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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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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방문자


BY 데미안 2005-02-25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옷깃을 여미며, 미혜가 <무랑루즈>로 들어 섰다.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며 미혜는 위층 진성의 사무실로 곧장 향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진성은 놀란 표정을 하며 미혜를 맞았다.

 

[아니, 미혜씨가 어쩐 일로? 재희도 함께 왔습니까?]

[아뇨...저 혼자예요]

[아...! 근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미혜를 경계하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씁쓰레하게 웃으며 여전히 벽에 걸려 있는 그들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책상위, 보물처럼 놓여 있는 재희의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재희를 끌어안고 있는 진성도,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재희도 행복해 보였다. 몹시도...

 

[며칠전 남편 사촌네 결혼식이 있었어요. 그 집에서 남편이 앨범을 보여주더군요. 전 그 속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고...]

 

미혜가 조용히 입을 열면서 진성을 응시했다. 그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았다.

 

[사촌이 앨범속의 한 남자를 아주 극찬하더군요. 명문대 특차로 영순위 인재. 대학 재학중 사법고시 패스...부모님들 또한 법조계에 계시는 앨리트 출신...

예전, 아주 예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 같다는 걸 그 때 깨달았어요. 그 누군가는 그 남자를 아주 존경하고 좋아한다고도 했죠.

더 흥미로운 얘기를 사촌은 하더군요. 당신이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서야 기억이 났어요]

[......!]

[그 누군가가 누군지...그 남자가 누군지...얘기할까요?]

 

[...재희도...압니까?]

체념한 듯, 두려운 듯 숨을 길게 내쉬며 그가 물었다.

 

[재희에게 얘기하기 전에 먼저...확인하고 싶었어요. 당신한테서 직접!]

[건우에...관해섭니까? 아니면 저에 관한 겁니까?]

[그럼, 사실이군요]

[...네. 건우는 내 사촌 동생이었소. 그리고...십년도 전에...죽은 것도 맞소]

 

나직하게 독백하듯 진성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당신은 건우씨와 재희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구요]

그가 미혜의 눈을 피했다.

 

[알면서...! 감쪽같이 속이고 재희에게 접근했어요! 왜죠? 이유가 뭐죠?]

[아니오. 재희에게 일부러 속인 건 아니오]

[아니라구요?  재희가 건우씨때문에 어떤 일을 겪었는데! 건우씨에 대한 기억이 어떠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요? 당신은 일부러 재희에게 접근했어요. 그 의도가 대체 뭐죠?]

 

진성은 다시 길게 숨을 내쉬며 미혜에게 의자를 권했다.

 

[앉아요...잠깐만 앉아요]

 

미혜를 진성을 노려보듯 하면서 앉았다.

 

[미안하지만 ...피워도 되겠소?]

 

미혜는 싫다 좋다 말이 없었다. 진성은 담배에 불을 당겼다.

 

[건우와 난...형제처럼 가깝게 지냈소. 건우가...어떤 애를 만나고부턴 온통 그 얘기뿐이더군요. ... 재희...재희...재희...솔직히 지겨울 정도였습니다.

건우는 정말로...재희를 좋아했소. 그리고 그 녀석이 ... 죽던 날 밤...우린 술을 마셨소. 다음 번에 내게 소개 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그 녀석...건우는 재희 얘기할때가 가장 행복해 보였지요...

횡단보도를 건너는 녀석을 난 지켜보고 있었소. 채 다 건너기도 전에 코너를 돌아오던 차는 건우를 보고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미혜는 숨을 죽였다.  잠시 진성도 말을 잊었다.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그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의식이 없었소....그러나 살아 있었소. 모두들 건우는 깨어날것이라 믿었지요...]

[학교에선 아무도...건우씨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더군요. 왜그랬죠?]

[알리지 않았소. 건우는 그렇게 몇달을 견디다 결국...죽었소]

 

미혜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건우에 관해 별별 생각, 상상을 다 해봤지만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갔을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건 아마 재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희...

재희를 떠올리자 미혜는 가슴 한 가운데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난 그 해에 군대에 갔었고 제대 후 졸업하고 몇년 법원에 있었으나 관뒀소. 그리고 이 <무랑루즈>를 인수한거요.

당신과 재희에게도 특별한 곳이지만 나 또한 이 곳 분위기를 좋아했었기에 두 말 않고 맡았소. 그리고 저 사진...]

 

진성의 눈이 벽에 걸린 사진으로 향했다. 그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사진속의 재희를 보는 순간 난, 숨이 멎는 것 같았소.  전 주인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자주 왔던 학생이었다고...그때부터 난 기다렸소. 한번쯤은 오지 않을까...

그러던중 작은 어머님이...건우 어머님이  건우 방을 정리하고 싶다고... 그 일을 나에게 맡기더군요.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난 또 한번 놀랬소

건우와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여자...그렇소. 재희...

내 맘속에서 웃고 있던 그녀가 건우 옆에서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소. 내가 그렇게도 그리던 여자가 건우의 ...그녀였다니...미치는줄 알았소.

일종의 죄책감도 들었고...질투심도 있었소...

그 후로 저 사진을 볼때마다 상반된 감정이 나를 괴롭혔지요... 하지만 재희를 몰아낼수가 없었소. 아니, 몰아내고 싶지 않았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에게 난 이미 사랑을 느끼고 있엇기에...

우습지 않소?  비웃어도 좋소.

그리고 놀랍게도...정말 믿어지지 않게 재희가 내게로 왔소. 그것이 세번째 충격이었지.. 난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건우 얘기를 했었다면...그녀는 다시는 날 찾지 않았을테니...

난 재희를 사랑하오.  내 곁에 재희가 없다면..난...죽은 목숨이오]

 

미혜는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