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라도 엉클어진 시간들을 잘 수습 하여야 할텐데'
준형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언제였던가 연을 포기하고
재인과의 결혼을 추진하고 있을때
느닷없는 연의 연락에 준형은 적잖이 당황했었다.
"자기 나야 연이야
아주 오랫만이지"
어제 만나고 헤어진 사람처럼 연은 당당하고 한결 같았다
커피숍에 마주 앉은 연의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통통하고 뽀얀 얼굴은 살이 빠져 주름이 생겨났고
어딘지 모르게 시들어 가는 꽂을 생각나게 했다
아린 마음에
"데체 어디서 뭘하고 살았니?
연락은 왜 끊고?"
준형의 물음에 연의 대답은 간단했다.
"응, 자기랑은 좋은데
나 어머니랑은 도저히 살 자신이 없었거든..
어느날 어머니께서 자기에게는 말하지 말고
집으로 오라데..
그러시더니 자기랑 결혼할 생각인가 묻네
그래서 그렇다고 했지
그러니까
그럼 나랑도 같이 살아야 겠제 하실길래 내가 대답을 않했지
그랬더니 왜 대답않느냐고 하시며
결혼 후에 내가 할일들을 죽 나열해 주시데
아주 사소한 것까지 그리고 혼수를 말씀하시는데
내가 좀 놀랐지, 어머님은 당신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내게 받아야 겠다고 하시더라고"
"나한테 얘기하지 왜 안하고 니 멋대로 잠적하냐?"
"아니 어머님의 말씀은 평소와 다르게 아주 차분히 말씀하시더라구
울먹이며 말씀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대꾸할 상황도 아니고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고..
또 고생은 하셨잖아 솔직히
그런데 말이야
마지막에 뭐랬는지 알아
이러시더라 내손을 잡고
아가, 내가 한말 잘들었지?
내 평생을 이렇게 살았단다.
근디 난 솔직히 니가 반맘에도 차지않아
그래도 어쩌겠니 내새끼가 좋타는디
그렇지만 나는 솔직히 좀더 욕심내고 싶다.
하지만 어쩌겠어
니가 날 한 평생 정성으로 모신다면야 내가 포기해야지
그라고 니도 잘할것 같은데
오늘 내가 한것 모두 지키겠다고 약속혀라 하시데
내가 암말 않고 있자
어머닌 자신없으면 여기서 내 새끼포기해 다우
사실은 오래 전부터 내가 점 찍은 며느리감이 있다고 하시데
니 아니면 준형인 걀 좋아 했다구.
오늘 우리 둘이 한얘기는 둘만이 알자시면서"
말을 하다가 물을 한모금 마신 연이는
"그날 생각을 많이 했지
어머니 말씀대로 살자면은 김연이라는 여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태준형과 그의 어머니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난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지
내 삶을 포기하기엔 내가 너무 아까운 존재였거든...
참 결혼한다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꽤 능력있고 괜찮은 여자라면서
사실은 나 1년전쯤 결혼했어
하고 보니 결혼은 생활이더라구
별 볼일이 없더라 말이야
지금 나 임신 6주째야
그런데 자기의 결혼 소식을 들으니 자기가 불현듯 보고 싶은거야
그래서 만사 제쳐놓고 달려왔어
자기는 정말 여전해
내가 없어지면 날 목메이게 찾으면서 아무일도 못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네
전보다 더 좋아 진것 같아"
잔황한 연이의 말에 준형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녀의 얘기대로라면 자기가
그녀에게 별 볼일 없는 놈이었다는 결론이었기 때문에...
"널 많이 찾기는 했지
그런데 안찾은게 다행이네
당신 말 듣고 보니 아뭏튼 결혼과 임신 축하 해 앞으로 잘살어"
"궁금하지도 않니? 내가 누구랑 사는지?"
"아니 나보다 훨씬 나은 놈이겠지
나 떠나고 만난 놈이니"
"그렇지도 않어
준형씨도 아는 남자야
왜 우리 대학다닐때 나 좋다고 따라다니던
수학과 선배말이야"
아~~ 생각났다.
연이랑 만날때 늘 멀리서 지켜 보던 그 사람...
언젠가 연이가 말했었지 귀찮아 죽겠다고...
"어쨌든 잘살어"
"알았어 난 자기가 나보면 참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자기도 잘살어 그 여자 얼굴만 반반할것 같아
그렇게 나이 먹도록 혼자 살아 온것 보면
분명히 과거가 있을거야
조심해 너무 믿지말고"
준형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게 헤어졌다.
저녁을 먹자는 연이를 뒤에 두고
재인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던 준형은
연이의 마지막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떨쳐버리려고 머리를 흔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여자의 과거는 어땠을까?
아주 고고한것 같지만 전혀 아닐수 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