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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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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의 고백


BY 데미안 2005-03-28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되자

진성의 눈은 자꾸만 출입구로 향했다.

오전 11시쯤 되자 뜻밖에도 미혜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미혜씨가 어쩐 일로.....?]

[재희 아직 안왔어요?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녀의 말에 진성의 미간이 좁혀졌다.

 

[나에게만 약속을 한 게 아니었군...]

[당신도...만나기로 약속이...?]

[네...일단 앉읍시다]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진성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들이 자리에 앉은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재희가 들어 섰다.

한 아름의 꽃을 가슴에 안고...

평온한 얼굴로....

 

그녀는 진성 옆에 앉았다.

[너...우리 두 사람 ...같이 보자고 한 거니?......왜?]

불안한 투로 미혜가 조심스레 물었다.

재희는 그 물음엔 그냥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진성을 보았다.

 

[진성씨. 커피 한 잔 줄래요?  당신이 타 주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요]

 

확실히 무언가 있다는 걸 눈치 챈 진성은,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 오르는 불길함을 애써 잡아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향이 테이블 위를 가득 메웠다.

진성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미혜는 재희의 눈치를 살피며 홀짝였다.

반쯤 커피가 비워졌을까...재희가 입을 열었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서점에서 책을 한권 샀거든. 진성씨한테 주려고...

그래서 여기로 왔었죠...당신과 미혜가...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진성과 미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것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숨을 죽였다.

 

[네에...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들었죠...본의 아니게...]

 

진성과 미혜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재희도...진성도...미혜도...

홀안을 채우고 있는 척 맨지오니의 음악만이 그들의 감정을 대변해 주는 듯 쓸쓸했다.

미혜의 무거운 한숨이 세어나왔다.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듯...

곧이어 무겁게 가라앉은 진성의 음성이 뒤를 이었다.

 

[그래...그것 이었군...당신은 알고 있었어...그래서 그 충격으로 몸져 누운 것일테고...]

[......아마도요]

그러자 그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재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재희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렇다면 당신도 내게 거짓말을 한 셈이야.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내게 다짐했었어. 기억나?]

[네에]

[네라고! 그 말이 쉽게 나와?  건우일 알고 죽을 듯이 아파 했으면서 네라는 소리가 나와?  당신 마음속에는 아직도 건우가 있어. 어쩌면 아직도......!]

 

재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혜야. 나, 진성씨랑 갈곳이 있는데 너 먼저 가. 알았지?]

얼떨결에 미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요, 진성씨]

[...왜지?]

[건우씨가 잠들어 있는 곳에 데려다줘요]

[당신 정말...!]

진성은 결국 폭발했다.

 

[아니면 나 스스로 알아내서 혼자 갔다 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난 당신이 나를 안내해 주길 원해요. ... 어떡할래요?]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재희는  진성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화난 표정과 두려움이 섞인 진성의 눈을 재희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우수에 젖었다. 재희의 가슴이 꽉 막혀 왔다.

그에게로 손을 뻗고 싶은 걸 억눌렀다.

한참을 고민하는 그가 가엾기도 한 순간이었다.

결국, 포기한 진성은 긴 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그러나 나를 거부할 생각은 하지마. 당신은 누가 뭐래도 내 여자야. 명심해]

그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