숙은 3일 내내 야근을 했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병원에서 야근하는 동안에도 잠과 씨름을 해야했다. 병원의 원무과는 직원이 충분하지 않아 달리 야근을 대신해줄 사람이 있지도 않았다. 창민 엄마에게 성민을 맡겨만 두고 3일 동안 전화 한번 해보지 못했다. 버스를 타자 눈이 스르르 감겨왔다. 성숙은 여주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졸았다. 여주 터미날에 내려 쇠고기 두근을 사들고 성숙은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창민의 집에 가면서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성민이가 없진 않겠지’
창민의 집에 도착했을 때 활짝 열려진 대문 사이로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는 성민이의 모습이 보였다.
“성민아, 엄마 왔어”
“엄마” 성민이가 벌떡 일어나서 달려온다. 엄마를 보면 웃기는 했지만 엄마를 보고 성민이가 달려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성숙은 어안이 벙벙했다. 몸을 낮추어 성민이를 꼭 안고 쓰다듬으면서 ‘내새끼가 여기 잘 있었구나“싶어 감격스러웠다. 약속을 지켜준 창민 엄마가 고마웠다.
“할머니는 어디 가셨니”
성숙이 성민에게 물었다.
“할머니, 또 할머니”
성민이는 대답처럼 말하고는 도로 돗자리에 누워 손바닥으로 하늘을 덮었다.
성민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성숙도 하늘을 가렸다.
“성민아, 저 하늘에 성민이 아빠가 있고, 엄마의 남편이 있고, 해가 있고, 별이 있고”
“성민아, 저 하늘에 성민이 아빠가 있어서 매일 우리 성민이를 내려다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어제, 그제 내린 비도, 아빠가 우리 성민이 사랑한다고, 잘 자라라고 내려 주신거야... 왜 우리가 나무에 물주는 것처럼, 아빠가 우리 성민이에게 물 뿌려 준거야... 사랑한다고”
참 오래간만에 하늘을 본다. 창민이 죽고 난 이후 하늘을 올려다본 기억이 성숙에게는 없다. 성민이 없었더라면 하늘을 보고 울고 웃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민을 생각하면 슬퍼질텐데 태교에 좋지 않을 것 같아 하늘을 보고 창민을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슬퍼지면 이를 꽉 물고 빨래를 하거나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었다. 그 후로는 사는데 바빠서, 걱정거리가 너무 많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했던 것 같다.
“성민아, 엄마가 노래불러줄까...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성숙은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성민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다가도 엄마를 한번씩 쳐다보았다. 성숙의 노래가 거의 다 끝나갈 때쯤 경자가 소리 높여 웃으면서 옥례에게 말을 건네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아고, 지금 만난 저 아줌마는 아들 자랑에 입이 찢어져서 서울까지 가겠네요”
엄마의 목소리에 감짝 놀란 성숙은 몸을 일으켜 세워 뒤돌아보았다.
“엄마...”
“왜 나 보니까 놀랍냐? 네가 안데려 갈까봐, 내가 성민이 데리러 왔다. 왜”
경자의 목소리가 밝고 경쾌했다.
“성민 할머니, 내가 언제 왔는지 좀 성민 에미에게 가르쳐 줘봐요. 언제 왔는 지 알면 기절초 풍하겠네”
옥례가 슬며시 웃었다.
경자와 옥례, 성민과 성숙은 성숙이 사온 쇠고기를 물기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마당에 상을 펴고 둘러앉아 구워서 저녁을 해먹고 성민을 간단히 씻긴 다음 성숙은 성민의 짐을 챙겼다. 경자는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성숙을 만류하고 뒷설거지며 집안 정리를 하고 자신이 그 동안 입었던 옥례의 옷가지를 손빨래하고는 나설 채비를 마쳤다.
“저, 가볼께요, 성민이 잘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성숙이 옥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할미가 당연히 손주를 봐야지, 그리고 사실 난 한 게 없어, 다 외할머니가 하셨지”
옥례가 따뜻하게 대답했다.
“성민이도 아주 즐거웠던 것 같아요, 다음에 또 와야겠어요”
성숙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다시 건네었다.
성민의 손을 잡고 있던 경자가 성민에게 말했다.
“성민아, 할머니한테 인사해야지, 뽀뽀도 하고‘
성민이 옥례를 바라보자 옥례는 성민을 꼭 안어주었다.
경자도 옥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잘 있다가 가우. 무엇보다... 우리 성민이가 많이 웃고 즐거워해서, 나도 아주 즐어웠다오. 또 와도 되나”
경자의 목소리가 사뭇 경쾌했다.
성숙은 경쾌한 경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따뜻한 안도감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럼요, 아예 눌러 사셔도 되요, 나도 아주 좋았어요”
옥례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진짜 가요. 오늘은 비가 내려도 안돌아와요, 담에 전화하고 올께요”
경자가 말하면서 대문을 넘었다.
경자와 성숙은 성민의 한손씩 붙잡고 옥례의 집 앞에서 멀어져갔다.
옥례는 집 앞에 서서 성민이 멀어질 때까지 그냥 서 있었다.
집앞 신작로를 걷던 경자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큰 목소리로 옥례를 향해 소리쳤다.
“그런데 땅은 얼마에 내어 놓으셨나?”
“뭐라고요?”
옥례가 경자를 향해 되물었다.
“안들려요, 뭐라고요”
“아, 땅은 얼마에 내어 놓으셨냐고?”
아예 가던 길을 멈춰서서 경자가 크게 소리쳤다.
그 해 가을 경자는 아파트 두 채를 다 팔았다. 그리고 옥례의 땅을 사고, 옥례의 집으로 내려갔다. 옥례는 그 동안 모아둔 돈을 털어 집을 수리했다. 목욕탕과 부엌을 현대식으로 고치고,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꿨다. 방도 네 개를 만들었고 헛간을 없애고, 그 대신 오로지 성민이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경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자기가 땅 산에 식당을 차릴 공사를 시작했다. 가을 이후 성숙은 성민을 두명의 할머니들에게 맡겨두고, 성민을 위해 퇴근 후 미술 치료와 음악 치료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 해의 마지막 날 성숙은 병원에 사표를 내고, 전세를 빼고, 여주로 내려갔다. 이듬해 늦봄에 경자와 옥례는 ‘행복한 밥상’이라는 여주 쌀밥 전문 식당을 열었고 성숙은 1주일에 하루씩 성민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가 성민이에게 미술치료를 시키고 나머지 날들은 스스로 성민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성민의 상태는 조금씩 진전을 보였고, 식당도 조금씩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 평화스럽게 서로 행복한 밥상에서 만나고 또 행복한 밥상을 차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