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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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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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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시작되고


BY 데미안 2004-11-02

 

[그래,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냐?]

한가한 시간을 틈타 미혜가 은근슬쩍 물었다.

[키스는 해봤냐? 해봤겠지. 어땠어? 황홀하디? 달콤하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설마 아직 안 한 건 아니겠지?]

[......!]

[정말이야? 안했어? 말도 안돼!]

[뭐가 말이 안돼?]

[니들 만난지가 벌써 몇개월인데! 세상에, 세상에. 난 울 신랑하고 만난지 두달만에 호텔 갔어]

[그게 무슨 자랑이니?]

[아니, 너야 그렇다치고. 그 남자, 어디 이상한 거 아냐? 지가 좋아서 만나자고 해놓고 키스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런 맘도 없대? 그런 시도도 않던?]

재희는 알고 있었다.

왜 모르겠는가.

가끔, 그가 몹시 뜨거운 눈빛으로 자신을 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재희는 번번히 그것을 무시했다.

[그 사람 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지...]

[뭐가 문젠데?]

미혜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몰라...그 사람이...싫지는 않아. 그런데 다가서질 못하겠어. 다가오지도 못하게 하고...왜 그 사람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지...]

[너, 진성씨 만나면서 맘속으로 이 건우를 생각하는거야? 그런거니?]

[그런건 아니야! 건우씨에 대한 미련때문이 아니야. 그냥...왠지 진성씨한테 속이고 있는 게 마음이 걸려서 그래.]

[한두번 연애 안 해 본 사람이 어딨어. 그런데 굳이 그걸 다 얘기 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넌 그게 벌써 언제적 일이니? 10년은 넘었잖아]

[그런데 미혜야. 난 진성씨가 마치 다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얘기해주만을 바라는 것 같은...]

[그 사람이 어떻게 알겠니. 자격지심이다.  그냥 잊어 버려. 묻어 버리라구. 진성씨, 놓치지 말고 잡어. 알았지? 아직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좋은 사람 같아. 너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마]

 

그래. 그는 좋은 사람이다.

너무 좋은 남자다.

어떤 여자와도 어울릴 것 같고 어떤 여자도 반할 만큼 괜찮은 남자다.

그런 남자가 왜! 무엇때문에! 무엇이 부족해서 자신을 만나는지...

재희는 자신이없었다.

그렇더라도 그가 좋았다.

그와 있으면 행복함을 느낀다.

만나면서 기쁨도 느낀다.

설레임도...

어쩌면...사랑 그 비슷한 감정도...

그러면서도 .... 고개를 드는 죄책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그것이 그녀가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다.

몇날 며칠을, 몇주를 고민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결심이 서지 않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공 재희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결정을......!

 

현관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았다.

밤 1시가 넘었다.

올 사람이 없는데...?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미혠가?

가끔, 미혜는 남편과 다투면 그녀를 찾아오곤 했다.

인터폰 모니터로 확인을 했다.

순간, 재희는 숨을 삼켰다.

이 진성이다!

이 시간에.... 그가......무슨 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또 놀랬다.

그에게서 술내음이 풍겨져 왔다.

그리고 그는 흐트러져 있었다.

처음이다. 그의 그런 모습은.

벽에 손을 짚은 채 간신히 버티고 선 듯한 모습...

헝컬어진 옷차림...

그리고...그녀를 숨막히게 한 건

헝컬어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한없는 우수에 젖어 있었다.

아니...아픔에 젖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가 웃었다.

[나 잠깐...들여보내 줄 수 있소?]

나른하게 젖은 목소리.

재희는 옆으로 비켜 섰다.

들어서면서 그가 비틀거리자 그녀가 부축을 했다.

지독히 마신 것 같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난...당신 향기가 좋아. 아니, 당신의 모든 것이 다 좋아..]

그녀는 그냥 웃으며 그를 소파에 앉혔다. 그대로 그가 허물어졌다.

[미안하오...이런 모습, 보이기 싫은데...당신이 너무...보고 싶어서....미안..]

[냉수 한 잔 드릴께요. 잠시만요..]

...보고 싶었다고?...내가 보고 싶어서...

그 한 마디는 그녀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가슴이 미어왔다.

주방으로 들어서는 재희의 뒷모습을 슬픈 눈으로 진성이 쫓았다.

[당신은 모를거야...그래, 모르겠지......]

들릴 듯 말 듯 그가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한손은 소파 등받이에 걸치고 고개는 떨군 채로...

냉수 잔을 내려 놓으며 재희는 맞은 편에 가만히 앉았다.

그의 모습이 아파보였다. 왜일까...

재희는 조심스레 그의 웃옷을 벗겼다.

베개에 머리도 뉘이고 이불도 덮어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그를 지켜 보았다.

첫사랑때완 다른 감정이다.

애틋한 그 무엇이 있었다.

가만히...소리도 없이...조심스레 어느새...그에 대한 감정이 그렇데 다가왔다.

이제는 부인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이 그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이것이...사랑일까...

이것도 사랑의.... 감정이라는 걸까...

재희는 그를 보듬어 안아 주고 싶었다.

쓰다듬어도 주고 싶었다.

그런 감정은 건우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자신이 보고 싶어 한밤중에  찾아온 사람이 아닌가...

가슴이 미어졌다. 행복했다.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은......!

재희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과연 내게 있을까...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