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41

재희의 고백


BY 데미안 2004-11-03

 

깊은 갈증에 진성을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소파에 바로 앉았다.

맞은편 의자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재희를 보았다.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뜨듯하게 데워진 듯한 냉수를 마시자 그나마 갈증이 다소 해결되었다.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그녀에게 덮어 주고 이제는 그가 그녀를 가만히 살폈다.

비단결 같은 머리.

반듯한 이마와 그 아래의 속눈썹이 길게 뻗은 눈. 알맞은 코. 그리고......

그리고 키스하고픈 입술.

그랬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었다.

미치도록...

하지만 온몸으로 그를 거부하고  있는 그녀다.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여자다.

그러기엔 그녀를 너무 사랑하는 그가 아닌가.

사랑......!  공 재희는 처음부터 이 진성에겐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그는 놓치고 싶지 않다.

그는 그녀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가만히...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입술을 쓸었다.

그녀가 꿈틀했으나 깨지는 않았다.

[당신이 완전히 내게로 올 때까지 난 기다릴거요. 언제까지......]

조용히 속삭이는 그 음성엔 사랑이 짙게 베어 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웃옷을 찾아 돌아서는 순간 그녀의 음성이 그를 멈추게 했다.

[열 아홉의 한 여자애가 있었어요]

그가 그녀를 만지는 순간부터 그녀는 깨어 있었다.

그냥 누운채로 재희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났죠]

 

재희는 건우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첫사랑인만큼 무작정 좋았다. 함께 하는 그 순간은 늘 행복했었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기 전, 어느날 ...건우와 재희는 첫 관계를 가졌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사랑했으니깐...

함께 밤을 보내고 싶었으나 재희는 부모님 생각에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왔다.

부모님은 당연히 공부를 하다 왓겠지 했고, 늘 하던 아침 산책에 그날은 재희를 제외시켰다.

잠을 더 자라는 배려였다.

그러나 그것이 재희가 부모님을 본 마지막이었다.

부모님은 그 날 아침 산책길에서 뺑소니에 치여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때를 떠올리는 재희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어나 앉았다.

눈물이 흘렀다. 그가 돌아섰다. 충격적인 얼굴이었다.

 

재희는 너무 무서워 건우에게 연락을 했다.  제일 먼저 건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우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건우에게서는 전화도 없었다. 그것은 재희에게 더 큰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모든 일이 끝나도 건우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재희는 부모님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도 잃은 기분이었다. 왜 연락이 되지 않는지, 왜 연락이 없는지 재희는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해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재희는 실어증 증세까지 왔고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었다.  학교 또한 그만 두어야 했고...

그러면서도 재희는 내내 건우의 연락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역시...연락이 없더군요. 처음 몇년간은 걱정뿐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차츰 지나자 분노와 배신감이 들었어요.  그가 날 사랑하기는 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죠.

하지만 이제 그 모든것은 상관이 없어요. 전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는 제가 그를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옆에 없었어요. 그리고...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를 버렸어요. 

그를 만날수만 있다면 묻고 싶어요. 왜 그렇게, 그런 식으로 떠나야만 했는지...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이유가 무언지... 전 그 정도는 물어볼 자격이 있다고 봐요. 그는 제게 그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요.

이렇다할 뚜렷한 이유도 없이 버림 받아야 했던 기분을...당신은 모를거에요.  그래서 전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두려웠어요.  아니 만날 수가 없었죠.]

그녀는 거기서 얘기를 마쳤다.

그리고 꼼짝하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가 그대로 돌아서 가 버리는 게 아닌가...두려웠다.

심장만이 무섭게 뛰고 있었다.

[여자든 남자든...]

그가 입을 열었다. 동요의 기색이 없는 음성이었다.

[과거는 숨기는 게 좋다고 하던데...내게 굳이 다 말해 버리는 이유가 뭐요?]

[......!]

[내가 말해볼까? 당신에게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와 한번의 관계를 가졌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실망하고 돌아설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판단했겠지.]

[......!]

[그럼, 내게도 여자가 있었고 여러 여자들과 관계도 가졌다고 하면, 당신은 실망할거요? 나를 다시는 만나주지 않을거요?]

[...... 대게의 남자들은 여자의 과거와 남자의 과거는.....!]

[다르다고 말한다고? 당신은 몇 세기의 사람이오? 당신은 당신의 과거가 부끄럽소? 후회하오?]

[그런건..아니에요]

[그렇다면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요. 내가 보고 있는 당신은 과거의 당신이 아니라 현재의 당신이오. 그리고...그 남자를 이제는 그냥 마음에서 놓아버려요.  당신이 좋아한 남자라면 분명...좋은 사람이었을거요. 그에게도 말못한 사정이 있었다고...그래서 차마 당신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고...그렇게 생각하면 안되겠소?  난...그 남자가 당신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궁금한 건 ...당신이 아직도, 지금도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느냐는 거요..... 그런거요?]

[사랑하냐구요?....아뇨,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는 좋겠지만...아니에요. 그는 단지...첫사랑이었을뿐이에요. 그 일이 좋은...추억으로 남았음 ...하는 바램은 있지만 사랑은 아녜요]

[자신하오? 혹시나  그 남자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당신을 ...원한다고 하면 흔들리지 않고 따라가지 않을 자신이 있소?]

[......!]

재희는 그의 음성에 묻은 불안감을 눈치챘다.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을만큼  자신할 수 있소?]

그녀는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몇년전이었다면  망설였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제는 확신해요. 지금은 더더욱...]

[...무슨...뜻이오?]

그가 양미간을 좁혔다.

[왜 갑작스레 당신한테 고백하는지 아세요?  이 시기를 놓치면 얘기하기가 힘들 것 같았어요. 또 ... 더 시간이 지나면 제가...! 맞아요. 제가 끝까지 숨길 것 같았기 때문에...

지금은...지금은 당신이 저에게 실망해 떠난다해도...원망치 않고 보낼 수 있을 것 같기에  고백한 거에요]

그녀는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고백 하나...더 할까요?  지금 제 마음속엔...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어요. 공허하게 비어 있던 제 맘속에 어느 순간...당신이 자리하고 있더군요]

그가 숨을 들이마셨다. 숨막히는 몇초가 흘렀다.

그가 천천히 그녀 앞, 탁자 위에 걸터앉으며 그녀의 얼굴을 두손으로 감쌌다.

[그말...진심이오?]

쉰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날 ...!]

[그래요...당신이 좋아요]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백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목이 메이는지 그의 뒷말은 희미했다.

대신 그의 입술이 뜨겁게 그녀의 입술위로 포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